박범계 "윤석열의 '반부패수사청 제안' 충분히 참고할 만"

입력
2021.03.03 10:45
출근길서 "검찰총수 말씀이니 무게감 갖고 참고"
수사·기소 분리엔 "수사권 남용 측면도 고민해야"
尹 향해 "좀 부드럽게 말씀했으면 좋겠다" 지적도

윤석열 검찰총장이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보다는 수사ㆍ기소권을 융합한 반부패수사청 등을 설치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제안한 데 대해 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3일 “충분히 참고할 만한 여러 의견 중 하나”라고 밝혔다. 여권이 추진 중인 중수청 신설 문제가 윤 총장은 물론, 검찰 조직 전체와의 대립으로 번지는 상황에서 일종의 수습책을 제시한 것으로 보인다.

박 장관은 이날 경기 과천시 법무부 청사 출근길에 취재진과 만나 이같이 말했다. 앞서 윤 총장은 이날 공개된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법무부 장관 산하에 둬도 좋으니, 수사ㆍ기소권을 가진 반부패수사청ㆍ금융수사청ㆍ안보수사청을 만들어 중대 범죄 수사 역량을 유지ㆍ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朴 "尹, 저와 면담 때도 '반부패수사청' 제안"

박 장관은 이에 대해 “저와 이전에 만났을 때에도 하신 말씀인데, 충분히 다양한 여러 의견 중 하나이고, 아주 참고할 만하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검찰 내부에선 아직 이런 생각이 주류적 흐름이나 담론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라며 “여러 다양한 의견 중 하나인데 검찰 총수께서 하신 말씀이니 상당히 무게감을 갖고 참고해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다만 검찰이 거세게 반발하고 있는 수사와 기소 분리 문제에 대해선 종전 생각을 굽히지 않았다. 박 장관은 “이 문제(수사와 기소 분리)는 소위 검찰권의 남용, 특히 (검찰의) 직접 수사가 가진 여러 문제점을 극복하자는 차원에서 나온 주제”라며 “국가의 범죄 대응 역량이나 반부패 수사 역량이 충분히 보장되고 재고되는 건 중요한 화두”라고 전제했다. 그러면서도 “그러나 그 또한 적법 절차와 인권 보호라는 관점에서 봐야 한다”며 “총장께서 수사권 남용의 측면도 한번 고민해주시면 좋겠다”고 말했다. ‘수사권 남용 방지’를 위해선 여전히 수사ㆍ기소 분리가 해법임을 우회적으로 강조한 것이다.


"尹과 언론 통해서 대화하니 안타까워"

언론을 통한 ‘여론전’에 나선 윤 총장을 향해서도 뼈 있는 한마디를 남겼다. 박 장관은 “(윤 총장과) 직접 만나서 얘길 나누면 좋을 텐데 이렇게 언론을 통해 대화하니 조금 안타까운 측면도 있다”며 “좀 부드럽게 말씀하시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윤 총장은 전날 보도된 국민일보 인터뷰에서 여권의 중수청 설치 움직임을 ‘졸속 입법’이라고 했고, 검찰 수사권 박탈에 대해선 ‘법치 말살’ ‘민주주의의 퇴보이자 헌법 정신의 파괴’라고 표현하는 등 다소 거친 언사를 써 가며 비판했다.


"임은정 수사 배제, 그동안 대검 입장과 배치"

박 장관은 ‘한명숙 전 국무총리 모해위증 사건’과 관련, 임은정 대검찰청 감찰정책연구관이 감찰업무에서 배제된 데 대해선 대검을 향해 유감을 표했다. 그는 “그동안 대검은 ‘수사를 못 하게 해서는 안 되지 않느냐’고 말해 왔고, 그게 법무부에 대한 일종의 요구나 항의 아니었느냐”라고 반문한 뒤, “그런데 임 부장검사가 수사를 하지 못하도록 하는 건, 그간의 대검 입장과는 좀 상반된 게 아닌가 생각이 든다”고 지적했다. 또, “어느 쪽에 유리하든 불리하든, 그게 대검이 말하는 ‘살아 있는 권력’에 대한 수사든, 제 식구 감싸기와 관련된 수사든, 검사는 혐의가 있으면 수사할 수 있고 수사하게 하는 게 맞다”고 말했다.

‘김학의 불법 출국금지 의혹’과 관련, 수원지검이 차규근 법무부 출입국ㆍ외국인정책본부장에 대해 전날 구속영장을 청구한 데 대해 말을 아꼈다. 박 장관은 “법무부의 탈검찰화를 위해 특별 채용된 고위공직자인데 현재로선 안타까운 심정으로 지켜볼 뿐”이라고만 답했다.

이상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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