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검찰총장이 검찰 수사권 박탈을 골자로 하는 여권의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 추진에 대해 언론 인터뷰를 통해 강성 발언을 쏟아낸 건 절박한 위기의식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중수청 설치는 검찰 해체와 다름없다는 판단이 서자, 그동안 정치권에 대해 품고 있었던 불만을 한꺼번에 토해냈다는 것이다.
윤 총장이 일선 검사들 의견 수렴 과정 중에 불쑥 자신의 생각을 가감없이 드러낸 건 중수청 관련 법안을 구체화하려는 여당의 발빠른 움직임 때문으로 보인다. 거대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이달 중 중수청 신설 법안을 발의해 6월까지 국회에서 통과시키겠다며 구체적인 시간표까지 공식화했다. 민주당이 지난해 야당 반대에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를 탄생시킨 전례에 비춰 보면 중수청 설치도 실현 가능성이 높다고 본 것이다.
윤 총장은 평소 주변에 여당의 ‘검수완박’(검찰의 수사권 완전한 박탈) 입법 추진은 검찰을 해체하려는 시도라고 주장해왔다고 한다. 윤 총장은 국민일보와 인터뷰에서도 “지금 추진되는 입법은 70여 년 형사사법 시스템을 파괴하는 졸속 입법”이라고까지 비판했다.
‘뼛속까지 검찰주의자’로 불리는 윤 총장 입장에선 이런 급박한 상황을 두고 볼 수 없었을 것이란 게 검찰 내부 반응이다. 수도권 검찰청의 한 간부는 “지난해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의 징계 청구 국면에서도 입장 표명을 자제했던 윤 총장이 이례적으로 속마음을 그대로 털어놓은 건 검찰이 처한 상황이 그만큼 절박하다는 것 아니겠냐"고 말했다. 한 전직 검찰총장도 “퇴임을 앞둔 총장이 소회를 얘기하는 수준으로 인터뷰하는 경우는 있지만, 특정 사안을 두고 노골적으로 반대 의견을 밝히기는 전례가 없다”면서 “부적절한 측면이 있지만, 윤 총장이 오죽 답답했으면 저렇게까지 했을까 싶다”고 말했다.
윤 총장은 그동안 여권의 중수청 도입 움직임과 관련해 의견 표명 형식과 시점의 고민을 거듭했다. 짧은 성명으론 수사·기소 분리의 부당함을 드러내기엔 부족하다고 판단했고, 3일로 예정된 대구고검·지검 지도방문 때 의견을 내는 것도 형식상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해 제외했다고 한다. 언론을 상대로 간담회를 여는 방식도 검토했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생각을 접은 것으로 알려졌다.
윤 총장이 정치권에서나 들을 법한 다소 거친 언사를 동원한 것에 대해선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다. 중수청 설치에 단순히 반대한다는 의사표시를 넘어 '민주주의라는 허울을 쓰고 법치를 말살하는 것이며 헌법정신을 파괴하는 것’ ‘어이없는 졸속 입법’ 등으로 발언한 게 대표적이다. 지방검찰청의 한 고위 간부는 “최근 국회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 완곡하게 반대 의견을 낼 만큼 '한가한' 상황이 아니라고 본 것 같다”며 “여당이 반대 의견에 귀를 닫은 만큼 자신도 할 말은 해야겠다고 결심한 것 아니겠냐"고 말했다.
윤 총장이 이미 통상적인 발언 수위를 넘은 만큼, 향후에도 기회 있을 때마다 중수청 설치 반대 목소리를 낼 것으로 예상된다. 당장 대검이 이번주까지 취합 중인 일선 검찰청 의견을 법무부에 전달할 때 윤 총장 의견이 반영될 가능성이 높다. 3일 대구고검·지검 방문 때도 재차 입장을 표명할 기회가 있다.
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이날 ‘중수청 신설과 관련해 윤 총장과 논의할 계획이 있냐’는 취재진 질문에 “저는 언제나 열려있다. 만날 생각도 있다”고 답변했지만, 갈등의 불씨는 여전히 남아있다. 지방검찰청의 한 부장검사는 “박 장관이 검찰 중간간부 인사에서처럼 윤 총장 입장을 듣기만 하고 무시하면, 윤 총장이 다시 강경 발언을 내놓을 수 있다”고 예측했다.
일각에선 현직 검찰총장이 거친 언사를 동원해 언론에 입장을 표명한 것 자체가 "정치 활동을 위한 포석 아니겠느냐"고 해석하고 있다. 정권과 각을 세우며 여론의 관심을 끌기 쉬운 방법을 택한 것은 순수한 의미로만 볼 수 없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