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대해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이 고령층에 효과를, 그것도 화이자 백신 이상으로 효과를 낸다는 증거가 쌓이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한국에서도 고령층에 대한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접종 문제를 재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정부도 "자료가 충분히 쌓이면 언제든 검토할 수 있다"는 입장을 내놨다. 앞서 정부는 3월 말쯤 65세 이상 고령자 접종 여부를 결정하겠다 밝힌 바 있다.
1일(현지시간) 외신 등에 따르면 영국에선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의 효과를 보여주는 자료들이 쌓이고 있다. 1월부터 아스트라제네카와 화이자 백신 접종자료를 수집한 잉글랜드공중보건국(PHE)에 따르면, 70세 이상 고령층에서 1차 접종 4주 뒤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은 60~73%, 화이자는 57~61%의 코로나19 유증상 감염 예방 효과를 보였다. 우려와 달리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이 고령층에 효능을, 그것도 화이자 백신보다 더 좋은 효능을 선보인 것이다.
또한 80세 이상 접종자들에서도 두 백신을 1회차 맞고 3, 4주가 지난 뒤 입원을 80% 막는 효과가 나타났다고 PHE는 설명했다. 아스트라제네카와 화이자 백신 모두 고령층에서 코로나19가 중증으로 진행하는 걸 줄였다는 의미다. 매리 램지 PHE 예방접종 책임자는 “두 백신이 모두 감염을 줄이는 데 작용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들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앞서 지난달 말 영국 에든버러대와 스코틀랜드 공중보건국은 아스트라제네카와 화이자 백신을 접종한 114만 명의 자료를 분석한 결과, 80세 이상 고령층도 입원 위험이 81% 감소했다고 밝혔다. 두 백신 모두 고령자에게 효능을 발휘했다. 이런 자료들이 쌓이면서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만 18세 이상 전 연령에 접종해온 영국은 "영국의 결정이 옳았다"며 반기고 있다.
이에 따라 '18세 이상에게 맞혀도 된다'는 세계보건기구(WHO)의 권고를 받아들이지 않고, 고령자 접종을 막았던 다른 국가들의 분위기도 바뀌고 있다. 독일은 고령층에게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맞히는 내용이 포함된 새로운 권고안을 준비 중이다.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에 대해 '65세 미만'이란 조건을 붙였던 프랑스는 74세까지로 접종 범위를 확대했다. 캐나다도 모든 성인에 대한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접종을 승인했다.
이 때문에 우리나라도 이제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고령자에게 맞힐 때라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고령자 효능 논란 때문에 정부는 65세 이상 접종은 보류했고, 이로 인해 요양병원·시설의 65세 이상 37만6,000여 명은 1분기 접종 대상에서 빠졌다. 백신 접종의 최우선 목표가 사망 예방인데 가장 취약한 이들이 제외된 것이다.
천병철 고려대 의대 예방의학교실 교수는 “새로운 근거가 나왔으니 당국은 고령층 접종을 재평가해야 한다”며 “논문 외에도 원본 데이터를 받아 분석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천은미 이대목동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도 “백신이 부족한 상황에서 고령자 접종을 미룰 이유가 없다”며 “면역이 떨어지는 고령자들은 면역반응 때문에 나타나는 부작용이 오히려 덜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여전히 신중한 입장이다. 정경실 예방접종대응추진단 예방접종관리반장은 “각국 고령자 접종결과와 미국 임상시험 등 다양한 자료를 검토하고 전문가 분석 후 예방접종전문위원회를 거쳐 결정하겠다”고만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