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녀의 공존을 향한 얼음도시의 고민과 실험

입력
2021.03.07 12:00
<16>아이슬란드 레이캬비크

한파가 유럽 대륙을 거칠게 스치던 2018년 1월. 이름만 들어도 한기가 느껴지는 아이슬란드 땅을 밟았다. 영하 5도~10도를 오르내리던 섬나라는 나라 이름에서부터 풍기는 대로 얼음으로 덮여있을 것만 같았다.

그런 예상을 깨고 '얼음땅'이라는 이름과 조금 어울리지 않듯 갈색빛 풀 옷을 덮은 채로 나를 반겼다. 해적들이 쳐들어올까 봐 얼음만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하려고 아이슬란드로 이름지었다는 이야기도 아이슬란드인의 입을 통해 내 귓가에 들어왔다.

한반도와 비슷한 땅 크기. 인구 약 36만 명. 인구 밀도가 세계에서 가장 낮지만 수도인 레이캬비크(Reykjavík)를 제외한 지역은 개발의 손길이 미치지 않아 자연의 모습 그대로를 간직했다.

나는 늘 세계 지도를 끼고 살았지만 아이슬란드는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을 만큼 생소한 곳이었다. 케플러비크(Keflavík) 공항에 내려 레이캬비크로 가기 위해 버스에 올랐다.

한국에서는 익숙지 않은 모습. 버스 기사가 여성이었다.


남녀의 공존을 향한 아이슬란드의 도전

해마다 성별 격차(GENDER GAP)가 가장 작은 나라로 꼽히는 아이슬란드. 2017년 세계 최초로 남녀 임금차별 금지법을 통과시켜 2018년부터 시행에 들어간 곳이다. 세계 최초로 여성 대통령과 여성 총리를 배출한 나라이기도 하다.

2013년부터는 여성 할당제 비율을 40%로 정했는데, 기업의 임원은 물론 여성 장관도 적용을 받는 등 여성의 사회 참여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남성의 육아휴직 사용률도 90%를 넘는다. 때문에 휴직을 하지 않는 것을 오히려 이상하게 여길 정도다.

유치원에서 고교까지 양성평등 교육에 대한 권고를 법에 명시하고 있다. 심지어 페미니스트 교과도 존재한다. 현지에서 만난 여성들에게 기회가 될 때마다 여성이기에 불리한 점이 있느냐고 물었는데 대부분 "우리는 계속 나아져 왔고 앞으로도 나아질 것으로 확신한다"는 말을 했다. 왜 일까.


여성 2만5000명이 참여한 1975년 가사 노동 파업

아이슬란드는 사회적으로 세차례 분기점을 겪었다. 사실 아이슬란드 역시 남성 위주의 가부장제 분위기가 강했다고 한다. 육아와 집안일을 모두 여성이 도맡아 해야 했고, 사회 참여 기회를 찾기도 쉽지 않았다.

①첫번째 분기점은 1975년 10월 24일 유엔의 날에 전국적으로 펼쳐진 여성들의 가사 노동 파업이었다. 이날 전국적으로 20개 이상의 집회가 열렸고, 규모 면에서 가장 컸던 레이캬비크 광장 집회에 약 2만5,000명의 여성이 참여했다. 당시 아이슬란드의 총 인구가 22만여 명임을 감안할 때 10명 중 1명은 현장에서 목소리를 낸 셈이었다.


이로 인해 여성이 주로 일했던 유치원, 초·중학교, 마켓이 문을 닫았다. 한 신문에서는 평소 찍던 24페이지 대신 16페이지만 인쇄를 했는데, 그 내용도 주로 여성 파업을 다뤘다. 여성 배우들이 출연을 거부하면서 각종 공연이 취소됐고, 항공사도 여객기를 운항하지 않았다.

남성들은 그 동안 여성들의 몫이었던 육아를 해야 했고, 아이들을 데리고 회사에 나가거나, 아이들의 끼니를 챙겨야 했다. 남자들이 요리가 쉬운 소시지를 서로 먼저 사려는 통에 주요 마트에 소시지가 완판됐다는 웃지 못할 뒷얘기도 전해 내려 온다.

파업 집회는 이날 자정까지 이어졌고, 다음 날의 신문은 여성 파업에 관한 내용이 주로 실렸다.

이를 계기로 아이슬란드 사회는 각성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많은 기업과 기관에서 여성이 움직이지 않으면 세상이 멈추게 된다는 것과 결국 여성들이 사회 전반에 꼭 필요한 존재라는 것을 확실히 알게 됐다.

그 힘으로 아이슬란드사람들은 이듬해인 1976년 남녀고용평등법을 통과시킨다.


세계 첫 여성 대통령 취임이 가져온 변화

②두 번째 분기점은 1980년에 대통령 선거였다. 이 선거에서 여성 후보였던 비그디스 핀보가도트르(Vigdis Finnbogadottir)가 3명의 남성 후보를 제치고 당선됐다.

이는 지구 역사상 민주적 선거에 의해 선출된 세계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었다. 그의 어머니는 아이슬란드 국립 간호사협회의 회장을 지냈고, 아버지는 토목 기술자였다.

그는 프랑스와 스웨덴, 덴마크, 아이슬란드의 대학에서 공부했고, 아이슬란드의 텔레비전에 프랑스어 수업과 문화 프로그램에 꾸준히 출연하면서 시민들에게 얼굴을 알렸다.

1976년엔 북유럽 국가 문화 문제 자문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했고, 1978년엔 위원장에 오른다. 비그디스는 1972년 입양한 딸을 싱글맘으로 키웠다.


비그디스의 인기는 시간이 가도 식을 줄 몰랐고, 대선에서 내리 네번 당선되며 1996년까지 아이슬란드를 이끈다.

그의 가장 큰 업적은 육아휴직을 만들어 정착시킨 것이다. 1983년에 세계 최초의 여성을 위한 정당인 우먼스리스트당에서 법안을 만들어 통과시켰다.

현재 아이슬란드는 9개월 동안 임금의 80% 수준을 보장해 주는 유급 육아 휴직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특히 2000년도엔 남성의 육아 휴직을 의무화해 여성이 3개월, 남성이 3개월, 나머지 3개월은 둘 중 한 명이 선택해서 쓰도록 했다. 2012년부터는 '3-3-3'을 '5-2-5'로 바꾸고, 가운데 2달을 부모 중 한 명이 더 신청해서 쓸 수 있도록 하는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③세번째 분기점은 2013년 50인 이상 기업 임원 40% 여성할당제와 2018년 세계 최초의 남녀임금차별 금지법 시행이다.

인간마다 제각기 다른 능력을 가지고 있고, 능력에 따른 기회와 대가가 주어진다. 또 그 능력을 최고로 발휘하도록 하는 사회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는 전제 속에 다양한 할당제와 차별을 금지하는 법은 최근 지구상 많은 나라에서 뜨거운 논쟁거리이다.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능력이 부족한데 할당제에 기대어 수혜를 받게 되면 다른 능력을 가진 이들에겐 역차별이라고 하는 비판이 따르기 때문이다.

특히나 민주주의 시스템을 축으로 움직이는 국가에서 사회주의적 요소가 매우 강한 이런 법은 아이슬란드에서도 꽤 오랜 기간 논쟁을 거쳐서 나왔다고 한다.


새로운 제도와 문화를 만들기 위한 노력

아이슬란드에서는 남녀의 공존에 대한 다양한 토론과 실험이 40년 넘게 이어져 오고 있다.

대표적으로 2008년 금융위기 당시 나라를 위기로 몰아넣은 원인 중 하나로 남성 중심의 경영이 꼽혔다. 그런 경영 환경이 때로는 경영상 판단에서 실수를 가져온다는 점과 구성원의 부정부패를 너그러이 봐주는 온정주의 문화를 만든다는 것이다. 아이슬란드에서는 이런 문제점에 대한 사회적 토론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다.

또 이러한 내용이 담긴 법안을 만드는 것은 정치 영역이지만, 결정적으로 노동자와 사업주 사이의 합의가 그 밑바탕에 깔려있다.

현재 아이슬란드의 노동조합 조직률은 90%에 달한다. 의회에서 만난 존 스타인도르 발디마르손(Jón Steindór Valdimarsson) 의원은 "우리나라는 노동조합의 힘이 매우 강하고 사회 변화의 중심에서 큰 역할을 해왔다"고 힘주어 말했다.


의정 질의를 마치고 대화에 합류한 소스타인 비그런슨(Þorsteinn Víglundsson) 의원은 자신들이 세계 최초로 만든 남녀임금차별금지법 이후 추구하는 방향을 설명했다. 그는 2017년 사회평등부장관으로 남녀임금차별금지법 통과를 이끌었고, 한달 전 장관에서 물러났다.

소스타인 의원은 "대부분 나라들이 그렇듯 여성이 주로 하는 일과 남성이 주로 하는 일이 다르고 이것이 남녀의 임금과 처우 차이로 이어진다"고 했다.

그는 "우리는 그런 직업을 가지라고 교육한 적이 없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자동차 정비 사업소에서는 주로 남성이 일을 하고, 보육 기관에서는 주로 여성들이 일을 하고 있다"며 "보육기관에서 여성들이 받는 임금과 정비 사업소에서 남성들이 받는 임금을 비교하면 주로 남성의 임금이 더 높다"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자신들은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지 의문을 품고 있다고 했다.


소스타인 의원은 두 가지 중 어떤 일이 더 가치가 있는지를 물었다. 골똘히 생각해 봤지만 어떤 노동이 더 가치 있는지 선택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비 사업소는 언제든지 다칠 위험이 있고, 무거운 물건을 들어야 하고, 기름을 손에 묻혀야 한다. 보육교사는 아이들의 부족한 것을 채워주고 아이들에게 세상을 살아가는 법을 가르쳐야 하는 어려운 일이다. 무엇보다 사람을 키우는 일이다.

나는 두 가지 모두 우리 사회에 필요한 일이고, 소중한 직업이라고 생각했다. 결국 나는 선택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들은 이런 내 대답을 듣고 업종, 분야 때문에 생기는 격차를 어떻게 다룰지를 두고 "지금부터 논의를 시작하려 한다"고 말했다. 이 논의가 임금차별 금지법처럼 "40년이 걸릴지 50년이 걸릴지 알 수 없다"면서도 또렷하게 말하는 그의 눈빛에서 도전하고자 하는 지점이 어디인지, 이들이 지향하고자 하는 마음가짐이 어디를 향해 있는지를 알고 나니 시샘이 나기도 했다.


저출산의 아이러니

아이슬란드는 성별 격차를 최소화하기 위해 갖가지 노력을 해왔다. 그런 결과인지 나는 길거리와 공원, 마켓, 해안가, 숙소 등에서 수많은 아이슬란드인들을 만나 물었는데, 대부분 여성들은 여성으로 살아가는데 따른 장애를 크게 느끼지 않는다고 했다.

12살 딸아이를 키우며 여행 가이드로 일하는 후졸라(Fjóla)는 아이슬란드의 여성들이 남성들에 비해 대졸자 비율이 훨씬 높고, 여성할당제에 대해서도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회의 자리에 여성이 한 명 앉아 있으면 회의에서 한마디도 하기 어려울 것이고, 세 사람 이상이 되어야 비로소 목소리를 낼 수 있을 것이며, 네 사람이 되면 무시하기 어려운 분위기가 만들어 질 것"이라고 했다.


아이슬란드 출산율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락 추세다. 2013년 아이슬란드에서 출생한 아이들은 4,326명이다. 2012년의 4,533명에서 207명 줄어든 수치다.

이중 3분의 2가 혼외 출생이라는 점이 눈에 띈다. 2012년 출산율이 2.04에서 2013년 1.93으로 떨어진 것으로 확인되면서 아이슬란드 역시 그 원인을 찾기 위해 골몰하고 있다.

이들은 여성들이 첫아이를 출산하는 시기가 점점 늦어지는데 원인이 있다고 생각한다. 아이슬란드 통계청에 따르면 1970·80년대에 여성들의 첫아이 출산 시기는 22세 미만이었지만, 2013년 첫아이 출산 시기는 평균 27.3세다.

그리고 2015년엔 4,129명, 2016년엔 4,034명의 아기가 태어났다. 출산율은 1.75까지 낮아졌다. 같은 해 첫 아이를 출산한 산모의 평균 나이는 27.7세로 2013년에 비해 0.4세가 높아졌다. 이 수치는 2018년 28.2세로 높아졌다.


아이슬란드에서 법적으로 결혼하지 않은 부모로부터 태어나는 아이의 비율은 매년 70%를 넘는다. 2018년 기준으로, 동거부부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56.4%, 싱글맘으로부터 세상에 나온 비율은 14%였다.

그러니까 ①결혼을 강요하지 않고 동거 가족을 인정하는 것 ②육아 휴직의 기간 확대 ③남녀가 함께 나눠 쓸 수 있도록 하는 등의 조치는 출산율 증가를 이끌어내는 출산 정책이라기보다 출산 전후 여성이 감당해야 할 것들을 사회가 함께 해결을 위해 나서는 여성인권정책이라고 봐야 한다고 했다.

확실한 것은 여성의 인권 상황이 나아질수록 출산율이 높아지는 경우는 찾아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게스트 하우스 관리자인 30대 초반의 안나 안데르센(Anna Andersen)은 "꽤 많은 친구들이 동거를 하지만 출산 계획이 없다"며 자신도 싱글 라이프가 매우 만족스럽다고 했다.

여기에 더해 레이캬비크의 집값이 올라 집을 얻기 어려운 현실은 반대로 불만이라고 토로했다. 아이슬란드를 찾는 해외 관광객이 크게 늘면서 평범한 주택을 에어비앤비(Airbnb) 등 렌트용으로 전환하는 바람이 불었고, 그 영향으로 현지인들이 살 공간은 줄어들고 있다.


지구촌 곳곳을 다니면서 다출산은 여성의 인권을 사각 지대에 넣어놓으면 나타나는 산물이 아닐까라는 생각과 동시에 출산율을 높게 만드는 정책이란 지구상에 존재하기 어렵겠다는 생각을 했다.

극단적 방식은 국가가 아이를 돈을 주고 사는 방식인데, 어지간한 액수로는 젊은 세대가 호응하지 않을 것이다. 대부분 국가에서 추진하고 있는 출산 정책은 실제로 출산에 도움이 될 수도 안될 수도 있다.

따라서 나는 출산율 자체를 높이는데만 신경쓰지 말고 결혼이나 출산으로 인해 생기는 불평등을 줄이는데 집중하고, 그 결과로 출산율이 올라간다면 오히려 그것이 현실적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때에도 아이를 낳고 싶은 사람들이 낳을 수 있도록 해주고, 굳이 낳고 싶지 않은 사람들을 압박해서는 안 된다.

먼저 간 사람들의 길을 따르는 것은 덜 어렵다. 처음 가는 길이 늘 험하고 두려운 법이다. 인간의 기나긴 역사 속에서 출산과 육아, 가사, 생계의 전선에서 받았던 차별의 지점들을 법으로, 문화로, 교육으로 바로 잡아가고 있다.

아이슬란드가 남녀의 평등과 공존을 위해 보낸 40년의 시간과 앞으로 도달해갈 40년 시간의 끝엔 무엇이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