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인터넷에 30대 초반 여성의 안타까운 사연이 올라왔다. 그 여성은 건강검진 때 간기능검사를 받다가 이상이 발견돼 복부 컴퓨터단층촬영(CT)까지 받은 끝에 최종적으로 간암 진단을 받았다고 했다. 알고 보니 C형 간염이 간암으로 진행된 경우였다. 평소 술은 입에도 대지 않았고 건강에도 큰 이상을 못 느꼈던 터라 자신이 간염에 걸렸다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며 황망해했다.
우리나라에서 매년 간암 진단을 받는 인구는 1만5,000여명에 달한다. 간암은 발생률만 놓고 보면 암 가운데 6위로 낮지만 사망률은 2위로 높다. 간에는 통증을 느끼는 세포가 없어 종양이 생기거나 반으로 쪼개도 통증을 느끼지 못한다. 간 기능이 80% 이상 훼손돼야 겨우 자각 증상이 나타나기 때문에 말기인 4기에 발견된 간암 환자의 5년 생존율은 6.1%에 불과하다.
간암의 주요 발병 원인은 B형 간염(72%)과 C형 간염(12%), 알코올(9%) 등이다. 이 가운데 대부분의 사람이 B형 간염과 알코올의 위험성은 알고 있지만 C형 간염은 잘 알지 못한다. 발병 원인만 놓고 보면 C형 간염이 B형 간염보다 낮지만 간암으로 악화할 가능성은 훨씬 높다. C형 간염 바이러스는 몸에 침투하면 자연 치유되는 비율이 20~30%에 불과하고, 80% 정도가 만성화된다. 그렇게 만성 C형 간염이 되면 20~30%가 간경변(간경화)으로 이어지고, 그중에서 2~4%는 간암으로 악화한다.
문제는 C형 간염 환자의 80% 정도가 간암으로 진행된 뒤에야 그 사실을 알게 된다는 것이다. C형 간염은 백신이 없어 예방은 불가능하지만 다행히 기적 같은 치료제가 있다. 2015년부터 출시된 경구용 항바이러스 치료제(DAAㆍDirect-acting Antiviral Agents)를 8~12주 정도 먹으면 C형 간염은 98% 이상 완치된다.
이 때문에 대한간학회 등 관련 학계에서는 몇 년 전부터 한시적이라도 40세 이상에게 C형 간염 항체 검사(혈액검사)를 1회만이라도 실시하자고 보건복지부에 줄기차게 요구하고 있다. 1인당 4,000원 정도만 들이면 30만명 정도로 추산되는 C형 간염 환자의 확산을 막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이들이 간암 환자로 진행하는 것을 막아 건강보험 재정 부담도 줄이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둘 수 있다.
그런데도 보건당국은 요지부동이다. 국가건강검진 혜택을 받으려면 질병의 유병률이 5%가 넘어야 하는데 C형 간염은 0.7~0.8%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이 그 이유다. 하지만 세계적인 조류는 우리나라와 다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2030년까지 C형 간염의 완전 퇴치를 선언했고, 미국ㆍ프랑스ㆍ일본ㆍ대만 등이 이에 적극 호응하고 있다. 특히 대만은 WHO의 목표를 5년 앞당겨 2025년까지 C형 간염 치료를 위해 2조935억원을 투입하기로 했다.
C형 간염은 천사와 악마의 두 얼굴을 가진 감염병이다. 조기 진단하면 쉽게 박멸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아 치료가 늦어지면 목숨을 앗아가는 치명적인 병이다. 보건 의료 정책의 가장 큰 목표는 ‘건강 수명’을 늘리는 것이다. 원칙을 세워놓고 매뉴얼에 따르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원칙에 매몰돼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 막는 일은 없어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