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손가락 경례

입력
2021.03.01 18:00
26면

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미국 작가 수잔 콜린스의 베스트셀러를 원작으로 한 ‘헝거게임:판엠의 불꽃’은 독재 정권에 대한 민중의 저항을 다룬 2012년 영화다. 미래 가상국가 판엠은 12개 구역에서 2명씩 추첨해 마지막 한 명이 남을 때까지 목숨을 건 서바이벌 게임을 벌이고 이를 24시간 생중계하면서 주민들을 통제한다. 동생이 뽑히자 자원자로 나선 주인공 캣니스 에버딘을 향해 주민들은 감사와 경의를 표하며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는 세 손가락 경례(Three-finger salute)를 한다. 주인공이 게임 중 동료가 숨진 뒤 주민들을 향해 세 손가락 경례를 하면서 혁명은 시작된다. 전 세계 스카우트 회원끼리 우정과 예의를 표하는 스카우트 삼지례에서 원형을 찾기도 한다.

□ 영화의 장면이 현실이 된 건 2014년 5월이다. 태국에서 군부 쿠데타가 일어나자 시위대는 저항의 표시로 세 손가락 경례를 택했다. 태국 시위대는 프랑스 혁명의 자유 평등 박애를 표방했다. 세 손가락 경례는 2019년 홍콩 민주화 시위에도 등장했다. 지난달부터는 미얀마에서 군부 쿠데타에 반대하는 시민들이 세 손가락 경례를 저항의 상징으로 쓰고 있다.

□ 초 모 툰 유엔 주재 미얀마 대사가 유엔총회에서 미얀마 군부를 향해 쿠데타를 즉각 종식하고 무고한 시민에 대한 억압도 당장 멈출 것을 촉구했다. 그는 “국가 권력을 국민에게 돌려줘 민주주의를 회복할 수 있도록 국제사회도 필요한 조치를 해달라"며 세 손가락 경례를 했다. 군사 정권의 서슬에도 굴하지 않은 외교관의 울림은 컸다. 일격을 당한 군정은 곧바로 그를 해임했지만 그는 "내가 할 수 있는 한 맞서 싸울 것"이라며 의지를 다졌다.

□ '피의 일요일'을 보낸 미얀마에서 희생자가 크게 늘고 있다. 군부는 시민들을 향해 실탄을 발사하며 유혈 진압을 서슴지 않고 있다. 미얀마의 세 손가락 경례는 비폭력 민주주의 운동이란 점에서 가깝게는 촛불 시위, 멀게는 3·1운동과도 연결점이 있다. 군부 쿠데타에 대한 저항이란 점에선 5·18광주민주화운동을 떠올리게 된다. 실제로 미얀마에선 ‘임을 위한 행진곡’도 울려 퍼진다고 한다. 엄혹한 시절, 국제 사회의 관심은 우리에게 큰 힘이 됐다. 이젠 우리가 미얀마에 힘이 될 차례다.

박일근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