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카이탁공항의 기억

입력
2021.02.28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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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각국 국제공항은 시설이나 서비스 면에서 자주 우열이 비교된다. 위험도도 그런 비교의 잣대 중 하나다. 공항 위험도를 따지는 건 항공사고 빈도가 다른 교통사고보다 매우 적음에도 불구하고, 사고가 났다 하면 절반 이상이 공항에서의 이착륙 과정에서 발생하기 때문이다. 공항 위험도는 입지와 기후, 시설 등에 주로 좌우되는데, 현존하는 가장 위험한 공항으로는 에베레스트산맥의 관문인 네팔 루클라공항이 꼽힌다.

▦ 루클라공항은 뒤로는 높은 산, 앞으론 깊은 계곡이 있는 입지로 기류가 불안하고 안개가 자주 끼는 등 기상도 열악하다. 활주로 길이는 527m에 불과한 데다, 항공기 유도용 전광시설이나 계기비행과 조응하는 관제시스템도 없어 거의 전적으로 조종사가 수동 조작으로 이착륙을 감행해야 한다고 한다. 해상공항 중엔 1998년 폐쇄된 과거 홍콩의 카이탁(啓德)공항이 세계적으로 악명이 높았다.

▦ 주룽반도와 홍콩섬 사이의 해협 매립지에 건설된 1개 활주로를 썼다. 특히 구룡 도심에서 바다를 향하며 착륙하는 13방향이 문제가 많았다. 란타우섬에서 급선회한 후 빠르게 고도를 낮추며 구룡 도심 스카이라인을 스치듯이 저공 비행해야 하기 때문에 조종사가 수동으로 속도와 고도, 방향을 섬세하게 맞춰야 가까스로 착륙이 가능한 정도였다. 태풍이 닥치면 시계 불량까지 빚어져 착륙은 더 위험했다. 1993년엔 중화항공 항공기가 태풍 속에서 착지에 실패해 활주로 끝을 지나쳐 바다에 잠기는 아찔한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 잦은 사고는 결국 홍콩국제공항이 지금의 첵랍콕공항으로 바뀐 배경이기도 하다. 가덕도 신공항이 외해(外海)에 입지함으로써 해풍 위험이 크고, 해일 방지를 위해 활주로를 수면 위 10층 높이까지 높여야 해 착륙 시 충돌 우려도 높다는 국토부 보고서가 공개됐다. 기피 공항으로 찍혀 우리 조종사들이 ‘개떡 공항’으로 부르기도 했던 카이탁공항처럼 안 되려면, 예타 여부와 관계 없이 위험에 대한 사전 분석과 평가는 몇 번이고 엄정하게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가덕도 신공항이 동남권 번영의 구심점은커녕 국가의 수치로 전락할까 봐 하는 말이다.

장인철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