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빨리 집단 면역이 형성돼 어르신들이 가족들을 맘껏 면회하게 됐으면 좋겠어요.”
26일 오전 9시 서울 도봉구보건소 접종실에서 왼팔 어깨의 옷자락을 걷어냈던 김정옥(57) 노아재활요양원 원장은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에 대한 걱정보다 요양원 어르신들을 먼저 떠올렸다. 백신 접종을 앞두고 전날 잠을 설칠 정도로 긴장했지만, 요양원 입소자들이 하루빨리 가족을 대면할 수 있는 날을 고대해온 터였다. 이날 도봉구보건소 첫 접종자가 된 김 원장은 “독감 백신처럼 약간의 울렁거림이 있었지만 15분쯤 지나니까 괜찮아졌다”며 “다른 분들도 나처럼 백신을 믿고 빨리 접종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접종이 시작된 26일 전국에서 의사와 고령의 요양보호사, 젊은 간호사가 모두 팔을 걷어붙였다. 안전성 논란 탓에 긴장감이 돌기도 했지만, 이들은 ‘코로나 이전 일상으로의 복귀’를 한마음으로 기도했다. 기대와 긴장이 공존한 첫날 백신 접종은 특별한 사고 없이 순조롭게 이뤄졌다.
전 국민의 관심이 높다 보니 의료진은 안전에 각별히 신경을 썼다. 특히 방역과 백신 보관에 집중했다. 접종자가 바뀔 때마다 의료진이 사용하던 고무장갑이 교체되고, 백신 용액은 영상 2~3도가 유지되는 파란 보관함에 담겼다. 의료진은 주사기에 백신을 옮기고, 접종 후에도 발열이나 부어오름 등 이상반응을 유심히 살폈다. 이상반응 관찰실에서도 의료진들은 수시로 혈압과 맥박을 재며 접종자들의 신체 반응을 확인했다. 의료진은 접종자들에게 “발열 등이 사흘 넘게 지속되면 병원에 가라”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의료진은 안심해도 된다고 했지만 처음 경험하는 일이라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광주보훈요양원에서 가장 먼저 백신을 맞은 고숙(57) 원장은 "백신을 맞기 전엔 긴장했는데 맞고 나니까 다른 예방접종할 때와 비슷했다"며 "주삿바늘이 가볍게 들어가 넣는지도 모르게 접종이 끝났다"고 말했다. 전북 1호 접종자인 김정옥(50) 참사랑요양병원장(한의사)은 접종을 준비하는 의료진에게 오히려 “긴장되시죠?”라고 말을 건네며 안심시키기도 했다.
충남에선 홍성한국병원 남종환(50) 진료원장과 김미숙(63) 간호과장이 1호 접종자가 됐다. 특히 김 간호과장은 암을 극복 중인데도 무엇이든 극복할 수 있다는 의지를 보여주고 적극적인 의료 활동을 펼치기 위해 팔을 걷었다. 김 과장은 “의료인으로서 첫 접종을 받음으로써 국민들 불안감이 조금이나마 해소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자신과 모두의 건강을 위해 백신 접종을 당부하는 말도 잊지 않았다. 전남 첫 접종자인 여수 한국요양병원 김대용(45) 원장은 “나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건강을 위해 백신 접종을 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세종시 1호 접종자인 요양병원 간호사 이하현(24)씨도 “다른 분들도 안전하게 코로나19 백신을 접종해서 올해는 꼭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고 희망했다.
부산 1호 접종자인 간호사 김순이(57)씨도 “요양원에서 일하고 있으니 당연히 백신을 맞아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막상 맞고 나니 불안감이 해소됐다. 국민 모두가 맞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예정보다 일찍 접종이 시작된 서울 노원구에선 ‘얼떨결에’ 전국 1호 접종자가 나왔다. 주인공은 서울 상계요양원 요양보호사로 근무하는 이경순(61)씨. 정부가 공식적으로 ‘1호 접종자’를 지정하지 않았으나, 이씨는 당초 백신접종 시작 시각인 9시보다 15분 앞선 8시45분쯤 노원구보건소에서 백신을 맞아 ‘비공식’ 1호 접종자로 추정된다. 이씨는 접종을 마친 후 “1년 동안 코로나19 때문에 불안했는데 이제 안심이 된다”고 말했다.
이씨가 1호 접종자가 된 이유는 노원구가 일찍 와서 대기하는 접종대상자를 배려했기 때문이다. 노원구 관계자는 “일찍 집을 나서거나 밤샘 근무를 마친 요양보호사 등이 8시 30분쯤부터 보건소에 오기 시작했다”며 “추운 날씨에 굳이 9시까지 기다릴 이유가 없어 15분 먼저 접종을 시작하면서 본의 아니게 1호 접종자가 나왔다”고 말했다.
금천구에선 1호 접종자가 바뀌었다. 첫 접종자로 선정됐던 16년차 요양보호사 류경덕(64)씨의 체온이 37.5도로 나와 접종을 뒤로 미뤘기 때문이다. 류씨는 “(집에서 측정했을 때는) 36.2도였는데 옷을 껴 입고 긴장했더니 (그런 것 같다)”고 말했다.
그 사이 4년차 요양보호사인 신정숙씨(60)씨가 먼저 주사를 맞았다. 신씨는 “어른들을 돌봐야 하니까 당연히 맞아야 된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일부 보건소에선 확진자가 발생해 가슴을 쓸어내리기도 했다. 경기 성남시 분당보건소는 직원 2명이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아 26일 하루 동안 폐쇄됐지만, 이날은 의료진이 상주하는 병원에서 접종이 이뤄져 접종에 차질을 빚지는 않았다. 보건소 접종도 3월부터 시작돼 큰 문제는 없다는 게 성남시의 설명이다.
3월 2~5일 요양시설 20곳의 종사자와 입소자 1,687명을 대상으로 접종이 예정된 전남 목포보건소 하당지소에서도 직원이 전날 확진 판정을 받았지만, 전남도 역학조사반의 현장점검 결과 큰 문제가 없어 대체 인력을 투입해 예정대로 접종을 실시할 계획이다.
경북 포항에선 50대 여성이 접종 후 관찰실에서 대기하다가 두통 증상을 보여 병원으로 이송됐다. 다행히 접종에 따른 증상이 아닌 단순 두통이란 진단을 받았고, 추가 증상이 발견되지 않아 요양원으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