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급 주택들이 즐비한 서울 청담동 골목길의 한 카페. 카페 안에는 사람들이 앙증맞은 커피잔을 검지손가락에 걸어 들고 높은 바에 살짝 몸을 기대 서서 커피를 즐기고 있다. 국내 1세대 에스프레소 바 ‘리사르 커피’가 최근 청담동으로 진출했다. 2012년 서울 왕십리에서 시작해 3년 전 약수동으로 옮긴 ‘리사르 커피’는 한국에서 처음으로 이탈리아 에스프레소 바를 재현해 커피애호가 사이에서 단숨에 주목을 받았다. 코로나19에도 지난해 매출이 전년 대비 25%가량 늘었다.
지난달 24일 청담동에서 만난 이민섭(34) ‘리사르 커피’ 대표는 "에스프레소에 대한 수요가 늘어났고, 나 역시도 현실에 안주하기보다 새로운 도전을 해보고 싶었다"라며 "많은 사람에게 에스프레소의 가치를 소개하기 위해서 매장을 늘렸다"고 말했다.
메뉴는 약수 본점과 동일하다. 다만 가격은 임대료 등을 감안해 이전보다 500원을 인상(카페 에스프레소 제외)했다. 한 잔에 1,500원인 에스프레소를 기본으로 여기에 크림과 카카오가루를 올린 ‘카페 피에노’(2,500원), 휘핑된 생크림을 올린 ‘카페 콘 파나’(2,500원) 등 7가지 커피가 있다. 아메리카노나 카페라테 등은 판매하지 않는다. 가격을 올렸지만, 한 잔에 1만원이 넘는 인근 카페들의 커피값에 비하면 훨씬 저렴하다.
이 대표는 “이 정도라면 부담없이 먹을 수 있겠다고 생각한 가격과 카페를 운영할 수 있는 수준의 가격을 맞췄다”라며 “커피를 팔아 수익을 쫓는 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부담 없이 커피를 마시면서 커피 한 잔 이상의 삶의 가치가 무엇인지 생각해볼 수 있는 여유를 주고 싶었다”고 얘기했다. 이런 의미를 담아 카페 슬로건도 ‘베터댄에스프레소(better than espressoㆍ에스프레소보다 나은 것)’로 지었다.
맛은 같지만 분위기는 전혀 다르다. 커피 기계와 ‘ㄴ’ 형태의 바만 있어 단출한 본점과 달리 24평 규모로 넓어진 청담 분점은 부티크(고급 상점) 느낌이 물씬 난다. 대리석 상판의 검은 스탠딩 바를 중심으로 앉아서 마실 수 있는 12개의 좌석 테이블도 뒀다. 화장실도 생겼고, 주차도 가능하다. 이 대표는 “(웃으며) 가격이 오른 만큼 부가 서비스가 늘어났다”라며 “좌석이 있지만 적은 양의 커피를 마시기 위해 들르는 사람이 많아 오래 머물지 않고 서서 간단히 마시고 나간다”고 말했다.
문을 연 지 한달도 안 됐는데 반응은 뜨겁다. 시간당 약 150잔이 판매된다. 주말이면 밖으로 길게 줄을 서야 할 정도다. 1인당 2, 3잔씩 마신다고 한다. 연령층도 20대부터 80대까지 다양하다. 이 대표는 “에스프레소가 쓰고 독하다는 인식이 강했는데, 요즘에는 에스프레소의 깊고 풍부한 맛을 즐기는 분들이 늘어난 것 같다”라며 “양이 많은 커피에 대해 거부감이 있는 어르신들도 종종 방문한다”고 했다.
이 대표는 맛보다 느낌을 강조했다. '리사르 커피'에서는 따뜻하게 데운 예쁜 잔에 커피 원두의 정수만을 내린 30㎖를 담아 잔 받침에 받치고 스푼까지 갖춰 낸다. 그는 "에스프레소의 맛을 즐기는 것도 좋지만, 에스프레소를 마시고 있는 그 느낌에 좀 더 집중하게 만들기 위해 커피잔과 온도, 형태 등에 신경을 많이 썼다"라며 "에스프레소 한 잔을 즐기는 그 여유와 가치에 대해 생각해봤으면 한다"고 말했다.
'리사르 커피'에는 1회용 종이컵이 없다. 그는 “코로나에 우리 같은 카페를 많이 찾는 이유 중 하나는 테이크아웃을 하지 않기 때문에 쓰레기 배출량이 적어서”라며 “커피 한 잔을 넘어선 가치들을 사람들이 이미 찾기 시작했다는 방증이 아닐까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