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백신 접종이 시작됐다. 국내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첫 확진자가 발생한 지 403일 만인 2월 26일, 바이러스에 빼앗긴 일상을 되찾기 위한 약 9개월간의 대장정이 드디어 막이 올랐다. 이 긴 여정의 끝에서 모두가 간절히 바라는 집단면역이란 결실을 얻으려면 되도록 많은 사람이 백신을 맞는 게 가장 중요하다.
시작은 희망적이다. 이날 전국 각지 보건소에서 나온 '1호 접종자들'은 "많이 아프지 않고 독감 주사 맞는 정도였다" "주사를 맞으니 마음이 놓인다" "마스크 쓰지 않는 세상이 오면 좋겠다"며 기대에 찬 반응을 보였다. 심각한 이상반응은 보고되지 않았다.
백신 접종으로 11월까지 코로나19 집단면역을 형성하겠다는 게 정부의 목표다. 만만치 않다. 대다수 국민이 접종 대상인 만큼 자발적인 참여를 이끌어 내야 하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신속하고 일사불란하게 대응하면서 백신에 대한 신뢰도를 높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이날 오후 6시 기준 요양병원·시설의 만 65세 미만 입소자·종사자 1만6,813명이 코로나19 예방접종을 마쳤다. '1호 접종자'는 오전 8시45분께 서울 노원구 보건소에서 백신을 맞은 요양보호사 이경순(61)씨다. 이씨는 접종 후 "다른 주사를 맞을 때와 다른 점은 없었고, 맞으니까 안심이 된다"고 말했다. 27일부터는 서울 중구 국립중앙의료원에 마련된 중앙예방접종센터에서 코로나19 환자를 치료하는 의료진을 대상으로 화이자 백신 접종이 시작된다.
정부는 9월까지 전 국민의 70% 이상 1차 접종을 마치고 11월까지 집단면역을 형성해 코로나19 위기에서 벗어난다는 목표를 세웠다. 정세균 국무총리는 이날 백신 접종과 관련해 "코로나19 종식을 향해 힘찬 발걸음을 시작한다. 집단면역으로 가는 여정에 국민 동참을 환영한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이 여정이 결코 순탄치만은 않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엄중식 가천대 길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18세 미만과 임신부 등 접종 대상이 아닌 사람, 접종을 거부하는 사람을 제외하면 인구의 70~80%가 남는다"며 "맞을 수 있는 사람은 다 맞아야 집단면역 달성이 가능하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이재갑 한림대 강남성심병원 감염내과 교수도 "사실 변이 바이러스 등 변수가 많아 현 단계에서 집단면역이 가능한 접종률이 얼마인지 정확히 가늠하기 어렵다"며 "11월까지 달성하겠다는 것은 상징적인 목표이고, 최대한 많은 사람이 백신을 맞는 게 중요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정해진 기한 안에 접종률을 최대한 높이려면 대규모 접종을 신속하게 시행하기 위한 인프라가 구축돼야 한다. 마상혁 대한백신학회 부회장은 "예방접종센터에서 하루에 3,000명씩 접종한다는데, 대기 시간까지 고려하면 한 사람당 40분 이상 걸릴 것"이라며 "현실적으로 가능한 목표인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앞으로 코로나19가 재확산할 경우 방역과 치료에 인력 수요가 많아져 예방접종에 차질이 생길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11월 집단면역 목표에 맞추기 위해선 원활한 백신 수급도 관건이다. 정기석 한림대 성심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는 "대부분의 백신 공급 물량이 3분기 이후에 몰려 있어 2분기에 백신이 원활하게 공급될 수 있을지 걱정되는 게 사실"이라며 "1~2분기에 백신을 맞은 사람의 항체가 11월까지 지속될 수 있을지도 불확실하다"고 우려했다.
근거 없는 불안감이 확산하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 어떤 백신이든 크고 작은 이상반응이 생기는데, 정치권 등에서 이를 과도하게 부각시키면 예방접종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이 커질 수 있다. 정기석 교수는 "가령 화이자는 고급 백신이고 아스트라제네카는 아니라는 식의 인식은 전혀 근거가 없다"며 "아스트라제네카도 좋은 백신이고 전 국민이 맞아도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접종 시행 과정에서 발생하는 일들을 신속하고 투명하게 공개해야 함은 물론이다. 이재갑 교수는 "제주에서 백신 이송 중 온도를 맞추지 못한 문제가 생겼는데, 이를 확인하고 다시 보내는 과정을 공개함으로써 도리어 신뢰가 높아진 측면도 있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