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시행된 지 1년 반이 지났지만, 직장 내 괴롭힘은 오히려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 괴롭힘 사건으로 검찰이 기소한 건 0.36%에 머물러 적절한 처벌이 이뤄지는 사례도 매우 적었다.
이를 두고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처벌 조항이 없는 법의 한계란 지적이 나온다. 현행법상 처벌은 괴롭힘을 신고한 피해자나 신고자에게 불이익을 줄 경우에만 이뤄진다. 정치권에선 직장 내 괴롭힘 금지를 안착시키기 위해 처벌 규정 신설은 물론 사각지대에 놓인 노동자를 보호하도록 보완 입법이 조속히 추진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이 고용노동부에 요청해 법이 시행된 2019년 7월부터 지난해까지 '직장 내 괴롭힘 접수 및 처리 현황'을 분석한 결과, 직장 내 괴롭힘 진정 신고는 총 7,953건이 접수됐다고 26일 밝혔다. 2019년은 2,130건, 지난해에는 5,823건이 노동부에 신고됐다.
그러나 신고 건 중 검찰에 송치된 건 94건으로 1.18%에 그쳤다. 검찰이 이 가운데 기소 의견을 낸 건 29건으로, 전체 신고 건수의 0.36%에 불과했다.
다만 검찰이 기소 의견을 낸 사건 중 실제 처벌까지 이뤄졌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검찰에 송치하는 것까지가 자신들의 업무라 처벌 여부는 알 수 없다는 게 노동부의 설명이다.
지난해까지 신고된 직장 내 괴롭힘 사건 중 처리 중인 건 12건뿐이다. 노동부는 나머지 7,941건에 대해 사건 종결 처리했다. 사건 종결 건 중 '개선 지도'를 한 건 1,308건이었다. 비율로 따지면 16.5%였다. 취하는 42.5%였다.
지난해 직장 내 괴롭힘 신고 건수를 분석해 보니 오히려 전년보다 증가한 것으로 조사됐다. 2019년 월 평균 신고 건수는 355건이었지만, 지난해에는 485건으로 월 평균 36.7% 증가했다.
2년 동안 업종별 접수 현황을 보면 제조업이 17.1%(1,363건)으로 가장 많았다. 다음으로 보건·사회복지서비스업 14.3%(1,140건), 사업시설관리 12.5%(997건), 도소매업 10%(794건) 순이었다.
2019년과 비교해 지난해 직장 내 괴롭힘 신고 건수가 급증한 업종은 전문과학서비스업이었다. 2019년에는 월 평균 15건에서 지난해에는 22건으로 51.1%나 늘었다. 보건·사회복지서비스업도 2019년 월 평균 49건에서 지난해 71건으로 44.5%나 급증했다. 정보통신업과 협회·단체 분야의 지난해 월 평균 신고 건수는 전년보다 각각 44.2%, 49.2% 증가했다.
괴롭힘 유형은 폭언이 45.2%로 가장 많았다. 다음으로 부당 인사 21.2%, 따돌림·험담 15%, 업무에서 배제 3.6% 순이었다. 폭행과 감시는 전체 신고 비율로 보면 각각 2.9%, 2.1%로 낮았다. 그러나 월 평균 증감률은 각각 126.2%, 213%로 나타났다.
사업장 규모별로는 50인 미만 사업장이 59%(4,673건)로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다음으로 300인 이상 사업장 17%(1,323건. 100인 이상 300인 미만 사업장 13%(1,037건), 50인 이상 100인 미만 사업장 11%(909건) 순이었다.
전문가들은 처벌 규정이 없어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의 효과가 크지 않다고 지적한다. 시민단체 직장갑질119의 오진호 집행위원장은 "처벌 조항 신설 등을 통해 법의 실효성을 높여야 한다"며 "0.36%만 기소되는 상황이 계속되면 직장 내 괴롭힘을 막지 못한 채 괴롭힘 방치법이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근로기준법상 처벌 규정은 회사가 신고를 이유로 괴롭힘을 당한 피해자나 신고자에게 불이익을 줄 경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 벌금형에 처하는 게 전부다. 가해자나 괴롭힘 자체에 대한 처벌 조항은 없다.
사업주가 피해 근로자에 대한 보호나 가해자에 대한 조치를 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지만, 이를 하지 않을 경우 처벌할 조항은 없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에 처벌 조항이 담기지 않은 건 2018년 법안 논의 당시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정의와 예방교육에만 초점을 맞췄기 때문이다. 법안이 국회 소관 상임위인 환경노동위원회 고용노동소위원회를 통과한 2018년 9월 12일 회의록을 보면 처벌 조항은 일단 법을 만든 뒤 추후 보완하기로 정리했다.
당시 소위에 참석했던 이성기 노동부 차관은 법안 쟁점에 대해 "실제 직장 내 괴롭힘을 한 분들을 형사처벌할 것이냐, 아니면 그 부분에 대한 처벌은 하지 않고 불이익 처우를 했을 때 처벌할 것이냐가 문제였다"고 설명했다.
전날(9월 11일) 열린 소위에선 법 시행이 시기상조라며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그러나 땅콩 회항 사건과 간호사 태움 사건, 양진호 위디스크 회장의 직원 폭행 사건 등으로 여론이 어느 때보다 뜨거웠던 만큼 여야 의원들은 일단 통과로 의견을 모았다.
2018년 12월 어렵게 직장 내 괴롭힘 금지를 담은 근로기준법이 개정됐지만, 이후 보완 입법을 서둘러야 한다는 의견은 꾸준히 나왔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달 노동부 장관에게 가해자에 대한 처벌 규정 도입과 5인 미만 사업장으로 적용 범위 확대, 제3자의 괴롭힘으로부터 노동자 보호 규정 마련 등을 권고했다.
노동부는 이에 지난달 20일 인권위 권고를 일부 수용하겠다고 했지만, 가해자 처벌 규정은 고의성 입증이 어렵다며 반대를, 5인 미만 사업장 확대 적용은 중장기적으로 검토하겠다고 회신했다.
직장갑질119는 이에 22일 환노위 소속 의원들에게 가해자는 물론 괴롭힘 사실을 확인한 피해자에게 적절한 조치를 하지 않은 사업주도 형사처벌하는 내용을 담은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제출했다. 또 5인 미만 사업장과 아파트 입주민 등 적용 범위를 확대하고 사용자나 사용자 친인척이 가해자인 경우 처벌하는 내용도 담아 의원들에게 제안했다.
국회도 후속 입법에 나선 상황이다. 현재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개정안은 15건이 발의됐다. 대체로 가해자 처벌, 사업주가 피해자 보호 의무를 다하지 않을 경우 과태료 부과, 법 적용 대상을 5인 미만 사업장으로 확대, 예방교육 의무화 등이다.
법의 사각지대에 놓인 골프 캐디, 아파트 경비원 등 특수형태근로종사자도 적용 대상에 포함시키기 위해 제3자의 괴롭힘도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정하자는 법안도 발의된 상태다. 골프 고객과 아파트 입주민들의 폭언과 폭행에 시달리다가 자살하는 사건이 벌어지고 있지만, 이들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해당하지 않아 직장 내 괴롭힘 관련 규정 적용을 받지 않는다.
용 의원도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개정 상황을 지켜본 뒤 보안 입법에 나설 계획이다. 용 의원은 "지난해 괴롭힘 금지법 1년을 맞아 범위 확대와 처벌 강화 법안이 아직도 처리되지 못한 점을 꾸준히 지적해 왔다"고 소개했다.
그는 이어 "통계에서 보듯이 5인 미만 사업장은 물론 특수형태근로종사자의 괴롭힘 문제가 크다"며 "이들을 보호 대상에 포함하고 가해자의 처벌을 강화하는 법안을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한편 국회 환노위는 25일 전체회의를 열고 사용자 또는 사용자 친인척이 가해자일 경우 1,0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하는 내용의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의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