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들끼리 싸우나'... 쿠데타 한 달 미얀마의 사면초가

입력
2021.02.26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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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시민 간 대결 조장, 여론 분열·강경진압 빌미
②시민 불복종, 월급·연금 미지급 등 불편 가중
③외교적 압박과 타협, 혼란 부추겨
④무기한 저항과 강경 진압, 사상자 잇따라

미얀마 도심에서 시민 간 물리적 충돌로 여러 명이 다쳤다. 일상 불복종은 군부와 반(反)군부 시민 양측 모두에 타격을 주고 있다. 외교적 압박과 타협은 혼란을 부추기고 있다. 무기한 저항과 강경 진압이 지속되면서 쿠데타 발발 한 달째로 접어든 미얀마는 사면초가에 빠졌다.

26일 외신과 현지 교민 등에 따르면 전날 최대 도시 양곤에서 1,000명가량의 대규모 친(親)군부 시위대가 가두행진을 했다. 이들은 반(反)쿠데타 시위대에게 돌을 던지거나 새총을 쐈다. 양측 몸싸움 과정에서 군부 지지자가 휘두른 흉기에 적어도 2명의 반쿠데타 시위대가 다친 것으로 알려졌다. 1일 쿠데타 이후 군정 반대 시위가 20일 넘게 진행됐지만 시민 간 물리적 충돌은 이번이 처음이다.

사실 군부 지지 시위대는 수도 네피도를 중심으로 쿠데타 초기부터 등장했다. 양곤 등지에선 소규모로 차량 시위도 벌였다. 대다수 시민의 민주화 열망을 담은 반대 시위가 대세로 굳어지면서 존재감이 희미해지고 목소리도 묻혔다. 다수 시민은 군정이 이들을 동원하거나 고용했다고 의심하고 있다. 실제 경찰이 이들에게 길을 열어주거나 이들의 폭력을 저지하지 않는 사진과 동영상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라왔다.

한 교민은 한국일보에 "군인 가족이거나 일당으로 우리 돈 4,000원을 받은 사람들로 보이지만 쿠데타 전에 아웅산 수치 국가고문이 이끄는 민주주의민족동맹(NLD) 지지율이 60% 정도인 걸 감안하면 군부를 지지하는 시민들도 존재하는 건 분명한 사실"이라고 말했다. 시민 대 시민 대결 구도는 여론 분열을 조장하고, 질서 유지 등 군부의 강경 진압 빌미가 될 수 있다. 사태 악화 요인인 셈이다.

군부를 압박하기 위한 의료, 금융, 운송, 행정 등 주요 분야의 시민 불복종 운동(CDM)은 서서히 일상의 불편을 가중시키고 있다. 월급날인 이날 대부분 은행이 폐쇄되면서 지급이 안 되거나 차질을 빚었다. 노인들은 어떻게 연금을 받을지 우려하고 있다. 공공병원은 텅 비었다. 군부의 CDM 참가자 탄압에 이어 CDM 불참자에 대한 시민들의 낙인 찍기 현상도 들린다. 다만 반대 시위에 참여하는 한 시민은 "군사 정권과 싸우기 위해 그 정도는 희생할 각오가 돼 있다"고 AFP통신에 말했다.

서방이 주축인 국제 사회는 압박 강도를 높이고 있다. 이날 세계은행은 쿠데타 이후 미얀마에 재정 지원을 중단했다고 밝혔다. 영국도 제재 조치를 발표했다. 반면 군부에 유리한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ㆍ아세안) 참관 하 재총선'설도 불거진 상황이다. 이날 군정은 작년 11월 총선 결과를 공식 무효화했다.

무기한 저항과 강경 진압에 따른 인명 피해도 늘고 있다. 전날 기준 시민 5명(언론 보도), 경찰 1명(군부 주장)이 숨졌다. 이날도 군경은 양곤 도심에 모인 시위대 약 3,000명을 향해 경고 사격을 한 뒤 진압 작전을 펼쳐 수십 명을 체포했다. 일본인 기자 1명도 체포됐다고 로이터통신은 전했다.


자카르타= 고찬유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