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의 똥을 채워 넣은 깡통, 박스테이프로 벽에 아무렇게나 붙인 바나나, 다이아몬드 박힌 해골은 과연 예술인가, 사기인가?
우리는 현대미술을 접할 때 당혹감과 불편함을 느낀다. 벽에 바나나 한 개를 붙여놓고 12만 달러(약 1억4,000만원)에 판매하기도 하고, 작품이랍시고 자신의 배설물이 든 캔을 만들어 내놓는 현상을 어떻게 봐야 할 것인가. 사람들은 낙서 같은 그림, 미술관 바닥에 배치한 벽돌 몇 장을 보면서 '어린애도 이 정도는 할 수 있겠다' '이런 게 무슨 예술이야?'라고 생각한다. 예술인지 장난인지 의심스럽다. 심지어, 현대미술을 쓰레기, 혹은 사기라며 반감을 보이기도 한다.
1980년대 말, 한 무리의 젊은 영국 예술가들로 구성된 YBA(Young British Artists)가 미술계에 충격적인 돌풍을 일으켰다. 이 그룹의 리더 데미안 허스트는 포름알데히드에 재워 유리관에 넣은 상어 사체나 수천 개의 채색된 나비를 전시해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이밖에도, 그는 해골에 8,601개의 다이아몬드를 박은 작품을 만드는 등 파격적이고 자극적인 활동을 통해 자기 홍보와 흥행에 성공했다. 한편, 앤디 워홀의 팝아트 계보를 잇는 미국 미술가 제프 쿤스는 스테인레스 스틸, 비닐, 플라스틱, 알루미늄 등 현대의 산업용 재료를 사용해 풍선 인형 같은 일상의 평범한 사물들을 재현한 작품을 만들었다. 실크 스크린 기계를 이용해 미술품의 공장식 대량복제를 시작한 앤디 워홀을 따른 쿤스의 공장식 스튜디오에서는 100명 이상의 조수가 그의 지시하에 작품들을 제작하고 있다.
이 지점에서 우리를 혼란스럽게 하는 의문이 일어난다. 예술은 무엇인가? 예술가란 무엇인가? 예술가(artist)와 장인(artisan)의 차이는 무엇인가? 예술가의 창의적 아이디어가 중요한가, 손재주가 중요한가? 미술작품을 예술로 인정해 주는 기준은 무엇인가?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세잔, 피카소, 뒤샹 등 아방가르드 예술가들은 르네상스 이래 미술사를 지배해 온 사실주의 패러다임을 깨고 새로운 장을 열었다. 현대미술은 인상주의, 큐비즘, 표현주의 미술사조를 거치며 사실적 묘사를 해체하기 시작했고, 재현 자체를 완전히 파괴한 추상, 더 나아가 개념미술에 이르렀다. 마르셀 뒤샹은 이미 만들어진 기성품(레디메이드)에 '샘'이라는 제목을 붙이고 미술품이라고 주장했다. 이제 미술은 전통적인 회화, 조각의 한계에서 벗어났고, 어떤 관념(idea), 혹은 개념에 초점을 맞춘 개념미술(Conceptual Art)이 주류가 된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미술작품은 아름다워야 하고 감동을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기본기가 탄탄한 사실적인 그림, 붓터치와 질감, 색채를 통해 어떤 감성을 일으키는 미술, 미켈란젤로 같은 거장의 정교한 솜씨가 발휘된 조각품이 진짜 예술이라고 믿는 것이다. 따라서 이에 어긋나는 현대미술을 보면서 혼란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현대미술은 장인의 핸드 크래프트(hand craft)와 숙련된 테크닉, 창조의 고통과 힘든 노동의 산물이라는 전통적인 예술개념을 버린 지 오래다. 예술가는 아이디어를 제공하는 존재이며, 직접 그리고 조각하지 않아도 된다. 사물의 사실적 묘사는 더이상 중요하지 않다. 아름다울 필요도 없으며 추한 것들, 평범하고 일상적인 오브제, 어느 것이나 받아들여진다. 예술가가 선택하면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예술이 된다.
하지만, 현대미술이 원래 그런 것이려니 하기엔 뭔가 석연치 않다. 실제로, 비디오 아트의 개척자 백남준도 "예술은 사기다. 예술은 사기 중의 사기이고 그것도 아주 고등 사기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어떤 비평가들은 이 말을 그가 참여한 전위예술 운동인 플럭서스(Fluxus, 백남준과 요셉 보이스가 주도하여 1962년 결성해 1970년대 초까지 활동한 다다이즘 계열의 반예술적, 실험적 미술운동)의 문맥 속에서 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백남준은 플럭서스 시절부터 늘 말장난 같은 엉뚱한 발언을 했고, 이 경우도 유머와 해학적 의미로 얘기했을 뿐 진심으로 예술이 사기라는 뜻으로 말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미술사에 길이 남을 거물급 예술가 백남준은 정말 예술이 사기라고 생각했을까? 아니면, 단지 다다이즘에 바탕을 둔 그의 예술관에서 나온 농담적 표현에 불과한 것일까?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 에프라임 키숀(Ephraim Kishson)은 현대미술에 대한 다소 극단적인 비판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의 '피카소의 달콤한 복수'에 의하면, 피카소마저도 "나는 오늘날 명성뿐만 아니라 부도 획득하게 됐다. 그러나 나 스스로를 진정한 의미에서의 예술가로 생각하지 않는다. 위대한 화가는 조토, 티치아노, 렘브란트, 고야 같은 화가들이다. 나는 단지 나의 시대를 이해하고 동시대의 사람들이 지닌 허영과 어리석음, 욕망으로부터 모든 것을 끄집어낸 한낱 어릿광대일 뿐이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책에서, 피카소는 계속 현대미술의 허구성을 비판한다. "그림 한 장에 수백만 마르크를 지불하는 것은 예술과 문화의 본질적인 가치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아무 가치도 없는 작품 하나하나에 터무니없는 돈을 처바르고, 그 작가들을 신격화하며 그들을 찬양한다."
예술철학의 권위자 스탠리 카벨은 "현대미술의 현재 상황의 특징은 사기의 가능성이 내재한다는 것이다"라고 지적한다. 예술평론가 홍가이는 서구문명이 총체적으로 위기에 직면해 있으며, 미술 역시 막다른 골목까지 가 허무주의에 빠졌다고 주장한다. "본래 예술은 사기가 아니라 무척 중요한 것이다. 그래서 본연의 예술의 의미를 되찾는 것이 우리 시대의 역사적 과제다. 사기인 것은 현대미술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서구의 전위예술 및 후기모더니즘이다."
예술가 스스로 전면에 나서서 현대미술의 허위성을 공격하는 경우도 있다. 익명의 그래피티 아트(graffiti art) 화가 뱅크시(Banksy)다. 뱅크시는 한 노인으로 하여금 거리에서 그의 스케치들을 팔게 하고 사람들의 반응을 살피는 실험을 했다. 행인 대부분은 나중에 수백, 수천 배의 수익을 보장할 이 스케치들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그런데 최근 런던 소더비 경매에서, 거리에서 팔았던 이 스케치들 중 하나인 '풍선과 소녀'가 약 15억 원에 팔렸다. 뱅크시는 그림이 낙찰된 순간, 액자 속에 미리 설치한 자동파쇄기로 작품을 손상시켜 한바탕 소동을 일으켰고, "나는 정말 당신 같은 멍청이가 이 쓰레기를 살 줄 몰랐어"라는 메시지까지 남겼다. 미술품의 가치와 아트마켓 시스템에 대한 신랄한 조롱이다.
설마 예술 자체가 사기일 리가 있겠는가. 그러나 현대미술의 경우라면 그에 대한 대답은 다소 유보적이다. 모더니즘과 포스트 모더니즘, 그리고 그것들의 테두리 안에서 계속 변종되어 나오는 수많은 새로운 미술운동 속에서, 현대미술은 이른바 '양식의 발작기'에 있다. 누구도 명확하게 그것들을 분류할 수 없고 그 의미나 가치도 쉽사리 판단할 수 없다. 문제는 이러한 머리가 핑핑 도는 미술의 다원화와 혼돈 속에서, 바나나 작품처럼 무엇이든지 작가의 독창적 주장이기만 하면 미술이 되어 버리는 모순, 예술이 극단적 허무주의로 흘러가면서 단순히 충격을 주는 것, 흥밋거리의 대상으로 전락하는 현상, 뒤샹식 개념을 기계적으로 답습할 뿐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내지 못하는 창조성의 고갈이다.
어떤 이는 예술가, 갤러리, 화상, 미술품 경매회사, 슈퍼리치들이 참여하는 미술계의 거대 시스템을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상업조직이라고 한다. 미술품이라는 문화상품을 통해 막대한 수익을 올리기 때문이다. 외국의 대형 갤러리의 경우, 연예기획사가 연예인을 양성하듯이 신진 작가를 발굴, 후원하여 그들의 작품을 현란한 철학과 개념으로 포장해 판매하고 이윤을 창출하기도 한다. 사기에 가까운 미술작품이 일시적 유행과 조직적인 후원으로 걸작이 될 가능성도 있고, 흥행과 마케팅 기법에 능숙한 '재능 있는 악당'이 일류 예술가로 인정받을 수도 있다.
현대미술은 사기일까? 그렇다 해도, 사람들은 '임금님은 벌거숭이!'라고 외친 어린아이처럼 감히 '현대미술이 사기'라고는 말하지 못할 것이다. 동화 속 군중이 벌거숭이 임금님에게서 존재하지도 않는 근사한 옷을 애써 보려고 했듯이, 이해하기 어려운 미술작품일지라도 막연히 '뭔가 있겠지'라고 기대하며 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