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국회의 임성근 부장판사 탄핵소추 가결은 2017년 사법농단의 매우 늦은 바로잡기 조치다. 헌법가치 회복이라는 초당적 이슈라고 할 수 있지만 야당은 ‘사법부 길들이기’라고 비난했다. 김명수 대법원장 논란도 번졌다. 혼탁해진 법관 탄핵과 사법개혁의 길을 22일 사법농단 내부고발자, 탄핵소추 발의의 중심인 이탄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물었다. 그는 대법원장 논란에는 말을 아끼며 “탄핵은 별개의 문제”라고 강조했다.
-이 시점에서 법관 탄핵의 의미, 사법농단의 본질을 다시 짚어본다면.
“사법농단의 본질은 헌법을 위반한 것이다. 헌법에는 재판 독립이 규정돼 있다. 사법부 독립이 아니다. 요즘 헌법 교과서는 사법권 독립이라고 쓴다. 임 판사는 재판에 아무 권한도 없는 제3자가 법정에서 당사자 한 번 만나보지 않고 개입한 것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 심기 경호를 위해서다. 그렇게 재판 독립의 가치를 침해한 것이 사법농단의 본질이다. 법관 탄핵은 판사는 신이 아니라는 국민적 상식을 확인한 것이다. 판사도 법을 위반하면 처벌받는 게 상식이다.”
-몇몇 쟁점들을 살펴보자. 우선 임 부장판사가 무죄 판결을 받아 근거 없이 탄핵소추됐다는 지적이 있다. 법조인 법학자 중에서도 이런 주장이 나온다.
“일부 기성 법조인들의, 감정 이입된 주장이다. 70, 80년 동안 온실 속 화초로 보호받던 법관들이, 직업윤리를 위반하면 처벌받을 수 있음을 환기시키자 정서적 불안을 표출하는 것이다. 수십 년간 논리적으로 훈련된 사람도 감정적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형사재판과 민사재판이 다르듯 형사재판과 헌법재판은 별개의 것이다.”
-곧 임기가 만료돼 각하 대상이라는 시각도 있다. 국회법에 따라 탄핵소추가 가결되면 권한이 정지되고 해임이 안 되는데 판사는 왜 임기만료가 유예되지 않나?
“재판에 대해 함부로 이야기할 수 없다. 다만 헌법재판관들도 역사의식이 있으니 판사 견제가 시대적 과제임을 알 것으로 본다. 판사에 대해선 국가공무원에 비해 법규정이 세밀하지 않다. 탄핵소추된 경우 퇴직이 되는지도 헌재가 해석을 내놓을 것이다. 여러 번 밝혔지만 탄핵소추의 목적은 판사 직업윤리의 기준을 세우는 것이고 이제 시작이다. 이번에 헌재가 구체적 기준을 제시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 후 필요한 입법적 보완을 해야 한다.”
-탄핵의 시점이 왜 하필 지금인가도 논란이다.
“지난해 12월 세월호 7시간 칼럼 관련 재판에 관여한 임성근 이동근 판사가 올 초 사직한다는 보도가 나왔다. 세월호 가족들이 ‘이대로 보낼 수 없다’는 성명서를 냈다. 2019년 5월부터 법관 탄핵을 말해왔고 그 이유로 국회의원이 된 나로서는 큰 책임감을 느꼈다. 이틀 만에 성명서에 조응하겠다는 4개 정당 6명 의원이 모였다. 12월 23일 기자회견을 한 그 6명이 나중에 161명 탄핵소추 발의의 초석이 됐다. 한 달 반 동안 매일 동료의원들을 만나 100명 넘게 설득했다. 의총에서 2번 브리핑하고 최고위원 회의에 참석했다. 탄핵소추를 안 하면 국회의 직무유기라고 설득했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소추된 것은 다행이다. 헌재를 통해 헌법 위반을 공식 확인하지 않으면 형사재판에서도 무죄를 받아 사법농단이 아무 문제 없는 일처럼 될 수 있다.”
-20대 국회부터 미적거린 것이, 민주당 지도부가 법관 탄핵은 정치적 실익이 없다고 여긴 것 아닌가.
“지금 탄핵의 본질보다 시기나 의도 등 정치공학적으로 접근하는 것을 보면 지도부의 우려가 이해된다. 역사적 의미가 있고 국민이 이해할 것이라고 설득했다. 20대 국회 때는 찬성 150명을 못 넘겨 부결되면 오히려 면죄부를 준다는 우려가 컸다고 한다.”
-헌정 사상 최초의 법관 탄핵소추 대상이 사법농단 핵심인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등이 아니라 임 부장판사라는 점도 오해와 반발을 불러온 듯하다. 현직인 다른 법관에 대해서도 추가 소추할 생각인가.
“양 전 대법원장, 임 전 차장은 현직에 있을 때 절대적 권력으로 진상 규명을 막았고 2017년 진작 퇴임했다. 동료 의원들 의견을 수렴해 임 부장판사가 첫 대상이 됐는데 현직 판사 중 판사들 스스로 헌법 위반을 공인한 유일한 판사라는 점이 중요했다. 뜻이 좋아도 현실 정치에서 무산시키려는 힘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때문에도 헌재가 객관적 기준을 제시하기를 바란다. 추가 탄핵소추는 앞서 말하기가 적절치 않다.”
-김명수 대법원장이 임 부장판사의 사표 수리를 거부한 것은 적절했나. 징계 대상이란 점에서 당연하다는 시각이 있지만 절차상 근거가 없다.
“사표 수리는 하지 않는 게 맞다. 반증을 말해 보자. 임 전 차장은 2017년 재임용을 희망해 임기가 연장됐다가 갑자기 퇴직했는데, 이인복 전 대법관이 이끈 진상조사위 조사가 시작되던 시점이었다. 왜 나갔겠나. 징계와 변호사 개업의 장애를 피하고 전관예우의 이익을 확보하려 한 것이다. 이를 허용함으로써 결국 사법농단의 몸통은 나가고 남은 사람만 처벌받는다는 논쟁이 시작된 것이다.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초래했다.”
-김 대법원장이 정치권 눈치를 보고 거짓 해명을 했다는 비판이 크다.
“본인이 잘못을 인정했기 때문에 보탤 말은 없다. 다만 지적돼야 할 한 가지는 대법원장이 재판 중인 피고인을 독대한 것은 부적절하다는 점이다. 독대해서 혐의 사실의 위법성, 위헌성에 대해 논의한 셈인데 비위 법관에게 특혜를 준 것이다. 대한민국 피고라면 누가 대법원장을 독대하고 싶지 않겠나. 결국 법원 가족이라는 온정주의적 관점이 있는 것이다. 공사 구분이 명확하지 않았다. 결국 이것이 현 대법원장 체제에서 사법개혁이 지지부진한 근본 원인일 것이다. 지금도 사법농단 사건 피고들이 하는 보편적인 변명이 ‘법원을 위한 것이었다’는 말이다. 여기서 법원은 판사들이 주인인 법원이지 공기관으로서 법원이 아니다. 판사들 마음속엔 판사 가족이라는 집단 의식, 사적 공간으로서의 법원, 가족을 위한 일이니 이 정도는 봐 줘야 하지 않냐는 생각이 있다. 지금도 일부 정치인과 언론이 그것을 국민에게 중계한다. 사법개혁을 지지부진하게 만드는 장애물이다. 미국 유학시절 법원에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견학 온 교사들이 저 법대(法臺)는 우리의 것이다, 우리 부모님의 세금으로 만든 것이라고 가르치는 것을 봤다. 지금 재판이 판사의 사적 소유물이 아니라는 상식을 사회적 합의로 만드는 과정이다.”
-최근 법관 인사와 재판부 배치도 논란이 됐다. 여권 관련 사건과 사법농단 재판을 심리하는 김미리, 윤종섭 부장판사를 인사원칙을 어겨가며 유임시켰는데 이러니 정치권 눈치 본다는 말이 나온다.
“사법행정의 투명성을 높이려면 국민에 대한 설명 의무가 필요하다. 이를 간과한 것이 대법원장의 잘못이다. 우선 2019년 5월 검찰이 사법농단 수사 후 징계 필요가 있다고 통보한 판사 상당수를 징계 청구에서 제외했다. 그런데 대상과 혐의, 징계 안 하는 이유에 대해 한 번도 설명을 안 했다. 둘째로 2018년 말 (법원행정처를 대체할) 사법행정회의 설치와 관련해 판사와 국민의 의견을 수렴한다며 사법발전위원회 건의 실현을 위한 후속 추진단을 구성해 결정을 맡겼는데 결정된 것에 대해 다시 판사 의견을 물어 수정했다. 마치 노사 합의안에 대해 다시 사측 의견을 들어 수정한 것과 같다. 원안에서 후퇴했는데 그 이유도 설명한 적이 없다. 이번 건도 그 연장선에 있다. 사법 행정의 투명성이 개선되고 있지 않다.”
-지금 언급한 대로, 사법발전위의 개혁안 핵심이 제왕적 대법원장, 법관 관료화를 타파하기 위해 행정조직을 비(非)판사화해 사법행정회의를 만든다는 것이었는데 성과가 없다. 평판사에게도 좋을 텐데 왜 그리 저항하고 반대하나.
“법원의 가족주의를 다시 지적할 수밖에 없겠다. 우리 가족이 아닌, 법복 입고 있지 않은 사람에게 행정권을 주는 것에 대한 공포심이 있다고 할까. 엘리트집단의 반민주주의 정서다. 항상 1등 대접을 받았고 사시 붙었으니 내가 획득했다는 사고가 강하고 판사 외 직업 경험이 거의 없는 이들은 공적 자아와 사적 자아 사이에 경계가 없고 공적 자아를 객관화하는 눈도 없다. 대부분 판사들이 아직 그렇다. 하지만 좀 젊은 판사, 최근에 임용된 판사일수록 사회 경험 있는 이들이 많아 앞으로 바뀔 것으로 생각한다.”
-결국 법원행정처 폐지 법안을 이 의원이 지난해 7월 발의했다.
“재판은 판사가 하지만 법원은 국민 것이라는 이념을 담은 법안이다. 재판 독립은 지키되 법원 행정은 사법행정위원회라는 회의체가 하도록 한다. 여기에 판사 변호사 비법조인 등 사회 제세력이 참여한다(위원 12명 중 8명이 비법관). 어느 한 세력이 사법행정위를 좌지우지할 수 없어야 정치적 중립을 지키고 투명해질 수 있다. 전 세계가 다 그렇게 한다. 우리나라만 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판사들이 ‘사법행정’ 고시에 붙었나, 재판을 받아 본 경험이 많은가. 사법농단 사건으로 수사받고 재판받으며 충격받은 판사들이 많다는데 달리 말하면 국민(피고) 입장을 이해 못한다는 이야기다. 그런 판사들께 법원 운영, 재판제도 설계를 맡길 수는 없다. 미래 법관의 상은 법원 운영의 주체가 아니라 재판을 잘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이 법안에 대법원이 ‘사법권은 법관으로 구성된 법원에 속한다’는 헌법 101조를 근거로 위헌 의견을 냈다.
“대법원 의견은 비논리적이다. 헌법 조항을 판사들이 사법행정권을 독점하는 것으로 해석하면서 동시에 사법행정위에 비법관 위원 한두명은 괜찮다고 하는 등 형식 논리에도 맞지 않다. 대법원 반대로 법안 심의가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 내년 대통령선거 이후 논의되지 않을까 예상한다. 대선 때면 국민 지지를 얻기 위해서라도 올바른 정책을 내놓는 경향이 있지 않나. 양당 대통령 후보 공약이 수렴돼 논의가 가능해지길 기대한다.”
-지금까지 사법개혁이 제도화한 것은 고등법원 부장판사 직급을 없앤 정도다. 그 밖에 전관예우 타파, 판결문 공개, 법관독립위원회 설치 등이 건의됐었는데 얼마나 진전됐나.
“대법원이 민사재판만 판결문 공개에 찬성해 이 내용만 법이 통과됐다. 전관예우 관련 재판 녹음녹화를 가능케 하고 사건 배당을 투명하게 하는 법안을 제가 발의했으나 진척이 없다. 사법행정에 국민 의견이 반영될 통로가 있었다면 판결문 공개법에 대법원이 반대의견을 냈겠나.”
-결국 재판에 대한 국민의 신뢰 회복이 관건이다. 성범죄 판결 등 시대에 뒤떨어진 판결이 비판받고, 그런데도 판사들은 재판 독립을 비판 불허로 보는 것 같다. 법관이 동시대와 호흡하고 시민과 공감하는 판결로 신뢰를 얻을 방법은 무엇인가.
“임용, 교육, 평가를 바꿔야 한다. 이 세 가지가 곧 법원 운영이고 사법행정이다. 우리는 이 모든 것을 판사들이 한다. 그래서 변하지 않는 것이다. 판사를 전부 판사가 뽑는 나라는 전 세계에 없다. 임용 후엔 독립적으로 재판을 하지만 어떤 판사에게 재판을 받고 싶은지 국민이 공감하는 기준이 있어야 한다. 우리는 평판사도, 항소심 판사도, 대법관도 대법원장이 제청해 다 스스로 뽑는다. 기존의 가치와 관행이 답습되고 국민의 법감정이 무시되는 구조다. 사법행정위가 임용기준을 만들어 사회 경험이 있는 사람을 뽑을 수 있게 해야 한다. 지금도 가능하긴 하지만 판사들이 주도해 자기 기준에 맞는 사람만 뽑으니 대형 로펌 쏠림 현상이 나타난다. 대법관 제청도 다양한 의견이 반영되도록 해야 한다. 또 대법관을 증원해야 한다. 사건이 너무 많아 사건 처리의 기술적 능력이 있는 사람만 대법관이 된다. 30년 경력의 판사만 된다는 뜻이다. 대법관 수를 늘려 업무 부담을 낮춰야 한다. 판사 교육도 요식적으로 하지 말고 유럽처럼 많은 시간 심도 있게 해야 한다. 평가 역시 판사가 하는데 사실 다른 판사가 재판을 어떻게 하는지 알기 어렵다. 변호사 등 실제로 아는 사람의 평가를 받아야 한다. 사실 사법 선진국들에서 공통적으로 시행하는 제도를 도입하면 큰 문제가 없다고 본다. 입법으로 바꿔야 할 것들이다.”
-국회의원 임기 동안 목표와 계획이 뭔가.
“탄핵소추가 가결된 날 긴장이 풀려서 팔다리에 힘이 쭉 빠졌다. 2017년 첫 사표를 낸 후 4년간 초긴장 상태로 살아온 듯하다. 나도 사람인지라 짐을 나눠지고 싶다. 사법개혁과 함께 다른 의제들에도 적극 참여하고 싶다. 지금 교육위 소속이고 두 아이의 학부모로서 교육격차 해소에 관심이 많다. 학급당 학생 수를 20명 이하로 하자는 법안도 냈다. 더 길게는 ‘남이 아니었던 사람’으로 평가받고 싶다. 즉 국민의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본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 이번에도 느꼈지만 탄핵은 판사의 눈에는 치욕이지만 국민의 눈으로 보면 재판에 개입한 사람을 단죄하는 일이다. 국민의 시각으로 봤기에 가능한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