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분 거리 50분이나 헤맨 경찰... 현장 도착 땐 신고자 사망

입력
2021.02.24 16:00
112서 경찰서 전파 과정서 가해자 정보 누락
현장 출동했다가 못 찾아 뒤늦게 녹취록 청취
3분 만에 현장 찾았지만 피해자는 이미 사망
경찰 "감찰 통해 잘못 드러나면 엄중 문책"


112에 신고된 사건 현장의 핵심 정보가 현장에 출동한 경찰관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아 40대 여성이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경찰은 112에서 관할 경찰서로 신고 내용을 전달하는 과정에서 누락 사실을 확인하고, 경찰 대응과정에 문제가 있었는지 감찰을 벌이고 있다. 경찰은 유족에게 깊은 사과의 뜻을 전했다.

경기남부경찰청은 24일 평소 알고 지내던 여성 A(49)를 흉기로 찔러 숨지게 한 혐의(살인)로 B(53)씨 사건을 검찰에 송치하면서 경찰 대응에 대한 중간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경찰에 따르면 A씨는 지난 17일 0시 49분쯤 112에 “(남자가) 흉기를 들고 나를 찌르려 한다”고 신고했다. 위치를 묻는 112 직원 물음에 “주소는 잘 모른다. 광명시에 있는 OOO(B씨 이름)의 집이다”라고 말했다. 신고 전화는 42초간 이뤄졌다.

위급한 상황을 직감한 112 센터 직원은 곧바로 ‘코드제로’를 발령했다. 코드제로는 납치·감금·살인·강도 등이 의심될 경우 직원이 직접 발령할 수 있는 위급사항 최고 단계다. 코드제로가 발령되면 현장 경찰서로 즉각 전파돼 출동 등 업무 지원이 이뤄지게 된다.

문제는 112 센터 직원이 코드제로 발령 후, A씨 휴대폰 조회를 통해 얻은 위치 정보를 경기 광명경찰서에 전파하면서 핵심 정보인 ‘OOO의 집’을 누락했다는 점이다. 광명서 직원 21명은 112 지령에 따라 현장에 출동했지만 정확한 주소를 알지 못해 사건 현장을 찾는데 실패했다.

당시 112센터가 파악한 피해자 A씨 휴대폰 위치추적 결과,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은 꺼져 있었다. 통신기록을 통해 겨우 A씨 집은 찾았지만, A씨의 딸이 “엄마가 아침에 나간 뒤 아직 돌아오지 않아 어디 있는지 모른다”는 답변만 확인했을 뿐이다.

결국 현장을 찾지 못한 경찰은 30여분이 지난 오전 1시 27분쯤 112센터에 신고전화 녹취록 재청취를 요청했고, 뒤늦게 가해자인 B씨 이름이 녹음된 사실을 확인했다. 1시 37분쯤 B씨 주소지를 파악한 경찰은 A씨 딸을 통해 B씨 이름과 주소지가 맞다는 것을 재확인한 뒤 현장에 도착했지만 A씨는 이미 숨진 상태였다. 경찰이 현장에 도착해 B씨를 체포한 시간은 112 신고 접수 50여분 뒤인 오전 1시 42분이었다. B씨는 당시 소파에 앉아 있다가 별다른 저항 없이 체포됐다.

경찰은 “다른 남자 만나지 말라”는 요구를 A씨가 거부하자 B씨가 홧김에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보고 있다. B씨는 경찰 조사에서 “담배 피우고 왔는데 A씨가 전화를 끊는 모습을 보고 휴대폰을 빼앗아 전원을 껐다”며 “A가 다른 남자한테 전화한 줄 알고 '왜 전화했느냐'며 따지는 과정에서 화가 나서 흉기로 찔렀다”고 혐의를 모두 인정했다.

경찰은 현장 도착이 늦어진 것과 관련해 자체 감찰을 하는 이유도 설명했다. 경찰 관계자는 “A씨 휴대폰 전원이 꺼진 것을 확인한 시간은 당일 0시 51분 19초였고, B씨가 ‘통화 후 5분 정도 지난 뒤 흉기로 찔렀다’고 진술한 걸 보면, A씨가 112 신고 직후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며 “경찰의 현장 도착이 신속히 이뤄졌을 경우 A씨가 생존했을 가능성도 있었던 만큼 철저히 감찰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어 “112 센터 직원이 코드제로 등 다급한 상황에서 전파하려다 벌어진 일이지만 잘못이 드러나면 엄중 문책할 것”이라며 “이유 불문하고 피해자와 유족에게 심심한 위로와 사과 말씀 드린다”고 말했다.

임명수 기자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 Copyright © Hankookilb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