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고 이상의 형을 확정받은 의사의 면허를 취소하는 '의료법 개정안'을 두고 정부·여당과 의료계가 치열한 갑론을박을 벌이고 있습니다. 민주당과 의료계가 맞붙은 주요 쟁점 중 하나는 과거에도 비슷한 내용의 법안이 있었느냐는 것인데요.
민주당은 개정하려는 의료법이 과거 있었던 법이라고 주장합니다. 개정되기 전인 2000년 전까지만 해도 금고형 이상의 중대 범죄에 대해선 면허를 취소해 왔다는 입장이죠.
반면 의료계는 정부가 강력한 통치권을 행사한 유신체제 때나 있던 법이라고 반박합니다. 김해영 대한의사협회 법제이사는 22일 YTN라디오 이동형의 뉴스 정면승부에 출연해 "국민 모두에게 공무원처럼 강요한 게 유신헌법 체계 하의 법이었고 그게 개별 직군 관련 법에 들어가게 됐다"며 "나중에 민주화가 되면서 풀리게 된 것"이라고 지적했죠.
그러나 실제로는 유신체제가 끝난 뒤인 1990년대 이후에도 여전히 남아 있었습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민주당의 주장이 맞다고 볼 수 있는데요. 2000년 6월까지는 금고 이상의 형을 받은 의사에 대해선 면허 취소가 가능했습니다. 무엇보다 유신체제 이전에도 실행한 법이죠. 민주당이 취소 사유를 강화하는 게 아니라 원래대로 되돌려 놓는 것이라고 설명하는 이유입니다.
다만 의료계의 반박도 나름 일리가 있어요. ①의료법이 만들어진 건 1951년 12월인데요. 당시 의료진의 면허 자격에 대해 '의료 관계 법령을 위반하여 금고 이상의 형을 받았을 때 주무 장관이 그 면허를 취소할 수 있다'고 규정했습니다. 의사의 면허 취소 여부를 2000년 7월에 개정한 의료법과 비슷하게 의료관계법 위반으로 제한한 것이죠.
그러나 면허 취소 판단 근거는 1962년에 손을 보게 됩니다. ②1962년 3월에 바뀐 의료법을 보면 면허 취소 관련 조항에 '보건사회부 장관은 의료진이 심히 그 품위를 손상한 행위를 했을 때 일정 기간 업무를 정지시킬 수 있다'로 바뀝니다.
반면 이전 '의료관계법 위반' 조건은 삭제됩니다. 범위가 지나치게 포괄적이지만 품위 손상이 면허 취소 사유로 들어가게 됩니다. 법 제정 당시보다 의료진의 면허 취소 가능성이 더 커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③'일반 중대범죄에 대한 금고 이상의 형'이 법에 구체적으로 명시된 건 1973년 8월 의료법이 개정되면서부터인데요. 당시 법을 보면 의료진 결격 사유로 '금고 이상의 형을 받고 그 형의 집행이 종료되지 아니하거나 집행을 받지 아니하기로 확정되지 아니한 자'가 들어갑니다.
또 '기소 중에 있는 자가 국가시험에 합격한 때에는 그 확정 판결이 있을 때까지 면허를 유보한다'고 정했죠. 대신 이전 '품위 손상' 조항은 삭제됩니다. 당시 법 개정을 하면서 두루뭉수리했던 면허 취소 판단의 범위를 구체화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금고 이상의 형 조항은 1973년 8월 이후 유지되다가 ④2000년 7월 의료법이 개정되면서 삭제됩니다. 당시 '의료 관련 법령에 위반해 금고 이상의 형의 선고를 받고 그 형의 집행이 종료되지 아니하거나 집행을 받지 아니하기로 확정되지 아니한 자'로 바뀝니다. 의료 관련 법 11개와 대통령령으로 규정했는데, 1951년 법 제정 때보다 취소 범위를 줄여서 취소를 어렵게 했다고 볼 수 있죠.
당시는 의약분업 사태로 사회가 시끄러운 시기였습니다. 의료계와 정부가 정면 충돌해 갈등이 극에 달했던 상황이죠. 당시 전국 의사들이 집단적으로 진료 거부를 선언하며 국민이 피해를 입었습니다.
당시 금고 이상의 형 조항 삭제는 정부가 의료계를 달래고자 내민 카드였죠. 김남국 민주당 의원은 22일 YTN라디오 황보선의 출발 새아침에 출연해 "의약 분업을 통해 의사 면허를 사실상 방탄 면허로 만들어준 측면이 있다"며 "과거 잘못을 이번에 바로잡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당시 의료계 총파업은 2000년 6월~10월 세 차례에 걸쳐 진행됐습니다. 6월 동네 의원들이 집단 폐업을 벌인 1차 파업 때 당시 김대중 대통령은 사태를 수습하고자 의료계와 면담한 건 물론 여야 영수회담까지 열었습니다.
논란 끝에 6월 말 정부가 최종안을 제시했지만, 의료계는 이를 거부하며 그해 8월 2차 파업에 들어갑니다. 1·2차 파업 사이에 의료법이 개정된 셈이죠.
그런데 의료계가 강경 대응으로 일관하자 의료법은 다시 7월 이전으로 돌아갑니다. 2000년 8월에 개정된 의료법을 보면 '의료진의 결격 사유' 중 '의료 관련 법 위반'은 빠지고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은 자'로 바뀝니다.
하지만 이 개정은 약 반 년 정도만 유지됩니다. 의약분업 사태가 진정된 이후인 ⑤이듬해 1월 의료 관련 법 위반이 부활하고 금고 이상의 형은 사라집니다. 이후 의료진 면허 취소 관련 규정은 2021년까지 유지돼 왔죠.
결국 의사의 면허 취소는 의료계와 이들의 파업을 중단시키려는 정치권의 판단에 따라 왔다갔다 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국회 통과를 눈앞에 둔 법안과 2000년 7월 이전 의료법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과거보다 면허 취소 사유는 구체화됐고 취소 대상의 폭도 넓어졌습니다.
복지위를 통과한 위원회 대안을 보면 금고 이상의 형에 대해 구체적으로 나와 있습니다.
①'금고 이상의 실형을 선고받고 그 집행이 끝나거나 그 집행을 받지 아니하기로 확정된 후 5년이 지나지 아니한 자' ②'금고 이상의 형의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그 유예기간이 지난 후 2년이 지나지 아니한 자' ③'금고 이상의 형의 선고유예를 받고 그 유예기간 중에 있는 자'로 나옵니다.
2000년 개정 의료법 전보다 면허 정지 기간을 구체적으로 규정했고 집행유예, 선고유예도 면허 취소 사유로 명시했습니다.
이번 개정안에는 면허를 취소당한 의료진이 (면허를) 재교부 받은 뒤 자격 정지 사유에 해당하는 행위를 할 경우 면허를 취소할 수 있다는 조항도 신설했습니다. 자격 정지 사유가 금고형 이상이라면 10년간 면허를 다시 받을 수 없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