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셀로나만 과격한 스페인 '표현의 자유' 시위, 왜?

입력
2021.02.22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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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실 모욕' 래퍼 수감 뒤 엿새째 석방 요구
카탈루냐 독립 요구ㆍ파시즘 반대 맞물려

스페인 전역에서 엿새째 시위가 계속되고 있다. 왕실 모욕죄로 수감된 유명 래퍼를 풀어주라는 게 시위대의 요구다. ‘표현의 자유’ 수호가 핵심 명분인 셈이다. 그런데 바르셀로나가 유독 과격하다. 왜일까.

21일(현지시간) AP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일요일인 이날 바르셀로나 시내에서 열린 집회 규모는 1,000명 정도였다. 전날처럼 초반은 평화로웠다. 16일 감옥에 갇힌 래퍼 파블로 하셀을 어서 석방하라는 구호가 시위대 사이에서 외쳐졌고 그라피티 아티스트들은 국왕 펠리페 6세와 그의 부친 후안 카를로스를 비판하는 벽화를 그려 하셀과의 연대감을 드러냈다.

그러나 해가 저물자 분위기가 달라졌다. 젊고, 어두운 색상의 옷을 입은 시위대가 시 중심을 통과해 카탈루냐 경찰청으로 행진했다. 상점 창문을 깨뜨리고 물건을 약탈하거나 경찰과 몸싸움을 벌이면서다. 경찰을 향해 유리병, 돌멩이, 쓰레기통 등을 던지기도 했다. 그들이 든 플래카드에는 “당신(하셀)은 평화를 지키는 게 쓸모없다는 것을 가르쳐 줬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엿새 연속 벌어진 폭력 시위로 이날 7명을 포함해 연행된 시위대가 100명을 넘었다고 AP는 전했다. 바르셀로나의 경제적 피해는 90만유로(약 12억원)에 이른다고 한다.

연일 이어지는 시위는 무엇보다 더는 방치할 수 없을 정도로 표현의 자유가 위태롭다는 위기감 때문이다. 하셀이 랩 가사와 소셜미디어(트위터) 글을 통해 스페인 왕실을 비판한 건 2014년부터다. 펠리페 6세와 카를로스를 ‘마피아 두목’으로 불렀고, 체제ㆍ정권을 비판하며 테러 단체를 옹호하기도 했다. 이런 죄목으로 선고된 징역형(9개월)이 지난해 5월 대법원에서 확정됐고, 원래 수감 예정일(12일)을 넘겨 나흘간 피신했다 체포됐다.

최근 몇 년간 ‘표현 범죄’ 처벌 논란은 수차례 불거졌다. 하셀과 마찬가지로 테러 단체를 찬양하고 왕실을 모욕했다는 이유로 2018년 래퍼 발토닉에게도 징역 3년 6개월형이 선고됐었다. 하셀 수감 전후로 배우 하비에르 바르뎀 등 문화예술계 인사 200여명이 탄원서를 통해 “오늘은 하셀이지만 내일은 우리 중 하나가 처벌될 수 있다”고 주장하고, 국제앰네스티가 “표현 자유에 대한 끔찍한 소식”이라고 비난한 건 이런 배경에서다.

하지만 시위 강도에 영향을 준 건 지역 정서다. 카탈루냐주(州) 출신인 하셀은 대표적인 카탈루냐 분리독립주의자다. 하셀이 칭송한 테러 조직들도 분리독립 운동, 반(反)파시스트 활동을 한 단체들이다. 마드리드 등 비(非)카탈루냐 도시에서 열린 시위가 상대적으로 온건했던 건 이런 정서가 공유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파는 작지 않을 전망이다. 연립정부 내 균열이 생길 조짐이다. 포데모스와 좌파연합이 왕실 모욕죄의 완전 폐지를 제안하고 나섰지만 징역형을 배제하는 수준의 형법 개정이 적절하다는 게 사회당의 인식이어서다.

권경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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