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화천연가스(LNG)를 연료로 사용하는 선박이 한국 조선 업계의 총아로 부상했다. 국내 조선사들은 연초부터 해외 선주들의 발주를 휩쓸며 LNG 추진선 기술력을 과시하고 있다. 기존 LNG운반선뿐 아니라 초대형 컨테이너선과 원유운반선(VLCC)까지 속속 LNG 추진을 채택하는 추세라 조선사들에는 새로운 시장이 열렸다.
22일 한국조선해양플랜트협회에 따르면 올해 들어 이달 18일까지 회원사들이 수주한 신규 선박은 총 48척이다. 이 가운데 24척은 LNG 추진선이다. 전체 수주량의 절반이 LNG 추진선으로 채워지고 있는 건 1977년 협회 창립 이후 처음이다.
LNG운반선은 비용 효율성 차원에서 기본적으로 운반 화물을 연료로 사용하는 LNG 추진선이었지만 올해는 양상이 다르다. 황 함유량이 높은 벙커유(중유)를 태워 대양을 갈랐던 초대형 선박들도 속속 LNG 추진으로 갈아타고 있다.
올해 국내 조선사들이 수주한 LNG 추진선 중 LNG운반선은 2척에 불과하다. 9척이 컨테이너선으로 한국조선해양 자회사인 현대중공업이 4척, 삼성중공업이 5척을 각각 수주했다.
유조선과 석유·화학제품운반선 등을 통칭하는 탱커 수주량도 9척에 이른다. 삼성중공업이 최근 오세아니아 지역 선사로부터 VLCC 4척을 총 4,587억원에 수주했다. 중소형 선박 건조 세계 1위인 한국조선해양 자회사 현대미포조선도 벌써 탱커 4척을 수주했다.
조선해양플랜트협회 관계자는 “범용상선으로 LNG 추진이 확대되는 건 작년과는 달라진 변화”라며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LNG 추진선 시장 확대가 예상된다”고 밝혔다.
LNG 추진선 바람은 환경 규제에서 시작됐다. 국제해사기구(IMO)가 지난해 1월 시행한 ‘IMO 2020’이다. 산성비를 유발하는 황산화물을 줄이기 위해 선박 연료유의 황 함유량 상한선을 3.5%에서 0.5%로 대폭 낮춘 것이다. 선박의 황산화물 배출 비율은 전체 배출량의 13%에 이른다.
조선해운 업계의 대응 방안은 △저유황유 사용 △탈황장치(스크러버) 장착 △LNG 추진선의 세 가지로 압축됐다. 이 중 저유황유는 초기 투자비가 없지만 기존 연료보다 배 가까이 비싸고 유가 변동에 직접적인 타격을 받는 한계가 있다. 배출가스를 해수로 씻어 내는 스크러버는 해양오염 문제로 중국 인도 싱가포르 등 10여 국가가 자국 항만에서 가동을 금지했다. 연료탱크 설치로 인한 화물 적재량 감소에도 LNG 추진선이 그나마 현실적인 대안으로 꼽히는 이유다.
LNG 추진선은 신규 선박을 건조해야 하고 선가도 10~20% 비싼 게 단점이다. 반면 LNG 가격이 상대적으로 저렴해 연료비 절감 효과가 있다. 황산화물 이외에 질소산화물, 미세먼지, 이산화탄소 배출량도 줄어 장기적으로 ‘탄소중립’ 정책에 부합한다. 포스코가 지난달 원료 전용선으로 도입한 LNG 추진 대형 벌크선 '에이치엘 그린호’의 경우 황산화물과 질소산화물 배출량이 벙커유 운항 대비 각각 99%, 85% 적다.
이런 추세 속에 중국 조선사가 프랑스 선주에게 수주한 LNG 추진 초대형 컨테이너선 납기를 지난해 맞추지 못하며 한국 조선사들의 기술력이 더욱 부각됐다. LNG 추진선은 연료탱크 내부를 영하 163도 이하의 초저온으로 유지해야 하는 고난도 기술이 요구된다. 삼성중공업 관계자는 “끊임없는 기술 개발과 건조 실적을 바탕으로 친환경 선박 시장에서 주도권을 계속 유지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LNG 추진선 효과는 철강업계로도 확산되고 있다. 포스코와 현대제철은 수입에 의존하던 극저온 연료탱크용 9% 니켈강을 개발해 국내 조선사 공급 준비를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