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연인 구하려고 불길 뛰어든 싱가포르 여성, '비극 속 사랑'

입력
2021.02.21 11:03
음력 설 교통사고, 20대 남성 5명 사망
화염 속 약혼자 꺼내려던 여성, 생명 위독

흰색 BMW M4 쿠페가 도로 위를 마치 빙판길 달리듯 빠른 속도로 중심을 잃고 미끄러진다. 180도 회전한 차량은 통제 불능인 상태로 차선을 가로 질러 상점에 충돌한다. 15초 뒤 자동차는 화염에 휩싸인다. 다시 21초 후 한 여성이 차량을 향해 10초간 질주해 주저 없이 차량 화염 속으로 들어간다. 폐쇄회로(CC)TV 두 대에 잡힌 1분19초 분량의 비극이다. 차량에 타고 있던 20대 남성 5명은 모두 사망했고, 여성은 전신의 80%에 화상을 입었다.

21일 스트레이츠타임스는 13일 오전 5시42분쯤 싱가포르 탄종파가 도로에서 발생한 교통사고 현장을 담은 CCTV 영상을 공개했다. 음력 설(CNY)에 청년 5명의 목숨을 앗아간 비극은 싱가포르를 충격과 슬픔으로 몰아넣었다. 사고 발생부터 1주일 넘게 관련 보도가 줄을 잇고 있을 정도다. 센토사섬 북쪽의 탄종파가는 한식당이 밀집해 사실상 '코리아 타운'이라 불리는 번화가다.

끔찍한 사고에는 가슴 아픈 사랑 이야기가 담겨있다. 레이비 오(26)씨는 차에 갇힌 약혼자 조나단 롱(29)씨를 구하려고 CCTV에 나오는 것처럼 불길 속으로 뛰어들었다. 오씨는 당시 사고지점 맞은편 한 한식당에 친구와 함께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목격자들 증언에 따르면 오씨는 화염에 휩싸인 차량의 문을 열려고 했다. 온몸에 불이 붙은 그는 주변 사람들의 도움으로 병원에 옮겨졌으나 전신의 80%에 화상을 입었다. 현재 생명이 위독하다. 정확한 사고 원인도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롱씨의 아버지(62)는 "아들과 수년간 사귄 오씨는 딸과 같은 존재였고, 아들과 곧 결혼해 집을 살 계획이었다"고 현지 매체에 말했다. 말레이시아 출신인 오씨는 비행기 승무원으로 일했다. 학비를 벌기 위해 16세 때부터 '게타이(Getai)' 가수로도 활동했다. 게타이는 싱가포르식 트로트로, 혼령을 달래는 유명 음악 공연이다. 오씨의 지인은 "오씨는 큰 마음을 가진 작은 사람"이라며 "사랑을 위해 모두가 할 수 없는 이타적인 행동을 한 그가 쾌차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자카르타= 고찬유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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