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뉴욕시에서 아시아계 여성을 겨냥한 폭행 사건이 잇따르면서 아시아계에 대한 혐오범죄 우려가 커지고 있다. 연방의회 의원들은 청문회 개최 등 긴급 대응책 마련에 나섰다.
19일(현지시간) 미 언론에 따르면 지난 16일 뉴욕시 퀸스플러싱의 한 빵집 앞에서 줄을 서서 기다리던 50대 중국계 여성이 낯 모르는 백인 남성에게 폭행을 당했다. 이 남성은 난데없이 여성에게 다가와 상자를 집어던진 뒤 강하게 밀어 넘어뜨렸다. 바닥에 넘어지면서 철제 신문 가판대에 머리를 부딪힌 여성은 병원으로 실려가 이마를 다섯 바늘 꿰멨다. 경찰은 다음날 남성을 체포했으나 혐오범죄 혐의로 기소하진 않았다. 피해자의 딸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그 남성이 인종적 욕설을 퍼붓고 엄마를 길바닥으로 밀쳐 넘어뜨렸다”며 “엄마는 아직도 충격을 받은 상태”라고 밝혔다.
공교롭게도 같은날 뉴욕시 맨해튼 미드타운의 지하철에선 70대 아시아계 여성이 얼굴을 얻어맞았고, 할렘의 지하철에서도 60대 아시아계 여성이 뒤통수를 가격당했다. 하지만 이 사건들 또한 인종 혐오범죄로 다뤄지지 않아 공분을 자아내고 있다. 지난달 말엔 샌프란시스코에서 80대 태국계 남성이 산책길에 공격을 당해 넘어져 머리를 부딪혀 숨지기도 했다.
‘아시아 · 태평양계에 대한 증오를 멈추라’라는 사이트가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3월부터 12월까지 미국에서 아시아계를 겨냥한 인종차별 사건은 2,808건에 달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그 진원지로 지목된 중국 등 아시아계에 대한 반감이 급증한 탓이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코로나19를 “중국 바이러스”라 부르며 혐오 프레임을 조장하고 증오범죄를 부추겼다. 이를 우려한 조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하자마자 아시아계 미국인에 대한 차별금지 행정명령을 발동하기도 했다.
연방의회 의원들도 인종 혐오범죄를 좌시하지 않겠다며 강경 대응을 공언했다. ‘아시아 · 태평양 코커스(CAPAC)’ 소속 의원들은 이날 화상 기자회견을 열고 “외국인 혐오와 인종 차별을 거부해야 한다”며 혐오범죄 청문회를 열겠다고 밝혔다. 주디 추(민주당) CAPAC 의장은 “이러한 공격은 우연이 아니다”라며 “트럼프 전 대통령이 외국인 혐오범죄를 유발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기자회견에 동참한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도 “백인 우월주의가 가장 우려스럽다”고 지적하며 “다양성은 우리의 힘”이라고 지지 의사를 밝혔다.
한국계 의원들도 목소리를 높였다. 앤디 김(민주당) 하원의원은 “의회가 증오 행위를 금지하고 청문회를 개최하는 등 적극적인 조처를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하며 “트럼프 전 대통령이 상황을 악화시킨 건 분명하지만 그 바탕에는 시스템 문제가 있다”면서 근본적인 해결책 마련을 촉구했다. 메릴린 스트릭랜드(한국명 순자 · 민주당) 하원의원도 “조치를 하지 않으면 인종 혐오범죄는 계속될 것”이라며 “모든 공동체가 존중받도록 다 함께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도 이날 트위터를 통해 “우리는 모든 종류의 차별에 목소리를 높이고 폭력을 조장하는 무지한 선동을 거부해야 한다”며 혐오범죄 증가에 깊은 우려를 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