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면돌파' 택한 김명수... 사퇴 압박 잠재울지는 미지수

입력
2021.02.19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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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내부망에 2차 입장문... 보름만에 또 사과
"부주의한 답변, 실망과 걱정 끼쳐 깊이 사과"
'정치적 교감' 비판엔 선 긋고 사퇴 요구도 일축
판사들 "구체적 설명 없어 논란 봉합될지 의문"
야당 "꼼수 사과, 낯두꺼운 변명" 거듭 사퇴 요구

‘탄핵 발언’ ‘거짓 해명’ 등으로 최대 위기에 내몰렸던 김명수 대법원장이 19일 ‘정면 돌파’ 카드를 꺼내 들었다. 사상 초유의 법관 탄핵소추를 당한 임성근 부장판사와의 지난해 5월 면담 상황에 대해 사실과 다른 해명을 한 데 대해 2차 사과를 하면서도, ‘정치권 눈치를 봤다’는 비판엔 명확히 선을 긋는 입장을 발표한 것이다. 특히 “앞으로도 헌법적 사명을 다하겠다”는 말로, 야당과 보수세력의 사퇴 요구는 사실상 일축했다.

그러나 김 대법원장이 국면 전환에 성공할지는 미지수다. 당장 법원 내부에서조차 ‘논란을 잠재우기엔 역부족’이라는 회의적 반응과 함께, 이번 사과의 진정성을 의심하는 시선마저 나온다. 게다가 그를 둘러싼 각종 의혹이 모두 해소되지도 않아, 김 대법원장의 위기는 당분간 지속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김 대법원장은 이날 오전 11시55분쯤 법원 내부망(코트넷)에 ‘국민과 법원 가족 여러분께 드리는 말씀’이라는 제목의 글을 게시했다. 그는 “최근 사법부를 둘러싼 여러 일로 국민과 법원 가족 여러분의 심려가 크실 줄 안다. 우선 현직 법관이 탄핵 소추된 일에 대법원장으로서 안타깝고 무거운 마음을 금할 수 없고 그 결과와 함께 국민께 송구하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운을 뗐다.

그리고는 곧바로 ‘사과의 뜻’을 전했다. 김 대법원장은 “그 과정에서 국민과 법원 가족 여러분께 혼란을 끼쳐드린 일이 있었다”며 “그에 대한 지적을 무겁게 받아들이고, 저의 부주의한 답변으로 큰 실망과 걱정을 끼쳐드린 점에 대해 깊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지난해 5월 임 부장판사의 사표를 반려했던 상황과 관련, 김 대법원장은 지난 3일 “탄핵 언급은 없었다”고 부인했으나 이튿날 임 부장판사 측이 녹음파일을 공개하면서 거짓말로 드러났다. 김 대법원장의 이날 사과는 “9개월 전 불분명한 기억에 의존해 답변한 것에 대해 송구하다”고 했던 지난 4일 입장문 및 퇴근길 발언에 이어, 보름 만에 다시 나온 것이다.

다만 사과는 여기까지였다. 김 대법원장은 임 부장판사 사표 반려의 정당성을 주장한 뒤, 억울한 심경을 토로했다. 김 대법원장은 “관련 법 규정 등 여러 사정을 고려한 판단이었을 뿐, 정치적 고려가 있지 않았다는 점을 분명히 말씀드린다”고 했다. 당시 임 부장판사는 형사사건 피고인 신분이었으므로, 사표를 수리할 수 없었다는 걸 에둘러 설명한 것이다. 이어 “취임 이후 제도 개선을 위해 기울인 모든 노력의 궁극적 목표는 ‘독립된 법관’에 의한 ‘좋은 재판’의 보장”이라며 “그런 제가 정치권과의 교감이나 부적절한 정치적 고려를 해 사법의 독립을 위태롭게 한다는 건 있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대법원장직을 계속 지킬 것’이란 의사도 피력했다. 김 대법원장은 “앞으로도 초심을 잃지 않고 ‘좋은 재판’을 위한 사법개혁 완성을 위해 제게 부여된 헌법적 사명을 다하겠다”며 “국민의 신뢰를 받을 수 있도록 더 헌신적인 노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약속하며 글을 맺었다. 정치권 등의 사퇴 압박에 순순히 밀리지 않겠다는 의지를 재차 드러낸 셈이다. 전날에도 그는 국민의힘 의원들의 항의 방문을 받았을 때 “사퇴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김 대법원장의 이날 입장문에 대해선 ‘사퇴는 절대 없다는 강력한 메시지’라는 게 법원 안팎의 중론이다. 하지만 평가와 전망이 호의적이지만은 않다. 지방의 한 고법 부장판사는 “자신의 ‘부주의’를 말했는데 뭐가 부주의했다는 건지, 규정상 무엇을 고려했다는 건지 구체적인 설명이 없다”며 “최근 논란이 된 서울중앙지법 법관 ‘코드 인사’도 설명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수도권 법원 고위 관계자도 “더 이상의 입장 표명은 없다는 선언이자 정면돌파”라면서도 “여러 논란들이 모두 봉합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내다봤다. 김 대법원장의 마지막 승부수가 제대로 먹힐지 불투명하다는 얘기다.

일각에선 김 대법원장의 안일한 현실 인식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재경지법의 한 부장판사는 “공개적인 대국민 사과가 아니라, 법원 내부망에 글을 올리는 건 사태의 심각성에 비해 가볍게 느껴진다”고 비판했다.

야권의 공세도 이어졌다. 국민의힘은 이날 ‘꼼수 사과’ ‘낯두꺼운 변명’ 등의 표현을 사용하며 김 대법원장 입장문을 평가절하했다. 윤희석 대변인은 “국민 신뢰 회복을 위한 마지막 헌신은 그 자리에서 물러나는 것뿐이며 빠른 결단을 촉구한다”고 거듭 사퇴를 요구했다.

김정우 기자
이현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