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 발언’ ‘거짓 해명’ 등으로 최대 위기에 내몰렸던 김명수 대법원장이 19일 ‘정면 돌파’ 카드를 꺼내 들었다. 사상 초유의 법관 탄핵소추를 당한 임성근 부장판사와의 지난해 5월 면담 상황에 대해 사실과 다른 해명을 한 데 대해 2차 사과를 하면서도, ‘정치권 눈치를 봤다’는 비판엔 명확히 선을 긋는 입장을 발표한 것이다. 특히 “앞으로도 헌법적 사명을 다하겠다”는 말로, 야당과 보수세력의 사퇴 요구는 사실상 일축했다.
그러나 김 대법원장이 국면 전환에 성공할지는 미지수다. 당장 법원 내부에서조차 ‘논란을 잠재우기엔 역부족’이라는 회의적 반응과 함께, 이번 사과의 진정성을 의심하는 시선마저 나온다. 게다가 그를 둘러싼 각종 의혹이 모두 해소되지도 않아, 김 대법원장의 위기는 당분간 지속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김 대법원장은 이날 오전 11시55분쯤 법원 내부망(코트넷)에 ‘국민과 법원 가족 여러분께 드리는 말씀’이라는 제목의 글을 게시했다. 그는 “최근 사법부를 둘러싼 여러 일로 국민과 법원 가족 여러분의 심려가 크실 줄 안다. 우선 현직 법관이 탄핵 소추된 일에 대법원장으로서 안타깝고 무거운 마음을 금할 수 없고 그 결과와 함께 국민께 송구하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운을 뗐다.
그리고는 곧바로 ‘사과의 뜻’을 전했다. 김 대법원장은 “그 과정에서 국민과 법원 가족 여러분께 혼란을 끼쳐드린 일이 있었다”며 “그에 대한 지적을 무겁게 받아들이고, 저의 부주의한 답변으로 큰 실망과 걱정을 끼쳐드린 점에 대해 깊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지난해 5월 임 부장판사의 사표를 반려했던 상황과 관련, 김 대법원장은 지난 3일 “탄핵 언급은 없었다”고 부인했으나 이튿날 임 부장판사 측이 녹음파일을 공개하면서 거짓말로 드러났다. 김 대법원장의 이날 사과는 “9개월 전 불분명한 기억에 의존해 답변한 것에 대해 송구하다”고 했던 지난 4일 입장문 및 퇴근길 발언에 이어, 보름 만에 다시 나온 것이다.
다만 사과는 여기까지였다. 김 대법원장은 임 부장판사 사표 반려의 정당성을 주장한 뒤, 억울한 심경을 토로했다. 김 대법원장은 “관련 법 규정 등 여러 사정을 고려한 판단이었을 뿐, 정치적 고려가 있지 않았다는 점을 분명히 말씀드린다”고 했다. 당시 임 부장판사는 형사사건 피고인 신분이었으므로, 사표를 수리할 수 없었다는 걸 에둘러 설명한 것이다. 이어 “취임 이후 제도 개선을 위해 기울인 모든 노력의 궁극적 목표는 ‘독립된 법관’에 의한 ‘좋은 재판’의 보장”이라며 “그런 제가 정치권과의 교감이나 부적절한 정치적 고려를 해 사법의 독립을 위태롭게 한다는 건 있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대법원장직을 계속 지킬 것’이란 의사도 피력했다. 김 대법원장은 “앞으로도 초심을 잃지 않고 ‘좋은 재판’을 위한 사법개혁 완성을 위해 제게 부여된 헌법적 사명을 다하겠다”며 “국민의 신뢰를 받을 수 있도록 더 헌신적인 노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약속하며 글을 맺었다. 정치권 등의 사퇴 압박에 순순히 밀리지 않겠다는 의지를 재차 드러낸 셈이다. 전날에도 그는 국민의힘 의원들의 항의 방문을 받았을 때 “사퇴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김 대법원장의 이날 입장문에 대해선 ‘사퇴는 절대 없다는 강력한 메시지’라는 게 법원 안팎의 중론이다. 하지만 평가와 전망이 호의적이지만은 않다. 지방의 한 고법 부장판사는 “자신의 ‘부주의’를 말했는데 뭐가 부주의했다는 건지, 규정상 무엇을 고려했다는 건지 구체적인 설명이 없다”며 “최근 논란이 된 서울중앙지법 법관 ‘코드 인사’도 설명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수도권 법원 고위 관계자도 “더 이상의 입장 표명은 없다는 선언이자 정면돌파”라면서도 “여러 논란들이 모두 봉합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내다봤다. 김 대법원장의 마지막 승부수가 제대로 먹힐지 불투명하다는 얘기다.
일각에선 김 대법원장의 안일한 현실 인식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재경지법의 한 부장판사는 “공개적인 대국민 사과가 아니라, 법원 내부망에 글을 올리는 건 사태의 심각성에 비해 가볍게 느껴진다”고 비판했다.
야권의 공세도 이어졌다. 국민의힘은 이날 ‘꼼수 사과’ ‘낯두꺼운 변명’ 등의 표현을 사용하며 김 대법원장 입장문을 평가절하했다. 윤희석 대변인은 “국민 신뢰 회복을 위한 마지막 헌신은 그 자리에서 물러나는 것뿐이며 빠른 결단을 촉구한다”고 거듭 사퇴를 요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