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의 착각? 세계의 주요 퀴어축제는 도심에서 열린다

입력
2021.02.20 17:00
안철수, 샌프란시스코 '퀴어 거리'를 '퀴어 행진'과 혼동
뉴욕·런던·마드리드·타이베이 등도 도심서 행진



샌프란시스코에서 일종의 퀴어 축제를 '카스트로 스트리트'라는 곳에서 한다. 중심에서 조금 떨어져서 샌프란시스코의 남부 쪽에 있다. 샌프란시스코 중심에서 (퀴어 축제를) 하지 않는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18일 서울시장 보궐선거 제3지대 후보 단일화를 위해 열린 금태섭 전 의원과 토론에서, 성소수자 행사인 '서울 퀴어문화축제' 참석에 부정적 입장을 보였습니다. 그리고 한 발 더 나아가 해당 행사가 도심에서 열려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습니다.

안 대표는 "퀴어 축제가 광화문 거리에서 열려서는 안 된다는 분들이 계신다"면서 "퀴어 축제를 보기 원하지 않는 사람도 있기 때문"이라고 했는데요.

그러면서 그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리는 퀴어 축제가 도심이 아닌 시 외곽에서 열린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안 대표의 이 주장은 사실이 아니에요. 그가 예로 든 샌프란시스코에서는 해 마다 세계 최대 규모의 퀴어 축제가 바로 도심에 있는 시청 앞에서 펼쳐지거든요. 안 대표는 샌프란시스코의 '퀴어 공동체'가 있는 카스트로 거리를 도심에서 펼쳐지는 '퀴어 축제'와 혼동한 것으로 보입니다.


샌프란시스코 퀴어축제는 누구나 자유롭게 참여


안철수 대표가 샌프란시스코에서 퀴어 행사가 열린다고 가리킨 카스트로 거리는 도심 지역에서 3㎞ 정도 떨어졌습니다.

서울 광화문을 기준으로 보면 이태원이나 신촌 일대 쯤에 해당하는데요. 카스트로 거리는 '퀴어 축제'가 열리는 장소라기보다, 퀴어들이 일상적으로 모이는 '퀴어촌'에 가깝습니다. 즉 축제 시점이 아니라 언제든지 찾아가도 퀴어를 상징하는 무지개 깃발이나 동성 커플의 다정한 모습을 볼 수 있죠.

애초에 금태섭 전 의원이 언급한 '퀴어 축제'에 해당하는 샌프란시스코 행사는 따로 있어요.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성소수자들이 모이는 '샌프란시스코 프라이드' 입니다. 해 마다 6월에 열리는 이 행사에서 성소수자들은 북동쪽 빌 가에서 시작해 도심의 시청 및 시민광장 근처에서 행진을 마치는데요. 또 행진 전날부터 시민광장 일대는 교통이 전면 통제됩니다.


도심 축제는 성소수자뿐 아니라 다양한 공동체의 사람들이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는 행사를 표방합니다.

유명 음악가들도 여럿 동참하구요. 레이디 가가는 2008년 데뷔 직후 이 행사에서 공연했고, 보이그룹 백스트리트 보이즈는 2010년에 공연과 행진에 참여했습니다. 한국 음악가인 보아도 미국 진출을 시도하던 2009년에 무대에 올랐다고 하네요.

샌프란시스코는 세계에서 대표적 '친(親) 퀴어' 도시로 미국에서는 '게이 천국'으로도 불립니다. 2004년 개빈 뉴섬 당시 샌프란시스코 시장은 미국 최초로 동성 커플에게 결혼증명서를 발급하겠다고 전격 선언하면서 정치권 스타로 발돋움했고, 2019년 캘리포니아 주지사가 됐습니다.


런던 퀴어축제 마무리는 총리 관저 앞에서





샌프란시스코뿐 아니라 아니라 미국 뉴욕, 영국 런던, 스페인 마드리드, 대만 타이베이 등에서도 퀴어 축제는 늘 도심에서 펼쳐집니다. 이들 도시는 퀴어 퍼레이드를 주요 관광 이벤트 중 하나로 장려하기까지 하는데요.

미국 뉴욕은 성소수자 운동의 상징인 '스톤월 항쟁'이 벌어진 곳입니다. 이 때문에 뉴욕의 퀴어축제 참가자들은 매디슨 스퀘어 공원에서 시작해 맨해튼 중심가인 5번가를 따라 행진한 후, 그리니치 빌리지의 스톤월 주점 자리를 거쳐 7번가를 따라 올라가는 코스를 선택하는데요.

스톤월 항쟁은 1969년 성소수자가 모이는 대표 장소였던 스톤월 주점을 경찰이 침입해 동성애자들을 체포하다 양측이 충돌했습니다. 이후 성소수자들은 권리 투쟁을 대대적으로 벌이게 됐는데요. 사실상 전 세계적으로 펼쳐지고 있는 퀴어 행진의 도화선이 된 사건으로 평가 받고 있습니다.

영국 런던의 퀴어 행진은 런던 시내 핵심 상점가인 리젠트 거리를 따라 옥스퍼드 광장, 피카딜리 광장, 트라팔가 광장까지 이어진 후 다우닝 가의 총리 관저 앞에서 끝나는데요. 영국 총리는 이 기간 성소수자 공동체 인사들을 접견하는 것이 상례이며, 특히 런던시장도 행사에 참석합니다.





유럽에서 최대 퀴어 축제로 불리는 스페인 마드리드의 '마드리드 오르굴로'는 시내 추 에카 광장에서 시작해 약 일주일 동안 솔 광장 등 도심 곳곳에서 공연 행사가 펼쳐지다 도심 동쪽 아토차 역 앞에서 콜론 광장까지 행진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고 해요.

마드리드는 2017년 '월드 프라이드 퍼레이드'를 유치하는 등 유럽에서 퀴어 행사를 관광 상품화하는 데 가장 적극적입니다.

아시아에서 퀴어에 가장 친화적인 국가는 대만이에요. 타이베이 행진 참가자들은 타이베이 시청과 그 옆 쑨원(孫文)을 기리는 국부기념관 근처에서 출발해 도심 서쪽의 중화민국 총통부까지 갑니다. 서울로 치면 서울시청에서 청와대까지 행진하는 셈인데요. 타이베이뿐 아니라 가오슝, 타이중 등 다른 도시에서도 동시 다발적으로 행진이 진행된다고 합니다.

타이베이에서는 2003년에 첫 퀴어 퍼레이드가 열렸는데, 보수 성향의 국민당 소속으로 훗날 총통이 되는 마잉주(馬英九) 당시 타이베이시장이 "세계 주요 도시에 게이 커뮤니티가 존재하며 도시의 풍요와 다양성을 구성하는 주요 요소"라고 연설하기도 했어요.

인현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