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기완 영결식 모인 사람들 "고인의 삶, 우리 앞길 열어줘"

입력
2021.02.19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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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발인 후 서울광장까지 운구 행렬
운구차 뒤로 시민 수백명 '노나메기 띠'
서울시, 서울광장 분향소 변상금 부과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의 발인과 영결식이 19일 진행됐다.

'노나메기 세상 백기완 선생 사회장 장례위원회'는 이날 오전 8시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발인을 진행했다. 백 소장의 영정 사진 앞에서 큰절을 올린 유족들은 "아버지"를 외치며 눈물을 쏟아냈다. 상주를 맡은 고인의 아들 백일씨는 "우린 민중의 아버지를 잃었다"며 "모두가 스스로 지도자가 돼 아버지 뜻을 이어야 한다"고 밝혔다.

발인을 마치고 집행위원회가 운구 행렬을 이끌자 유족들은 물론, 노동운동 활동가들과 시민 수백명의 행진이 이어졌다. 운구에 참여한 이들은 고인이 생전에 외치던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라는 피켓을 들었다. 운구 행렬에는 위패는 물론 영정과 운구차, 대형 한지 인형, 꽃상여도 등장했다.

노제는 고인이 생전 일하던 통일문제연구소 앞에서 진행됐다. 4차례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던 고인은 1990년대 연구소를 만들어 통일문제에 천착해 왔다. 이도흠 한양대 교수가 "평안하시길 바란다"는 제문을 낭독했고, 영정을 앞세운 행렬은 연구소를 한 바퀴 돌아 다른 행선지로 발길을 이어갔다.

대학로 소나무길에서 열린 두번째 노제에서 박래군 상임집행위원장은 "고인이 소나무길 인근 학림다방을 자주 들러 담소를 나눴다"며 "베토벤 '운명 교향곡'을 즐겨 들으시곤 했다"고 고인을 추억했다. 이어 고인의 생전 목소리가 울려 퍼졌고, 고인의 시를 바탕으로 곡을 붙인 '님을 위한 행진곡'을 배경음악으로 한국민속춤협회가 추모 의식을 진행했다. 행렬은 종로3가역, 종각역을 거쳐 서울광장으로 향했다. 행진 중간중간 길놀이 패가 탈춤을 추고 거리굿을 하며 의식을 이어갔다.

전국에서 모인 시민들은 남녀노소 모두 가슴에 '남김없이'라고 적힌 띠를 붙이고 참석했다. 김용무(75)씨는 "독립운동과 민주화 운동에 큰 족적을 남긴 고인에게 위로와 감사 인사를 드리러 왔다"고 했다. 대학생 이도영(22)씨도 "고등학생 때 박근혜 전 대통령 퇴진 시위를 하며 고인을 알게 됐다"며 "끝까지 무언가를 지키기 위해 활력을 잃지 않는 태도를 본받고 싶다"고 말했다.

오전 11시 30분쯤 서울시청 광장에서 시작된 영결식엔 시민 수백명이 운집했다. 문정현 신부는 "고인은 1970년대부터 얼음을 깨려 했다"며 "고인의 삶이 우리 앞길을 다 열어둔 것과 다름없다"고 조사를 읊었다. 집행위원회는 수시로 광장을 돌아다녔고 거리두기를 유지하며 체온을 체크했다. 김소연 상임집행위원장은 "방역 때문에 공식적으로 99명만 초대했고 온라인 추모 방식으로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영결식은 오후 1시쯤 "가자 백기완과 함께 노동해방 세상으로"라는 구호와 함께 마무리됐다.

고인은 이날 오후 2시 경기 남양주 마석 모란공원에서 고단했던 89년의 삶을 마무리하고 영면에 들었다. 앞서 백기완 소장은 투병 끝에 지난 15일 향년 89세로 별세했다. 1933년 황해도 은율군 장련면 동부리에서 태어난 그는 1950년대부터 통일·민주화운동에 매진하며 사회운동 전반에 참여했다.

한편 서울시는 서울광장 사용금지 조치에도 불구하고 백 소장의 분향소가 차려진 데 대해 장례위원회 측에 변상금을 산정해 부과하기로 했다. 100인 이상 모임이 금지됐는데도, 영결식 방문자가 1,000명을 넘겼기 때문에 감염병 예방법 위반 혐의로도 고발 조치할 예정이다.

김진웅 기자
최다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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