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러내고 싶은 심리가 과잉일 때 영혼은 없고 옷들만 돌아다니는 것 같이 느껴졌어요.”
패션의 화려함 속에서 그는 허상을 포착했다. 안창홍(68) 화백은 예순을 훌쩍 넘어, 붓 대신 스마트폰 디지털펜을 쥐고 사진 위에 그림을 그렸다. 그리하여 탄생한 게 그의 첫 디지털펜화전 ‘유령패션’이다.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앱)을 이용해 2년 동안 제작한 300여점 가운데 50점을 선별했다. 현재 서울 강남구 청담동 호리 아트스페이스와, 같은 건물 바로 위층인 아이프라운지에서 전시가 진행 중(3월 13일까지)이다.
그의 디지털펜화엔 사람이 등장하지 않는다. 투명 모델이 홀로 포즈를 취하고 있을 뿐이다. 사진에 나온 사람을 지우고 그 위에 그림을 그렸다. 지우고 색칠하기를 반복해 처음 사진과는 전혀 다른 작품을 완성했다. 안 화백은 “우리는 풍요의 시대에 살고 있다"면서 "자기를 드러내기 위한 게 너무 넘쳐나면 오히려 공허함을 보게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40여회 개인전을 열고, 2009년 이인성미술상, 2013년 이중섭미술상 등 각종 상을 수상하며 이름을 널리 알려왔던 그가 최근 새로운 도전에 나선 이유는 뭘까. “재료나 방식에 대한 호기심이 많은 편이에요. 새로운 길을 개척하고 싶었죠. 그러다 휴대전화를 보는데, 100만원이나 주고 산 걸 전화, 문자 교환, 영상 보기에만 사용하기에는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영국 유명 작가 데이비드 호크니도 그에게 자극을 줬다. 1937년생으로 안창홍 화백보다 16살이나 많은 호크니는 2010년(당시 73세) 아이패드가 출시되자 아이패드로 드로잉을 그렸다. 안창홍 화백은 “나보다 훨씬 나이 많은 ‘할배’도 하는데, 못 할 게 뭐 있느냐”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전시를 기획한 김윤섭 아이프 아트매니지먼트 대표는 “안 화백은 그동안 아날로그를 대변하는 화가였고, 디지털 기기가 불편할 수도 있는데 디지털 기기만을 활용해 또 다른 영역의 작품을 선보였다”며 “불안감 느꼈을 아날로그 세대에게 용기를 주는 행위이자 결과물이다”라고 말했다.
인터넷에 떠도는 사진을 골라 작업을 한 것이기 때문에 저작권 문제가 신경에 쓰인다. 법률 자문을 받았다는 안 화백은 “사진 이미지를 참고하긴 했지만 완전히 새로운 작품으로 재탄생시킨 것이어서 지금으로선 큰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미흡한 점이 있는지 계속해서 살피겠다”고 답했다.
안 화백의 새로운 시도는 계속될 예정이다. 그는 이번 전시작들을 100호짜리 대형 캔버스에 다시 옮기는 작업을 할 계획이다. “원래 페인팅 화가에요. 수십년 다뤄온 물감으로 다시 그려내는 걸 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