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생을 반독재·민주화, 노동·통일 운동에 앞장선 '거리의 투사' 고(故)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의 발인을 하루 앞둔 18일, 추모문화제에는 100여명의 시민들이 모여 그의 생전 언행을 반추하며 그리움을 달랬다.
'노나메기 세상 백기완 선생 사회장 장례위원회'는 이날 오후 7시부터 빈소가 차려진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3층 마당에서 '백기완 선생 추모문화제'를 진행했다.
백 소장의 음성과 그의 생전 활동 모습들이 담긴 영상으로 추모문화제가 시작됐다. 그의 장편시 '묏비나리'를 원작으로 한 민중가요 '임을 위한 행진곡'이 나올 때에는 참석자들이 함께 따라부르며 연대를 나타냈다.
사회를 맡은 민주노총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고동민 조합원은 "선생께서는 늘 투쟁할 때 '노동자가 기 죽으면 안 된다'고 말씀하셨다"고 운을 뗐다. 그러면서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투쟁!'이라는 구호로 추모문화제의 문을 열었다.
백 소장의 맏딸인 백원담 성공회대 교수는 "아버님의 너도 일하고 나도 일하고, 너도 잘 살고 나도 잘 살되 올바로 잘 살자는 그 정신과 삶이 우리의 방향타가 돼줬다"며 "우리 삶의 방법론을 찾을 때, 여러분이 아버님과 만났던 그 인연의 자리를 떠올려달라"고 당부했다.
가수 전인권씨도 자리해 "너무 슬퍼하지 마시라, 하늘에서 보실 것"이라며 '임을 위한 행진곡'을 다시금 열창했다. 가수 들국화의 '희망가'를 배경음악으로 하는 추모 영상에는 "싸움터에 나선 사람은 돌아갈 데를 찾으면 안 된다. 역사의 현장에 나서면 집으로 돌아갈 생각을 하면 아니되는 것이다" 등 백 소장의 말이 담겼다.
백 소장과 19살 때부터 70년지기 동무인 방배추(본명 방동규)씨는 "긴급조치로 둘다 서대문형무소에 있을 때 백 선생이 기결수가 돼 다른 방으로 가게 되면서 지나가면서 봤다"며 "그 갖은 고생을 다하고 봤는데 '몸 괜찮냐'가 아니고 '야, 배추야 기죽지마!' 하더라"고 회상하기도 했다.
우진규 마임이스트의 춤과 배일동 선생의 판소리, 민중가수 꽃다지의 추모 공연이 이어지고, 재차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투쟁!' 구호를 외치며 행사를 종료할 때까지도 추모객의 분향은 끊이지 않았다.
추모문화제에 참석한 정덕주(72)·이춘숙(64)씨는 "쌍용차 투쟁 때 눈이 많이 왔고 비서진들이 방석을 갖고 왔는데, 선생께서는 '내가 왜 방석에 앉아야 하느냐'면서 우리와 같이 바닥에 앉으셨다"며 고인을 떠올렸다. 조문 내내 눈물을 흘린 김현성(50)씨는 "어디든 투쟁 현장에 찾아가면 뵐 수 있었던, 가장 선봉에서 큰 소리를 내주신 어른이셨다"며 "정말 사람답게 살 수 있는 법을 알려주신 분"이라고 말했다.
백 소장은 15일 오전 투병 끝에 향년 89세로 영면했다. 장지는 경기 마석 모란공원이다. 장례위원회는 19일 오전 8시 발인이 끝난 후 서울 종로구 대학로에서 노제 및 추모행진을 할 예정이다. 영결식은 오전 11시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