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가서 일할 수 있어 숨통이 트였는데, 그나마 또다시 이용 제한되면 어쩌죠?"
석달 넘게 재택 근무를 하고 있는 직장인 이성은(가명·37)씨는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세에 조마조마하다. 설 연휴가 끝나자마자 17, 18일 이틀 연속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600명을 넘으면서 여기저기서 4차 유행이 오는 것 아니냐는 걱정이 커지고 있어서다.
대표적 '코피스족(커피와 오피스의 합성어로, 카페에서 일하는 사람들)'인 이씨는 지난달 18일부터 정부가 카페에서 취식을 가능하게 하면서 "반강제적 '고립'에서 탈출했다"고 말한다.
이씨는 "그렇게 탈출 한 달 만에 도로 방구석에 틀어박힐 생각을 하니 끔찍할 정도"라며 "탁 트인 공간에서 답답하지 않게 일할 수 있어 좋았는데..."라고 말했다.
'카공족(카페와 공부의 합성어로, 카페에서 공부하는 사람들)'과 코피스족들은 최근 카페에서 취식이 가능해진지 한 달 만에 또다시 취식금지가 되는 건 아닌지 노심초사하고 있다.
직장인 박희수(가명·40)씨는 최근 호텔에서 업무를 보는 '재텔근무'를 해봤다. 하지만 여지없이 호텔 앞 카페로 달려갔다는 그. "카페에서 일하면 업무의 효율성이 확실히 높다"는 이유를 댔다.
아파트에 사는 그는 집에서 일을 하면서 회사에 출근할 땐 몰랐던 층간 소음에 시달렸다. 그는 조용한 환경에서 업무를 보기 위해 집 근처 비즈니스호텔에 방을 잡았다. 하지만 재텔근무를 해도 또 다른 문제점이 있었다. 업무의 시작과 끝의 경계가 모호해지면서 사무실에서라면 벌써 퇴근을 했을 시간에도 초과 업무를 하는 상황이 되풀이됐다.
박씨는 하루 이상을 버티지 못하고 결국 노트북을 들고 호텔 앞 프랜차이즈 커피숍으로 향했다. 이곳은 카공족 등을 위해 1인 좌석을 갖췄다. 그는 "비즈니스호텔이라 공간이 좁아서 방 같아 답답했고, 너무 조용해 이상하게 집중이 안 됐다"고 말했다.
왜 일까. 최근 영국 BBC방송은 "커피숍에서 더 창의적일 수 있다"고 보도했다. ①적당한 소음이 들리고 ②사람들이 모이는 모습을 볼 수 있고 ③시각적으로 자극이 있는 등 업무나 공부를 하는데 오히려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카페에 카공족, 코피스족이 몰리고 더 늘어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카페는 이미 여러 나라에서 수세기 동안 창의력이 발휘된 공간이었다. 어니스트 해밍웨이, 파블로 피카소, 시몬 드 보부아르, 장 폴 사르트르, 밥 딜런 등 예술가들은 단골 카페에서 작업하며 그들의 창의력을 발산했다.
특히 조앤 롤링은 에든버러의 '엘리펀트 하우스'라는 카페에서 '해리포터' 시리즈를 시작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 카페는 '해리포터 탄생지'라는 큰 간판까지 붙여 놓았다. 어떤 일을 도모하려고 할 때 자연스럽게 카페로 향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로 보인다.
BBC에 따르면 2012년 미국 시카고대에서 발행하는 학술지 '저널 오브 컨슈머 리서치'에 실린 '소음은 항상 나쁜 것인가? 주변 소음이 창의력에 미치는 영향 탐구(Is Noise Always Bad? Exploring the Effects of Ambient Noise on Creative Cognition)'에 따르면 카페와 같은 장소에서의 주변 소음이 실제로 창의력을 향상시킬 수 있다는 결과를 내놓았다. 어떤 일을 하려고 할 때 주변의 자극으로 인해 약간 산만해지면, 사고 능력이 높아져 창의적 아이디어 창출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또 2019년 '무작위 소음 자극에 의한 뇌의 역학적 변화(Altering brain dynamics with transcranial random noise stimulation)'라는 과학보고서에 따르면 적절한 양의 소음이 우리의 감각 형성에 도움이 된다는 '비선형 공명'이라는 연구 내용을 내세우고 있다.
이를 테면 재즈 음악, 가벼운 대화, 원두 그라인더에서 찌꺼기를 두드리는 소리는 성가신 잡음이 아니라 오히려 창의적 활동에 도움이 된다는 이론이다. 이를 '커피숍 효과'라 부르기도 한다.
더불어 카페는 일을 하기 위해 동기부여 역할도 한다고 BBC는 전했다. 공부나 업무 등 서로 비슷한 일을 하기 위해 온 사람들로 둘러싸여 있기 때문이다. 방송은 "무언가에 집중하고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사람 옆에서 일을 하는 것만으로도 똑같은 능률을 얻을 수 있다"고 한 연구를 인용해 보도했다.
순기 리 미 펜실베이니아의 카네기멜론대 경영대학원(조직 이론 및 전략) 조교수는 "커피숍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는 사회적 촉진 효과"라며 "그곳에 가서 다른 사람들이 일하는 모습을 보면 자연스럽게 일을 시작하는 기분이 들게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것들을 관찰하는 것만으로도 더 열심히 일하도록 동기를 얻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또한 시각적 자극도 사람들의 창의적 사고 과정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졌다. 코리던 스미스 미 버펄로대 건축학과 교수는 "사람들이 오가며, 외부에서 들어오는 빛의 방향이 바뀌고, 커피와 음식의 향기는 다양하다"며 "주변에서 일어나는 이런 움직임은 우리 두뇌가 집에서와는 조금 다르게 작동하도록 만든다"고 말했다.
여전히 끝나지 않은 재택근무로 인해 코피스족들은 카페가 궁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여러 명이 앉는 테이블을 혼자 차지하고 앉아 민폐를 끼칠 수는 없는 법. 이 때문에 코피스족과 카공족이 눈치 보지 않고 '귀한 손님' 대접을 받을 수 있는 곳이 쏙쏙 생기고 있다.
프랜차이즈 커피전문점들은 아예 카공족, 코피스족을 위한 전용 공간을 둔 매장들을 내놓고 무인 카페, 도서실 같은 1인 좌석제 등을 운영하는 중이다.
가장 적극적인 곳은 탐앤탐스다. 현재 코로나19로 카페 운영이 제한적인데도 1일 무인 비대면 카페인 '라운지탐탐X갤러리' 이태원점을 오픈했다. 2019년 건대점을 시작으로 서울대, 홍대 등 대학가 중심으로 전용 공간을 꾸렸는데, 찾는 이들이 많아 올해 수도권 에 3곳을 더 오픈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이렇게 되면 더 이상 카공족과 코피스족은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된다. 이곳은 전용 애플리케이션(앱)으로 이용 날짜와 시간을 예약해 입장, 퇴실까지 전 과정을 비대면으로 이용할 수 있다. 2시간 이용에 5,000원, 4시간 7,000원, 6시간 9,000원이며, 전자동 커피머신에서 음료를 무제한으로 즐길 수 있다.
탐앤탐스 측은 "비록 코로나19로 카페 운영 자체가 원활하지 않지만 이런 공간들이 상승세를 타면서 올해 안에 경기 남양주와 부평, 서울 광진구 등에도 새로 만들 계획"이라고 밝혔다.
프랜차이즈업체 할리스커피와 달콤도 각각 1인 좌석을 갖춘 매장을 늘리는 추세다. 할리스커피는 카공족, 코피스족을 위한 1인 좌석과 콘센트를 충분히 설치해 MZ세대(밀레니얼세대+Z세대, 1980년대생부터 2004년생까지를 가리킴)에게 눈도장을 받고 있다. 특히 학원가가 밀집한 종로 일대에 1인 좌석 특화 매장을 두고 있다.
할리스커피의 경우 지난해 코로나가 터지기 전까지 1인 좌석을 갖추거나 늘린 매장은 리뉴얼 전과 비교해 매출이 최대 140%까지 증가한 곳도 있다.
달콤도 코로나19로 좌석이 제한적이긴 하지만 예약제를 통해 음료 하나만 시키면 4시간을 이용할 수 있는 1인 좌석제를 운영 중이다. 서울 및 수도권에 이런 매장이 10곳이 넘는다. 코로나19 확산 이전에는 주말과 명절 연휴에 예약이 꽉 찰 만큼 인기를 얻었다.
한 커피 프랜차이즈업계 관계자는 "카공족이 자리만 차지하는 민폐 고객이 아닌 '충성고객'으로 인식이 바뀌고 있다"며 "이들의 이용률은 점점 증가하고 있기 때문에 이제 업계도 회전율이 아닌 오래 머물 수 있는 공간으로 변신하기 위해 변화 중"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