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폭력' 협회에 제보해도 입 막거나 형식적 조사

입력
2021.02.20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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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을 만한 신고기관 없고 '배신자' 낙인까지
지난해 문 연 스포츠윤리센터 수사의뢰 1건
"그 나물 그 밥인데 누굴 믿고… 정부도 공범"

"결국은 그 나물에 그 밥인데 뭘 믿고 제보를 하겠어요."

지도자와 선배 그리고 주전 선수로부터 폭력 피해를 경험한 체육인이나 관련 사실을 알고 있는 제보자가 침묵을 택하지 않는다면, 대체로 종목별 체육단체나 상급 체육기관 문을 두드린다. 철저한 조사와 확실한 징계를 기대해볼 수 있는 공인된 기관이기 때문이다. 체육단체들은 사안이 접수되면 자체 조사와 더불어 스포츠 공정위를 개최하는 등 규정에 따라 가해자들를 징계한다.

문제는 용기를 내서 폭로하고 제보하고 호소를 해도, 피해자를 보호하고 이해하기보다는 피해자 입을 틀어막으려는 시도가 더 많다는 사실이다. 팀 내 가혹행위로 극단적 선택을 한 트라이애슬론 국가대표 출신 고(故) 최숙현 선수의 장례식이 치러진 지난해 6월 대한철인3종협회는 선수들에게 입막음을 시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협회 관계자는 최 선수의 동료 선수들한테 연락해 "사태를 진화하는 것도 용기"라며, 사실상 입막음을 강요했다.

피해자들이 체육단체를 믿지 않는 또 다른 이유는 형식적 조사로 사건을 무마하는 경우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해 7월 대구시는 최 선수 사망이 알려진 뒤 대구시 소속 모든 실업팀 선수들을 상대로 성폭력 및 가혹행위 관련 인권침해 설문조사를 진행해 '문제가 없다'는 결론을 냈다. 그러나 설문조사가 공개된 뒤 일주일 만에 성추행 폭로가 터져 나왔다. 당시 대구시청 여자 핸드볼팀에서 감독이 선수들에게 술자리를 강요하고 성추행을 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는데, 결국 민간조사위원회가 개입해 보름 만에 진실이 밝혀졌다.

체육단체가 제대로 된 조사를 하지 못하는 배경에는 엘리트 체육인들이 권력을 잡은 폐쇄적 구조가 자리잡고 있다. 정용철 서강대 교육대학원 체육교육 전공 주임교수는 "엘리트 선수로 자란 이들은 은퇴 후 지도자 생활을 하다가 종목별 체육단체에 진출, 요직을 꿰차면서 후배들 비위를 감싸는 경우가 많았다"며 "폭력과 금전 비위 등 중대 사건들이 발생해도 솜방망이 처벌이나 징계 감면으로 제보자나 폭로자가 되레 곤경에 빠지는 경우가 반복됐다"고 전했다.

이런 일이 반복되다 보니 피해자나 제보자는 '비위를 밝히더라도 나를 보호해줄 곳은 아무 데도 없다'고 결론 내린다. 동계스포츠 국가대표 출신의 체육인은 "최근 스포츠 폭력 문제가 이슈가 되면서 사정이 나아졌지만, 예전엔 제보하고 커밍아웃한 사람들은 배신자 낙인이 찍히는 것은 물론 그 바닥을 떠나야 했다"고 밝혔다.

이처럼 체육단체가 가해자를 보호한다는 인식이 팽배하다 보니, 선수들은 신뢰할 수 있는 신고기구 마련이 가장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2019년 스포츠혁신위원회 권고에 따라 지난해 8월 문을 연 스포츠윤리센터가 대안으로 거론되면서, 체육계에선 인권침해 및 비리 근절에 대한 기대가 컸다.

그러나 그 동안의 활동내용을 들여다보면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지적이 높다. 이용 국민의힘 의원실이 스포츠윤리센터로부터 제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센터 설립 이후 올해 2월 15일까지 총 372건의 상담과 123건의 신고가 접수됐다. 인권침해 관련 상담과 신고가 각각 280건과 41건으로 65%를 차지하고 있으며, 이 가운데 성폭력 및 폭력과 관련한 상담과 신고는 91건이었다.

신고가 접수된 123건 중 심의위원회는 25건을 처리했지만, 수사의뢰된 사건은 1건에 불과했다. 이마저도 인권침해와 관련한 사건이 아니었다. 자체 종결한 8건을 제외한 나머지 90건은 여전히 조사가 진행 중이다. 스포츠윤리센터는 조사 속도가 늦다는 지적에 대해 "출범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강제 수사권이 없어 사건 관계자 접촉이 쉽지 않다"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오지혜 기자
김형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