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그린 그림을 예술의 영역으로 볼 수 있을까

입력
2021.02.27 09:00
13면

편집자주

현실로 성큼 다가온 인공지능(AI)시대. 생활 속에 깊숙이 스며든 AI 이야기가 격주 토요일 <한국일보>에 찾아옵니다. 컴퓨터비전을 연구하는 정소영 서울여대 기초교육원 초빙교수가 쉽게 풀어드립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예술은 인간만의 고유한 영역이라고 여겨졌다. 예술가는 자신이 느낀 다양한 감정을 작품에 담아내 타인이 공감할 수 있도록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이 때문에 예술은 감정을 매개로 탄생된 창조물로 간주되고는 한다. 10여년전 SF영화 속 로봇을 보면 인간과 거의 유사한 지능을 가진 AI 로봇도 감정이 없는 기계로써 예술이 무엇인지 전혀 알지못하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아마도 기계는 감정이 없고 스스로 생각하지 못하기 때문에 미술이나 음악과 같은 창조적인 작업을 할 수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감정이 없는 기계는 예술품을 만들지 못하는 것일까? 아리스토텔레스는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고 했다. 모방이 창조를 향해 다가가는 첫걸음이라고 한다면 인공지능은 이미 훌륭한 예술가가 될 자질을 가지고 있다.

2015년 ‘예술적 스타일의 신경 알고리즘(A neural algorithm of artistic style)’이란 논문에서 컴퓨터가 예술품을 그럴듯하게 모방한 것이 소개돼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 이 논문에는 풍경사진을 명화 스타일로 재탄생 시킨 결과물이 실려있는데, 마치 화가가 직접 그린 그림처럼 풍경사진을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에’ 스타일로 만들기도 하고, 뭉크의 ‘절규’와 같은 스타일로 만들기도 했다. 이 논문에서 사용한 알고리즘은 딥러닝을 이용한 스타일 변환 기술로 사진 속 물체의 전체적인 형태와 구조를 내용(content)으로 정의하고, 색감이나 질감 등을 형식(style)으로 정의해 사진영상에서 content와 style을 각각 따로 계산해낸 후 이 둘을 조합하는 방식의 알고리즘이다. 즉, 형태를 유지하고자 하는 content 사진과 명화와 같은 특유의 style을 가진 사진만 있다면 이 두 사진의 content와 style을 각각 계산해 적절히 조합함으로써 명화스타일의 작품을 생성해낼 수 있는 것이다. 이때까지는 딥러닝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고 있는 CNN을 이용하여 주어진 영상의 content, style을 각각 학습하고 조합하는 정도로 작가의 화풍을 모방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후 GAN(Generative Adversarial Network)을 이용하면서부터는 컴퓨터가 좀 더 창조적인 작품을 만들어내게 된다.

GAN은 영상을 생성하는 생성기와 진짜 영상과 가짜 영상을 판별하는 판별기로 구성돼 있는데, 이 두 네트워크가 서로 경쟁적으로 학습을 하며 새로운 영상을 생성해 내는 딥러닝 모델이다. GAN의 기본 원리를 이해하기 위한 하나의 예로 고흐 화풍의 그림을 GAN으로 만든다고 가정해보자. GAN의 두 네트워크 중 생성기는 고흐 화풍의 그림을 만들어내는 역할을 하고 판별기는 생성기가 만들어낸 그림이 진짜 고흐의 그림인지 가짜 그림인지 판별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마치 생성기는 고흐 그림을 위조하는 위조범이고 판별기는 고흐의 모조품을 가려내는 경찰이 되는 것과 같다. 판별기는 고흐 그림의 진위 여부를 가려내기 위해 고흐의 진짜 그림과 생성기가 만든 가짜 그림을 번갈아 입력 받으며 학습하여 진위 여부를 판별해낸다. 이 때 생성기는 판별기를 속이기 위해 더욱 진짜 같은 가짜 그림을 만들게 된다. 생성기가 더 진짜같은 그림을 만들수록 판별기는 진위여부를 가리기 위해 더 엄격한 기준으로 진짜인지 가짜인지를 판별하게 될 것이다. 이 두 생성기와 판별기는 서로 경쟁적으로 학습하며 종국에는 판별기를 속일 만큼 진짜 같은 고흐 그림을 만들 수 있게 된다. 이때 중요한 것은 GAN을 이용하여 생성한 그림은 실재하는 고흐 그림과 똑같은 그림을 그린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고흐 그림과 유사한 분포를 가지는 영상을 생성했기 때문에 고흐 그림의 스타일과 구조를 유사하게 가지고 있을 뿐 실제 존재하는 고흐의 그림과는 다른 그림을 생성해 낸다. 그렇다면 이걸 예술로 볼 수 있을까? 필자의 생각에 이는 모방에 더 가까워 보인다. 하지만 만약 컴퓨터가 특정 화풍이 아닌 여러 화가의 화풍을 학습한 후 새롭게 해석해 전혀 본 적이 없는 스타일의 그림을 만들어낸다면 그것은 예술의 한 영역으로 인정해줘야 하지 않을까? 우리는 예술과 기술의 구분이 모호해진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듯 하다.

정소영 서울여대 기초교육원 초빙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