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송파구 롯데마트 잠실점 지하 3층. '후방'이라고도 불리는 이곳은 일반 소비자들에겐 노출되지 않는 뒷마당 같은 곳이다. 컨베이어 벨트 위로 '바로배송'이라고 적힌 바구니들이 밀려들고 포장이 끝나면 배송기사가 분주히 상자들을 트럭에 싣는다.
트럭은 30분마다 1대씩 출발한다. 바로배송은 주문 2시간 내 배송완료가 원칙이다. 직원이 대신 장을 보는 시간을 포함해 분류와 포장, 배송기사의 이동 시간을 고려해 트럭 1대당 처리하는 주문은 5건이 최대였는데, 최근 이 수량이 10건으로 2배 늘었다. 앞으론 30건까지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새로운 배송 시스템 '릴레이 배송'을 도입한 후 생긴 변화다.
18일 업계에 따르면 롯데 통합몰 롯데온이 배송 플랫폼 스타트업 PLZ와 지난달 25일부터 롯데마트 잠실점에서 릴레이 배송 시범 서비스에 돌입했다.
차량 배송기사가 운전부터 집 앞 방문까지 모두 책임지는 일반적인 방식과 달리 릴레이 배송은 마지막 현관까지의 구간인 '라스트마일' 배송을 하는 '플렉서'가 따로 있다. 플렉서는 본인 담당 공간(CP·Contact Point)에서 기다리다가 트럭이 오면 물건을 꺼내 최종 목적지까지 오토바이, 도보 등으로 배달한다.
차량 기사는 CP에 잠시 정차해 플렉서에게 물건만 넘겨주면 된다. 더 빠르게 배달 지역을 돌 수 있으니 시간당 배송 건수가 많아지는 구조다.
롯데마트 잠실점 바로배송은 주변 아파트 1만2,600여 가구를 담당하는데, 이전엔 배송기사가 트럭을 끌고 돌아다니며 엘리베이터를 타고 오르내려야 했다. 지난 3주간 릴레이 배송을 시범 운영한 결과, 전보다 실제 배송 건수가 60% 이상 늘었다. 롯데온은 시스템이 자리 잡으면 배송 소요 시간을 절반 가까이 줄일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
쿠팡 등장 전까지 배송은 택배시장에 의존했다. 택배시장은 택배사의 거점별 허브물류센터에 모여 있던 상품들이 각 지역 대리점으로 퍼진 뒤 다시 집 앞까지 이동하는 '허브 앤 스포크(Hub and Spoke)' 구조다. 자전거 바퀴살(Spoke)이 중심축(Hub)으로 모이는 것처럼 물류가 거점으로 집중된 후 다시 개별 지점으로 이동하는 방식이라 배송에 2,3일씩 걸릴 수밖에 없다.
이 방식을 파괴한 게 쿠팡이다. 수조원을 쏟아부어 전국에 자체 물류센터를 지었다. 상품을 직매입해 센터에 미리 쌓아두고 주문이 들어오면 바로 출발한다. 상품의 이동 거리를 획기적으로 줄였기에 익일 도착을 보장하는 로켓배송이 가능한 것이다.
속도에서 밀린 대형마트들도 점포를 물류센터 창고처럼 활용하기 시작했지만 한계가 분명했다. 근처에 마트가 없는 소비자는 소외되고 점포마다 공간과 취급 품목 제한으로 처리 건수를 마음껏 올릴 수 없다. 릴레이 배송은 CP라는 아주 작은 스포크를 하나 더 생성해 속도와 처리 건수를 끌어올린 모델이다. 도입 점포가 많아지면 2시간 내 배송 서비스가 대폭 확대되는 셈이다.
다만 플렉서라는 노동력 추가에 따른 비용 상승이 걸림돌이다. 배송 건수가 늘어날수록 비용이 더 들어 일정량 이상 배송 물량이 확보돼야 수지 타산이 맞는다. 롯데온은 일반인, 은퇴한 어르신 등도 아르바이트나 소일거리로 플렉서 활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롯데온 관계자는 "릴레이 배송으로 바로배송 물량을 늘려 더 많은 고객이 서비스를 경험할 수 있도록 하는 게 1차 목표"라며 "인구밀도가 높고 배송 주문량이 많은 지역을 중심으로 서비스를 확대할 예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