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과 달리 반성하는 독일, EU 맏형으로 '우뚝'

입력
2021.02.20 04:30
11면

편집자주

오늘날 세계경제는 우리 몸의 핏줄처럼 하나로 연결돼 있습니다. 지구촌 각 나라들의 역사와 문화, 시사, 인물 등이 ‘나비효과’가 되어 일상에까지 영향을 미치곤 합니다. 인문학과 경영, 디자인, 사회문제 등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가진 경제학자의 눈으로 세계 곳곳을 살펴보려는 이유입니다. 박정호 명지대 특임교수가 <한국일보>에 3주에 한번씩 토요일 연재합니다.


<16> 지탄의 대상에서 존경받는 나라가 된 독일

최근 우리 사회의 가장 뜨거운 화두 중 하나를 꼽으라면, 의외의 키워드가 꼽힌다. 바로 ‘위안부’라는 단어이다.

미국 하버드대 램지어 교수가 '위안부는 매춘부와 다를 게 없다'는 내용의 논문을 발표하면서 또다시 많은 사람의 공분을 사기 시작했다. 특히 램지어 교수는 오랫동안 일본 정부로부터 다양한 지원을 받아온 학자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해당 문제는 단순히 특정 학자 개인의 주장이 아니라, 일본 정부의 입장이 반영된 결과임이 드러났다.

이처럼 위안부 문제가 반복해서 제기될 때마다 우리는 일본이라는 나라를 또 다른 나라와 종종 비교하게 된다. 바로 ‘독일’이다. 독일과 일본 모두 전범국가지만 전쟁 이후 자신들이 저지른 만행을 대하는 태도는 사뭇 달랐다.


저지른 만행 반성하는 독일


독일은 1차 세계대전과 2차 세계대전을 모두 촉발시킨 전범국가다. 1차 세계대전으로 2,000만명의 사망자가, 2차 세계대전으로 5,000만명의 사망자가 발생하면서 전 세계적으로 큰 피해를 입히기도 했다.

하지만 독일은 자신들이 저지른 만행에 대해 전국민을 대상으로 한 중·고등학교 교과과정에 포함시켜 이를 교육시키고 있다. 단순히 과거의 역사적인 사실로만 교육시키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만행의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윤리 교육까지 함께 진행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독일 반성은 경제적 보상으로도 이어진다. 1952년 독일-이스라엘 배상협상을 통해 독일은 2차 세계대전으로 피해를 입은 유대인 유가족 모두에게 피해 정도에 따라 보상금을 지불해 오고 있다. 특히 피해 보상금을 1952년부터 1966년까지 연금 형태로 매달 정기적으로 받을 수 있도록 지급해 왔다. 당시 독일 정부가 이스라엘 국민에게 배상한 금액의 총액은 34억 5,000만달러에 해당한다.

독일 국민들은 정부차원에서 보상금을 지급했다고 해서 면죄부를 받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독일의 대표 기업과 정치가, 자산가들은 민간 주도로 전쟁 피해자들을 지원하기 위한 기금을 조성해 160만명의 피해자들에게 추가적으로 배상하기도 했다.

독일 국민들의 이러한 노력들은 현재 일종의 문화로까지 자리매김한 듯하다. 독일에서는 한 가지 특이한 모습을 목격할 수 있는데, 수업이나 세미나 중 객석에서 질문을 하고 싶은 사람들이 자신이 질문이 있음을 표시할 때, 절대 손을 들지 않는다. 손을 드는 행위는 과거 나치 정부의 인사법을 연상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독일 국민들은 질문이 있음을 표시하는 방식으로 손가락만 위로 올리며 자신이 질문이 있음을 표시한다.



시스템으로 경제 강국 '우뚝'

독일은 세계대전 이후 폐허 속에서 단기간에 세계 최고의 경제 대국으로 올라선 것으로도 유명하다. 독일의 이러한 저력을 설명하는 가장 적합한 표현 중 하나가 ‘시스템의 나라’가 아닐까 싶다.

독일은 국민 개개인의 자질도 우수하지만, 이러한 개개인의 자질에 의존하지 않고 철저히 시스템에 의존하여 나라를 운영해 왔다. 대표적으로 정치제도도 여기에 해당한다. 독일은 특정 국왕에 의해 통치되어온 국가가 아니라 다수의 영주국가에 의해 통치되어 왔던 지역들이 합쳐서 형성된 나라이다.

1871년 비스마르크에 의해 독일제국으로 통일되었다. 하지만 1933~1945년 나치 정권에 의해 전체주의 체제가 도입된 기간을 제외하고는 독일의 정치제도는 연방주의에 기반하고 있다. 2차 세계대전 이후에도 이러한 역사적 전통을 되살렸고, 독일의 정확한 국가명칭 역시 ‘독일연방공화국’이다. 독일의 각 지역들은 자치권을 일정 수준 이상으로 유지하기 위한 권한을 갖고 있다.

하지만 중앙정부 차원에서 추진해야 할 일들에 대해서는 중앙정부의 권한을 확실히 인정하고, 중앙정부의 결정을 철저히 수용하는 수직적 구조 또한 함께 갖고 있다. 이러한 정치 구조는 특정인 내지 특정인을 중심으로 한 소수의 사람들을 중심으로 국가 전반의 사안이 결정되는 국가들과는 달리, 국가의 모든 의사결정이 각 지역 정부의 의견 수렴부터 시작해 이를 취합한 뒤 중앙정부 아래 함께 논의해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독일의 정당들 역시 연립 정부를 구축해 시스템 속에서 함께 나라를 운영해 왔다. 1969년부터 1974년까지 재임한 빌리 브란트 총리 정부는 사민당과 자민당의 연정으로 수립된 정부였으며, 1974년부터 1982년까지 재임한 헬무트 슈미트 총리 정부 역시 사민당과 자민당 연정으로 유지됐다. 헬무트 콜 총리(1982~1998) 정부는 기민·기사연합, 자민당이 연정,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1998~2005)는 사민당과 녹색당의 연정 정부였다.

현 메르켈 총리 역시 2005년부터 2009년까지는 기민·기사연합과 자민당의 대연정으로 수립되어 운영되었고, 2013년 이후부터는 기민·기사연합과 사민당의 연정으로 출범한 정부 총리이다.


위기마다 시스템 개선...독일의 재도약 '주목'


독일은 안정적으로 국민들이 거주, 생활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 전 세계 최초로 도입한 사회제도들이 많다. 지금은 많은 국가가 국가 운영의 기본 틀로 삼고 있는 국민연금, 의료보험, 무상교육 제도 모두 최초로 시행한 국가가 바로 독일이다.

현재 독일은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모든 교육이 무상이다. 독일은 전 세계 최초로 실용신안 제도를 법제화한 국가이다. 실용신안 제도를 통해 국민들의 소소한 아이디어마저 존중하고 이러한 아이디어를 통해 충분히 경제적 이익을 실현할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한 덕분에 독일은 영국 다음으로 산업혁명을 초기에 완성한 국가가 되었고, 오늘날 전 세계 최고의 제조 강국의 위상을 유지할 수 있었다.

시스템이라는 것이 한번 구축되었다고 해서 반영구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대내외부적인 환경이 변화하면, 이에 부합하는 형태로 시스템을 변경해야 할 때가 많다.

독일이 구축한 경제 시스템은 1950~1973년 연평균 5.9%의 높은 성장률을 기록하는 ‘라인강의 기적’을 이룩하며, 경제 대국을 건설하는 데 크게 기여해 왔다. 하지만 1970년대 석유파동 이후 서서히 둔화하기 시작하면서 독일인 스스로도 독일이 만든 시스템에 피로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러다 1990년대 막대한 통일 비용을 부담하고, 2000년대 초반 IT 산업이 붐을 일으키면서 전통적인 제조 강국인 독일 경제는 크게 위축되기 시작했다. 2000년대 초반 독일의 실업률은 12% 수준까지 치솟게 되었다. 이때 독일은 유럽의 약자라는 비아냥까지 듣는다.

독일은 장기간의 경제 침체 속에서 그동안 자신들이 구축해 온 경제 시스템을 대폭 수정해야 한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된다. 독일이 ‘4차 산업혁명’이라는 단어의 발생지가 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독일은 자신들의 강점으로 여겨진 산업 경제 시스템을 대폭 수정하기 시작한다. 2003년 슈뢰더 총리는 전후 최대의 개혁 정책으로 평가되는 ‘Agenda 2010’을 발표하면서, 산업 육성 전략뿐만 아니라 노동제도, 교육제도 등 사회정책 제도 전반의 개혁을 수립한다. 이러한 개혁의 결과 현재 독일은 국내총생산(GDP) 기준 미국, 중국 일본에 이어 세계 4위 경제대국이자 세계주요 상품 수출국으로서 세계경제에서 가장 경쟁력 있는 위상을 차지하고 있다.

최근 독일은 또다시 시스템을 수정 보완할 준비를 하고 있다. 2003년 이후 변경된 시스템들이 원활히 작동하지 않는 상황이 자주 확인되기 때문이다. 특히 코로나19 여파로 독일 경제가 크게 위축되었고, 브렉시트 등으로 EU 체제마저 수정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특히 최근 유럽 전역이 코로나19로 경제적으로 반영구적인 피해를 입은 상황에서 EU의 맏형 역할을 해 온 독일의 리더십이 더더욱 요구되는 상황이다. 반세기 전까지 유럽의 전범국가로 지탄을 받아온 독일이 반세기 뒤에 또다시 불어닥친 유럽의 위기에 어떠한 리더십을 발휘하여 마지막 속죄를 할지 지켜볼 대목이다.

박정호 명지대 특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