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서귀포시에서 10여년간 주점을 운영해온 60대 A씨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학교 운동부가 동계 전지훈련 발길을 끊은 올해를 가게 운영의 최대 위기로 꼽는다. 자영업 위기는 전국적 현상이지만, 성인 고객도 아닌 ‘학교 운동부'가 발길을 끊었는데 왜 곤궁해진 것인지 묻자, 김씨는 "뻔한 걸 뭘 묻느냐"며 이같이 답했다.
A씨 얘기처럼 선수의 부모들이 지도자들을 술집에서 ‘모시는’ 광경은 전지훈련지나 대회 개최도시에서 낯선 풍경이 아니다. 자녀의 장래를 담보잡힌 '을(乙)' 입장에서 접대는 당연하고, ‘목욕비’ 또는 ‘기름값’이라며 촌지를 건네는 일도 여전하다는 게 현장 목소리다. 중학생 축구선수를 자녀로 둔 부모 B씨는 “전지훈련 회비 명목으로 걷은 돈을 총무 역할을 맡은 부모들이 (전지훈련지에서) 유용하거나, 유흥주점 등 부적절한 곳에서 사용해 선수 부모들 사이에서도 분란이 생기는 경우도 많다”고 전했다.
여러 구기종목 선수들의 가족과 학교 운동부 지도자 얘기를 종합해보면 “부모들도 학교 스포츠 비리의 공범”이란 목소리가 높다. 과거 고교 축구부를 이끌던 지도자 C씨는 한 발 더 나아가 “지도자 금품 비리 가운데 90%이상은 부모가 먼저 금품을 건네는 경우”라고 말했다. 하지만 감독에게 선수 선발 및 경기 출전 여부, 평가까지 막강한 권한이 쏠려있다보니 체육계의 고질적 문제인 금품 비리를 부모들의 그릇된 자식사랑 탓으로만 치부하긴 어렵다.
금품 비리가 만연한 상황에선 자녀들이 폭행을 당해도 부모 스스로 못본척 하거나 되레 기해자를 감싸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게 현장의 목소리다. 폭행 문제가 불거져 자칫 팀이 해체되기라도 하면 피해는 고스란히 아이들 몫이 되는 탓이다. 2016년 경기도내 야구부에서 벌어진 폭행사건이 대표적이다. 당시 이 사실을 공개적으로 알린 피해자 부모 D씨는 “(사건이 공론화되자) 다른 선수 부모들로부터 ‘그런 폭행은 운동부에서 늘 있는 일 아니냐’는 얘기와 함께 ‘학교 명예가 실추되고, 우리 자녀에게 피해가 올 수 있다’며 (청원 글을) 내리라는 요구를 받았다”고 털어놨다.
입김이 센 부모들이 팀 운영에 과도하게 개입하는 것도 학교 스포츠 폭력 문제의 악순환 고리를 끊기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다. 최근 프로배구 무대에서 불거진 흥국생명 쌍둥이 선수 이재영ㆍ이다영(25)의 학교폭력 사태에서도 두 선수의 모친이자 전 국가대표 배구선수 출신인 김경희(55)씨가 논란의 중심이 됐다.
전문가들은 '공정' 가치를 익히기도 전에 '엄마·아빠 찬스'가 당연시되는 현실에 노출되는 상황이 학교 스포츠 폭력의 토양이라고 지적한다. 허정훈 중앙대 체육대학 교수(체육시민연대 공동대표)는 “그릇된 자녀사랑 방식이 체육계에선 여전히 남아있다”며 “운동선수로 키우는 자녀들 미래에 ‘올인’하는 부모들이 많아 폭력에 눈감고, 발설을 쉬쉬해 지도자 부조리를 부추기거나 방조하는 악습이 이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