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 조치가 시행 중이던 지난 5일, 서울 송파구에 위치한 맥도날드 가락동 '드라이브 스루(DT·승차 구매점)' 일대가 점심시간을 맞아 몰려든 차량들로 혼잡해지기 시작했다. 차량들이 어느새 대기 공간 바깥까지 길게 늘어서면서 인근 도로가 마비됐다. 설상가상으로, 인근 학원에서 하원하는 어린이들이 보도 위에 늘어선 차량 사이를 가로질러 뛰어다니면서 위험천만한 상황이 연출됐다. 보행자 보호용 ‘볼라드(진입 억제용 말뚝)'는 찾아볼 수 없었다.
인근 주민 이모(57)씨는 “붐비는 시간대에 한시적으로라도 안전요원이 나와주면 좋겠는데, 지금까지 한 번도 본 적이 없다”며 “아이들이 지나다니는 길인데도, 인도와 매장 진입로가 명확히 구분돼 있지 않아 사고 날 뻔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드라이브 스루가 신종코로나 바이러스(코로나 19)의 확산 속에 ‘매출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SK텔레콤이 발간한 ‘T맵 트렌드맵 2020’에 따르면 지난해 6월 기준, 코로나19 확산 이후 드라이브 스루 이용 건수는 이전에 비해 1.7배 가까이 증가했다. 2차, 3차 대유행으로 비대면 포장판매가 크게 증가한 것을 감안하면, 드라이브 스루 이용율은 더욱 가파른 증가세를 기록해 왔을 것으로 추정된다. 드라이브 스루를 운영하는 대표적인 브랜드는 스타벅스와 맥도날드로, 스타벅스는 전국에서 290여곳, 맥도날드가 200여 곳에 달한다. 서울 시내의 경우 스타벅스가 16곳, 맥도날드 24곳이 영업 중이다.
폭발적으로 늘어난 이용률에 비해 안전 수칙은 허술하다. 특히, 번잡한 도심에 들어선 드라이브 스루는 ‘사고 일촉즉발’ 지대다. 차량 대기 공간이 협소해 보행자와 차량 사이의 안전거리가 보장되지 않을 뿐더러, 붐비는 시간대엔 인근 도로까지 금세 마비시키기도 한다.
한국일보 뷰엔(view&)팀이 지난 5일부터 열흘간 서울 도심에 위치한 프랜차이즈 드라이브 스루 매장 12곳을 둘러본 결과 △인도와 차도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아 시민들의 통행 안전이 보장되지 않거나 △차량의 진출입 차로가 분리돼 있지 않아 차량 간 접촉사고 위험이 큰 경우 △볼라드, 반사경, 방지턱, 경보 장치 등 안전 설비가 갖춰져 있지 않거나 작동하지 않는 경우 △교통 안전 요원이 배치되지 않는 경우에 대부분 해당됐다.
지난 10일 관악구의 한 스타벅스 드라이브 스루 진입 차로 일대는 차량과 보행자, 자전거 이용객들이 어지럽게 뒤섞여 있었다. 도심 지역의 경우 드라이브 스루 진입로가 보도를 가로지르는 구조가 대부분인데, 보도와 차로를 명확하게 구분 짓는 시각적 장치가 없어 혼란이 가중되고 있는 것이다. 이 일대를 지나던 외국인 유학생 A씨는 “최소한 보행자가 안전하게 차도 위를 지나갈 수 있도록 신호등이라도 달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드라이브 스루에서 일하는 매장 관계자들조차 ‘안전대책’ 보완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았다. 서울 송파구의 한 드라이브 스루에서 만난 관계자는 “매장 바깥 쪽 인도에 보행자 안전을 위해 볼라드를 설치하자고 건의해 봤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서울 강동구의 한 드라이브 스루 안전요원 방모(74)씨는 “최근에도 행인과 차량이 부딪힐 뻔한 적이 많았다”며 “이용객이 늘고 사고 위험도 덩달아 늘었으니, 안전 요원 고용도 점차 늘려가야 할 것”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드라이브 스루로 인해 인근 도로가 마비되기도 한다.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의 한 스타벅스 DT 매장의 경우 주말마다 이용객 차량이 주행차선 위에 길게 줄지어 서면서 버스 정류장까지 점령한다. 도로를 따라 100m가량 늘어선 차량이 인근 소방서에서 긴급 출동한 소방차의 진로를 방해하기도 한다. 이곳 매장은 어린이 보호구역인 초등학교와도 한 블럭을 사이에 두고 인접해 있다.
반경 100m 내에 대형 요양병원이 있는 성북구 종암동의 한 스타벅스 DT 매장 역시 구급차 이동에 큰 장애 요소다. 주민 김모(73)씨는 “근처에 워낙 드라이브 스루 이용차량이 많아, 주말엔 병원 입구까지 차들이 주차장처럼 늘어선다”며 “접촉 사고가 연달아 난 뒤에 주차 요원이 확충됐지만, 여전히 인근 주민들의 불만이 크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런데도 뷰엔팀이 둘러본 도심 지역 매장 12곳 중 안전 요원이 배치된 곳은 절반가량에 불과했다. 업체들은 매장별 상황에 따라 비상시적으로 배치한다는 원칙을 내세우고 있지만, 혼잡 시간대조차 제대로 관리되지 않는 매장은 적지 않았다.
지난 2018년 드라이브 스루 진출입로에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하는 ‘안전시설’의 종류가 법규에 의해 구체적으로 명시됐다. 그러나 법규로 정한 8가지 시설물(속도저감시설, 횡단시설, 교통안내시설, 교통신호기, 시선유도시설, 방호울타리, 조명시설, 반사경)을 모두 갖추고 있는 곳은 드물었다. 안전요원 배치는 현재로선 법적 의무사항이 아니다.
드라이브 스루는 주변의 교통요건에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시설물이기 때문에 인근 지역의 환경을 철저하게 고려해 설계되어야 하는데도, 현행법상 별다른 제약을 받지 않는다. 교통영향평가 대상 기준인 연면적 1만5,000㎡에 한참 못 미치는 매장이 대부분이라 교통영향평가에서조차 제외된다.
드라이브 스루가 이미 대중적으로 정착한 북미의 경우 안전 지침이 철저하다. 보행자가 다니는 보도와 차량이 다니는 차도를 포장재를 달리하는 방식으로 눈에 띄게 구분하고, 진출입 차량의 동선이 서로 겹치지 않도록 명확하게 나눈다. 심지어는 화분이 보행자나 표지판을 가리게 되는 상황을 염려해 ‘장식용 화분의 높이’까지 법으로 규제한다. 차량이 들고 나는 시설에서 발생할 수 있는 위험 요소들을 섬세하게 고려한다는 의미다.
가장 현실적이면서 시급한 개선 대책으로는 안전 요원 배치를 꼽을 수 있다. 한국소비자원 연구에 따르면, 드라이브 스루 이용자들이 꼽은 '개선점' 1위는 ‘차량 동선에 안전관리 요원 배치(26.2%)'였다. 스타벅스의 경우 이와 같은 소비자의 요구를 받아들여 전국적으로 ‘통행 안전 관리원’을 230여명 고용하고 있다. 여건상 ‘혼잡 매장’, ‘혼잡 시간대’ 위주로 안전요원을 배치하고 있는데, 점차 ‘드라이브 스루 매장 전체’로 늘려나간다는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