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으로 봐선 건물 외벽이 유리로 된 여느 오피스 건물과 다를 바 없다. 하지만 이 건물은 전력을 자급자족하고 있다. 건물의 옥상은 물론 통유리로 된 건물 외벽 전체가 태양광 발전시설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투명한 태양광 셀이 건물 전체에 코팅돼 있는 셈이다. 낮에 생산한 전기 중 남는 부분은 에너지저장장치(ESS)에 보관했다가 필요할 때마다 다시 사용할 수 있다.
#별도의 충전 없이 무한히 달릴 수 있는 전기차도 있다. 지금까지 우리가 경험한 전기차는 충전소에서 전기를 채워넣어야만 했다. 하지만 이 전기차의 외부는 전체가 태양광 발전 장치다. 태양이 내리쬐는 곳에서 주행한다는 전제 하에 이 차량은 발전과 소비가 동시에 이뤄진다. 조건만 충족한다면 무한 주행도 가능하다. 햇빛 한 줄기 들지 않는 흐린 날씨가 한 달 내내 이어지거나, 배트맨의 애마 ‘배트카’처럼 해가 진 이후에만 운행하는 운전자가 아니라면 말이다. 물론 태양 아래 몇 시간 주차 해 놓는 것만으로 완충할 수 있고, 발전된 배터리 기술 덕분에 1만km도 거뜬히 주행할 수 있다.
한번 작동시키면 멈추지 않는 ‘무한동력’은 인류가 오래 전부터 꿈꿔왔던 기술이다. 수많은 과학자들이 도전했지만 여전한 벽으로 남아 있다. 하지만 조만간 ‘무한동력’과 유사한 ‘무한발전’의 시대가 열릴 것이란 기대가 꿈틀대고 있다. 이를 가능케 하는 건 인류가 누리고 있는 가장 큰 에너지원인 태양이다. 이미 우주에선 인공위성이 태양광 발전을 통해 반영구적으로 궤도 비행을 하고 있다.
앞서 언급한 사례들은 현재 연구 중인 ‘꿈의 물질’ 페로브스카이트(perovskite)를 이용해 무한발전 시대가 열린 세상을 상상해 본 것이다. 하지만 그리 먼 미래의 얘기는 아니다. 일본의 이상한 호텔(호텔 이름인 ‘헨나’가 일본어로 이상하다는 뜻)은 이미 지난해부터 호텔 외장재의 벽면에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를 설치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고,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를 설치해 형형색색의 창문이 작은 발전소가 되는 예술작품까지 선을 보였다.
페로브스카이트는 1839년 러시아 우랄산맥에서 발견된 광물에 붙여진 이름이다. 19세기 러시아 광물학자 레프 페로브스키(Lev Perovsky)의 이름을 따서 만들어졌다. 산화 칼슘 티타늄인 이 광물은 양이온과 음이온을 구성하는 원소에 따라 성능이 달라지며, 반도체의 성질을 띤 것이 태양광, 발광다이오드(LED), 메모리, 센서 등에 적용될 수 있다.
페로브스카이트가 태양광 발전에 불러올 변화는 크게 3가지다.
먼저 비용이 저렴하다. 기존 태양전지 셀에 쓰이는 폴리실리콘을 만드는 공정에는 1,000℃ 이상의 열처리가 필요했지만, 페로브스카이트는 가공법에 따라 130~400℃에서 가공이 가능하다. 또 폴리실리콘보다 전자의 이동이 쉬워 기존 태양광 패널보다 20~500배까지 얇게 만들 수 있다. 그만큼 원재료가 적게 들어간다는 뜻이다. 이처럼 가공비용과 재료비를 아낄 수 있기 때문에 원가는 기존 대비 최대 8분의 1수준으로 떨어진다.
두 번째는 높은 발전 효율이다. 약 60년 동안 개발된 다결정(Multi) 폴리실리콘 태양전지의 효율은 23.4%, 고효율 태양광 셀에 사용되는 단결정(Mono) 폴리실리콘은 26.1%의 효율을 보이고 있다. 그런데 페로브스카이트는 2009년 첫 연구 당시 3.8%의 효율에서 지난해 25.5%까지 급격히 발전했다. 페로브스카이트와 폴리실리콘을 결합한 탠덤 태양전지는 29.1%에 달한다. 업계에서는 페로브스카이트 단독 태양전지의 한계효율은 38.7%, 탠덤 태양전지는 43%의 효율까지 끌어올릴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세 번째는 반투명성과 유연성이다. 즉, 지금까지는 건물 옥상이나 사막, 산을 깎아 만든 얕은 경사면 등에 태양광 패널을 설치해야 했지만, 얇고 투명한 페로브스카이트는 어디에나 코팅해 태양광 발전을 할 수 있다. 심지어 건물 외벽은 물론 자동차 외부, 심지어 스마트폰 화면과 케이스를 이용해서도 가능하다. 우리가 경험해 본, 빛으로 작동하는 전자계산기나 체중계가 훌쩍 업그레이드 되는 것이다.
업계에선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가 우리 일상을 파고드는 시점을 약 5년 후 쯤으로 내다보고 있다. 그동안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가 단기간에 고효율을 달성할 수 있었던 것은 실험실 수준에서도 용액을 기반으로 손쉽게 제작이 가능해 큰 투자 없이도 쉽게 참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품을 만들기 위해선 실험 단계의 소면적(1㎠)이 아닌 대면적(250㎠ 이상)에서 동일한 효율을 구현해내야 한다. 대면적 셀의 효율은 16%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 또한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있다. 한국화학연구원은 지난해 11월 20㎠의 유연한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의 효율을 20.7%까지 끌어올리는 데 성공했다. 딱딱한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의 최고효율은 25%를 넘어섰지만, 유연한 제품은 전 세계적으로 20%를 넘기지 못했다.
또 다른 문제점은 수명이다. 페로브스카이트는 유기물이 포함돼 있기 때문에 자외선과 수분에 취약하다. 이에 업계에선 코팅 처리나 첨가제를 사용해 안정성을 높여가고 있다. 실제로 영국의 옥스포드PV, 한국 유니테스트, 중국 GCL 등이 올해와 내년에 상업 생산에 돌입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화큐셀과 LG전자 등 태양전지 분야 글로벌 선두를 달리고 있는 국내 업체들도 상용화에 힘을 쏟고 있다.
마지막으로 중금속 물질인 납 성분에 대한 우려도 존재한다. 페로브스카이트를 구성하는 물질 중에 납이 들어가는데, 이는 현재 주석, 나트륨, 비스무트 등의 물질로 대체하는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또 납 회수 기술력도 99.7%까지 끌어올려 위험성을 낮춰가고 있다.
걸어다니는 동안에도 스마트폰이 충전되고, 자율주행 전기차가 운행 중에 스스로 충전하는 시대. 지금까지 낮은 에너지효율과 제한된 설치 지역 때문에 ‘계륵’처럼 취급 받아온 태양광 발전이 페로브스카이트를 만나 ‘무한발전’의 신세계로 들어설 날도 그리 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