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K리그1 수원 삼성은 창단이래 최대 위기를 맞았다. 시즌 초반 연패를 거듭하며 11위까지 떨어지며 강등 위기까지 내몰렸다. ‘축구 명가’로 불리던 수원의 자존심은 부서졌다.
벼랑 끝에 섰던 팀을 다시 뭉치게 한 것은 박건하 감독이었다. 박 감독은 1996년 수원 창단식에서 선수 대표로 결의문을 낭독했던 수원 창단멤버로, 수원의 황금기를 이끌었다. 창단 첫 골도 그의 발끝에서 나왔다. 지난해 9월 사령탑으로 친정에 돌아온 박 감독은 선수들에게 잊혔던 ‘수원 정신’을 다시 불어넣었다. 박 감독 선임 직후부터 팀은 4승 2무 2패로 선전했다. 결국 8위로 1부리그 잔류에 성공했고 아시아 챔피언스리그(ACL)에서도 8강을 달성했다.
1월 제주에서 1차 전지훈련을 마무리 한 수원은 이달부터 경남 거제시로 자리를 옮겨 2차 전지훈련을 진행하고 있다. 1차 훈련이 체력 보강 위주였다면, 2차 훈련에선 연습경기 등을 통해 전술을 가다듬고 있다. 이곳에서 최근 본보와 만난 박 감독은 지난 시즌 후반과 ACL에서 선수들이 보여줬던 투지를 높게 샀다. 이번 시즌의 목표를 우승으로 높게 잡은 것도 그 때문이다. “지난해 와서 보니, 선수들도 수원이라는 자부심을 갖고 그에 걸맞게 잘하고 싶었는데, 원하는 결과가 나지 않아 힘들어하고 있어요. 그런 부분들을 시즌 후반기에 이겨냈고 ACL을 통해서 더 자신감을 갖게 됐습니다. 선수들은 제가 기대했던 이상의 기량을 보여줬어요. 그들의 모습에서 열망을 봤습니다. 선수들 때문에 목표를 크게 잡았습니다. 잘 따라오고 있고, 앞으로도 잘 해줄 것이라 믿습니다.”
팀 분위기는 최상이다. 하지만 전망이 밝기만 한 것은 아니다. 구단의 재정 상황으로 올 겨울 이적시장에서 큰 움직임을 보이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엎친 데 덮친 격, 박 감독의 새 시즌 구상 안에 있던 박상혁과 명준재도 김천 상무에 입대했다. 박 감독은 “훈련 이상으로 중요한 게 영입데, 서운하지 않다고 말하면 거짓말이다. 감독으로서 아쉬운 부분도 많고, 고민도 된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어려움을 이겨나가야 하는 게 감독의 일이고, 감독의 숙명이다. 헤쳐나가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선수들을 좀 더 단단하게 만들어가겠다”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우로시 제리치의 영입이다. 제리치는 지난 시즌 부상으로 부진한 성적을 보였지만, K리그에 데뷔한 2018 시즌에는 36경기 24골 4도움을 기록했던 골잡이다. 박 감독은 “제리치도 2018년과 같은 모습을 수원에서 다시 보여주고 싶다는 의욕이 크더라. 팀에 얼만큼 빨리 적응하느냐가 중요하다”고 언급했다. ACL을 통해 더욱 성장한 김태환 등 젊은 선수들의 활약도 기대된다. 박 감독은 “영입 선수가 크게 없는 만큼 젊은 선수들에게 기대를 많이 하고 있다. 지금 시점에서 젊은 선수들이 커줘야 팀이 좀 더 강한 팀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축구 수도’ 수원의 진짜 주인을 가리는 수원FC와의 수원 더비는 올 시즌 수원의 역량을 가늠하는 경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수원 더비는 지난해 수원FC가 K리그1로 승격하면서 5년만에 재개된다. 첫 대결은 내달 10일 수원FC의 홈구장인 수원종합운동장에서 치러진다. ‘적진’이긴 하지만 박 감독 선수 시절에는 수원 삼성의 홈구장이었다. 박 감독은 “부담도 있지만, 재미있을 것도 같다. 기대된다”고 했다. “수원종합운동장은 처음 선수로 입단해서 시작했던 곳이고, 득점도 많이 하고, 우승도 한 곳이에요. 개인적으로 추억이 많은 의미 있는 장소에 감독으로서 결전을 치르러 갈 생각을 하니 감회가 새롭네요. 좋은 선수들을 많이 영입한 수원FC을 상대하는 만큼, 저에게도 선수들에게도 강한 동기부여가 될 것 같습니다.”
승리를 향한 약속도 잊지 않았다.. 박 감독은 “지난해 선수단도 힘들었지만, 더 힘들었던 것은 팬들이라고 생각한다”며 “축구 보면서 그래도 달라졌구나, 기대를 할 수 있구나, 좀 더 발전할 수 있겠구나 싶은 모습을 보여드리겠다”고 포부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