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그래도 저임금 노동자인데 자가격리 보조금도 못 받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확산에 따라 곤경에 처한 저소득층을 지원할 목적으로 영국 당국이 지원금을 내걸었지만 이들에게 정부 돈을 받기는 ‘하늘의 별따기’다. 지원금을 신청해도 70%는 거절당하기 일쑤다. ‘사회안전망’이 무너진 코로나19 시대의 단면이다.
영국노총(TUC)이 15일(현지시간) 314개 지방자치단체 중 232곳의 자가격리 지원금 지급 현황을 집계한 결과(1월 6일 기준), 약 19만건의 신청 건수 가운데 5만8,000여건만 지원금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10명 중 7명은 퇴짜를 맞았다는 얘기다. 프랜시스 오그래디 TUC 사무총장은 “너무 많은 저임금 노동자들이 재정 지원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며 “영국 공중 보건의 큰 구멍”이라고 꼬집었다.
영국은 지난해 9월 말부터 1인당 500파운드(약 76만원)를 지급하는 자가격리 지원제를 도입했다. 재택 근무가 불가능하고 이미 다른 복지 수당을 받고 있는 저소득층 노동자에게 지원금을 주는 주계획과, 복지 수당을 수령하지 않지만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노동자가 심사를 거쳐 지원금을 받는 자율계획이 있다. TUC에 따르면 주계획 신청자 중 37%, 자율계획 신청자 중 20%만이 지원금을 받았다.
원인은 지자체 재정난이다. 옥스퍼드 지역의 지원금 승인은 신청자의 10%에도 미치지 못했다. 에식스주(州) 로치퍼드와 데번주 토리지 같은 일부 지역에서 70% 이상의 승인율을 보인 것과 극명히 대비된다. 이른바 ‘우편번호 복권’인 셈이다. TUC는 지자체 40%는 이미 주계획에 할당된 기금을 모두 사용했고, 일부는 기금 범위를 초과해 지출하고 있다고 밝혔다. 게다가 자율계획은 주계획보다 편성된 기금이 적어 지방 정부에서 자체적으로 충당하거나 아예 폐쇄한 상황이다. 영국 정부는 초기 자금으로 각 지방정부에 5,000만파운드(약 766억원)를 지급했지만 당초 예상보다 신청이 몰린 탓이다.
미숙한 행정 처리도 속출하고 있다. 리즈에 사는 한 음악가는 BBC방송 인터뷰에서 당국의 오류로 지원금 신청을 거절당했다고 털어놨다. 그는 집으로 음식을 배달시킨 것이 심사 과정에서 자가격리가 아니라고 간주돼 지급 불가 통보를 받았다고 한다. 이후 당국은 실수를 사과하고 지원금을 정상 지급했지만 미증유의 재난 속에 익숙하지 않은 업무를 하는 공무원들의 이런 실수는 비일비재했을 것이란 지적이다.
정부는 일단 지난달 말 끝난 자가격리 지원금 제도를 3월 말까지 연장하기로 했다. 2,000만파운드(약 306억원) 상당의 추가 예산도 배정됐다. 영국 보건부 대변인은 “지자체와 협력해 제도를 계속 감시하고 있다”며 “가급적 빨리 추가 지원금을 제공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