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배구 선수들의 학창시절 폭력 사건에 구단과 협회가 나섰다. 흥국생명은 15일 이재영·다영 선수에 대해 무기한 출전정지를 결정했고 대한민국배구협회는 이들의 국가대표 자격을 박탈했다. OK금융그룹 송명근·심경섭 선수도 올 시즌 남은 경기에 출전하지 않기로 했다. 이들이 중·고교 시절 다른 선수들을 폭행한 사실을 사과하고 협회가 대응에 나선 것은 그나마 다행이나 이것이 끝이라고 장담할 수는 없다. 이번 사건이 뿌리 깊은 스포츠 폭력 문화의 일부임을 인식하고 체육계가 근본적인 체질 개선에 나서지 않으면 안 된다.
최근 수년 사이 빙상, 철인3종, 유도 등에서 코치 등의 폭행·성폭력 사건이 폭로되며 스포츠계 폭력이 얼마나 전방위적이고 뿌리 깊은지 드러났다. 이번 학폭 사건은 그 악습의 일부라고 봐야 한다. 좋은 대학·구단에 들어가고 메달만 딸 수 있다면 지도자가 어린 선수를 손찌검해도 용납되는 문화가 있고, 이런 환경에서 선수들끼리 학대와 괴롭힘이 학습되고 대물림되는 것이다. 이재영·다영 선수에 대한 추가 피해 폭로가 잇따르고 한국전력이 자체 전수조사를 벌인 게 놀랍지 않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이미 2019년에 최대 규모의 스포츠계 폭력 실태 조사를 벌였고 제도적 개선책을 내놓았다. 핵심은 메달 우선의 성과주의를 탈피하는 근본적 체질 개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대한체육회 등 가장 큰 권한을 쥔 단체들이 기득권을 놓지 않으려 저항하고 문화체육관광부가 의지를 보이지 않아 변화의 기미조차 없다. 대한체육회 스포츠인권센터와 대한철인3종협회는 지난해 고 최숙현 선수로부터 제보를 받고도 그의 죽음을 막지 못했다. 지난해 8월 문을 연 문체부 스포츠윤리센터는 벌써 채용비리 구설수에 올랐다.
시민들은 폭력에 민감해졌고 메달이 국위를 선양한다는 믿음을 잃고 있다. 협회와 대한체육회만 이런 시대를 읽지 못하는 듯하다. 스포츠계가 스스로 폭력을 뿌리 뽑지 않는다면 결국 자기 기반인 팬을 잃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