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핫핑크를 닮은 클래식 연주자의 유튜브 궁금하시죠?"

입력
2021.02.15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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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부터 '라이프 스테이지' 채널 운영 중인 바이올리니스트 김지윤


여느 브이로거(영상 블로그를 하는 사람)처럼 카페에 들러 커피를 마시며 시청자와 수다를 떤다. "택배(박스) 뜯을 때가 제일 행복하다"면서 온라인 쇼핑으로 주문한 바지를 '언박싱(개봉)'하거나, 반려견 '땅콩이'와 노는 모습이 담긴 영상들을 보면 전형적인 일상 브이로그다. 특이한 점이 있다면 영상 콘텐츠의 주인공이 클래식 연주자라는 것. 2018년부터 유튜브에서 '김지윤의 라이프 스테이지'라는 이름의 채널을 운영 중인 바이올리니스트 김지윤(36)의 이야기다.

공연장 무대 위의 연주자는 입고 있는 드레스만큼 화려한 존재다. 대체로 관객이 연주자를 만나는 순간은 환한 조명을 독차지하는 연주회 때다. 때문에 무대 바깥의 연주자 삶은 베일에 싸여있는 편이다. 최근 서울 신천동 롯데콘서트홀에서 한국일보와 만난 김지윤은 "클래식 연주자들은 다른 장르의 예술인들에 비해 대중에 노출되는 일이 많지 않은데, ‘나라도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자’는 마음에 유튜브를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일상이 또 하나의 무대라는 뜻에서 유튜브 채널 이름도 지어졌다. 그렇다고 가벼운 일상 이야기만 하는 건 아니다. 공연 연주나 바이올린 레슨 등 영상을 통해 프로 연주자의 면모도 보여준다.



지금이야 유튜브를 하는 연주자들이 많지만 김지윤이 첫 발을 내딛었을 적만 해도 드물었다. 처음부터 긍정적인 시선만 있었던 건 아니다. 김지윤은 "클래식 전공자들은 기본과 정석을 중요시하다보니 일정 부분 보수적인 성향들이 있는데, 이런 장르 특성 탓에 악기 말고 다른 것에 관심을 쏟는 일은 '집중력이 흐트러진다'는 이유로 금기시 되곤 했다"고 말했다. 연주자는 오직 무대 위에서 음악으로만 관객과 소통해야 한다는 관념과 상통하는 시선이다.



그런데도 김지윤이 유튜브 콘텐츠를 만든 건 클래식을 대중에 친숙하게 만드는 유용한 도구가 될 수 있다고 믿어서다. 김지윤은 "클래식 음악을 이해하기에 앞서 연주자에 대한 인간적인 관심이 생기면 공연장에 오는 사람도 늘어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었다"며 "실제로 내 유튜브 채널을 보고 리사이틀을 보러 온 관객들이 있었는데 유튜버로서 가장 뿌듯했던 일"이라고 했다.



김지윤의 채널은 연주자 성격을 닮아서 밝고 톡톡 튄다. 색상으로 비유하면 '핫핑크'와 가깝다. 입담도 만만치 않다. 그의 매력을 진작에 포착한 롯데문화재단 측은 지난해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리는 '오르간 오딧세이' 공연 시리즈의 콘서트가이드로 김지윤을 발탁했다. 24일에도 오르가니스트 박준호와 오르간의 원리 소개 및 오르간-바이올린 협주 공연을 펼친다.

최근에야 유튜버로 유명하다지만 김지윤은 진작부터 음악성을 검증 받았다. 예원학교를 수석으로 입학, 졸업하고 서울예고 1학년 재학 중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조기 입학할 정도로 두각을 보였다. 유수의 국제 콩쿠르를 휩쓴 뒤 최근에는 디토오케스트라의 수석으로 활동 중이다. 다음달 26일 열리는 통영국제음악제에서는 통영페스티벌오케스트라 단원으로 참여해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5번 등을 연주할 예정이다.

장재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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