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이 절제를 모를 때 얼마나 군색해질 수 있는가를 황희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목격했다. 그는 위임 받은 정치 권력을 가족을 위해 살뜰히도 활용했다. 정치 자금 명목으로 거둔 출판기념회 수익은 아파트 전세 대출금을 갚는 데 썼고, 명절 소고기 선물을 쟁여 두고 먹는 것으로 생활비를 절약했다. 그렇게 아낀 목돈에 출처가 불분명한 수입을 얹어 1년 학비가 4,200만원이라는 외국인 학교에 딸을 보냈다.
너저분한 하자들을 황 장관은 치밀하게 반박하지도 않았다. 그의 공직자 윤리의식만큼이나 해명도 듬성듬성했다. 진짜 문제는 따로 있었다. 국회가 진지하게 검증할 ‘장관의 자질’이 빈약했다는 것이다. 문화예술, 체육, 관광 어디에도 그는 전문가라 할 수 없다. 노래 가사를 인용하자면, 문재인 대통령이 그를 발탁한 건 ‘왜 꼭 너여야 하는지’ 당최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도 문 대통령은 인사청문회 바로 다음 날 황 장관을 임명했다. 어이없어 하는 민심에 귀기울이며 며칠 고심하는 시늉도 하지 않았다. 황 장관은 야당 동의를 끝내 얻지 못하고 임명된 문재인 정부의 29명째 장관이상급 인사가 됐다. 무려 29명. ‘불통의 극치’라던 이명박 정부(17명)와 박근혜 정부(10명)의 기록은 진작에 깨졌다.
‘29’라는 숫자를 헤아리며 돌아보면 좋으련만, 청와대는 오히려 오만해졌다. 정권 첫해인 2017년부터 2019년까지 야당이 임명에 반대한 인사는 22명. 한국일보 정치부가 분석해 보니, 인사청문회가 끝난 뒤 문 대통령이 이들을 임명하는 데 걸린 시간은 평균 10일이었다. 기다리는 것을 문 대통령은 점점 견디지 못했다. 2020년 이후 야당이 반대한 인사 7명은 인사청문회로부터 평균 3일 만에 임명했다. 올해 취임한 장관 3명 임명엔 겨우 이틀이 걸렸다.
대통령의 인사가 조금 밀린다고 지는 게임도 아닌데, 국회에 시간을 준다고 굴복하는 것도 아닌데, 문 대통령은 그렇게 조급해했다. 그리고 무성의해졌다. “안보 상황이 엄중한데 그간 애가 탔다.”(2017년 송영무 전 국방부 장관에게) “야당이 널리 이해해 주시리라 믿는다.”(2017년 강경화 전 외교부 장관에게) 임명장을 주면서 설득의 말을 하는 것조차 어느새 잊었다.
권력자가 힘을 함부로 쓰는 것처럼 보일 때 사람들은 겁에 질린다. 저항을 접고 입을 닫는다. “그래도 임명하겠지.” 황 장관의 흠에 관한 기사에 단골로 달린 댓글에서 그런 체념을 읽었다. ‘그래도’ 지구는 돌듯이, 대통령이 내키면 ‘그래도’ 하겠지.
독주하는 권력을 수식하는 ‘그래도’는 좌절과 단념을 거쳐 기대도 신뢰도 없는 상태에 이르렀다는 말이다. 우리가 맡긴 권력이 제대로 쓰이는지에 차라리 눈감겠다는 말, 내가 던진 한 표의 효용을 구태여 따지지 않겠다는 말. 황 장관 임명에 세상이 대체로 조용한 건 냉소해서다. 찬동해서가 아니다.
“네가 미워 죽겠어”엔 희망이 있다. “네가 뭘 하든 신경 안 써”엔 없다. 무슨 사랑 타령인가 싶겠지만, 민주 권력은 지지든, 비판이든, 주권자의 관심으로 존재한다. 무기력한 주권자의 무관심에 웃는 건 오직 독재 권력이다.
“우리 ‘이니’ 마음대로 해.” 배타적이어서 더 뜨거운 지지가 “그래, 당신들 마음대로 해”라는 포기로 바뀌려 한다. 그 역설이 ‘이니’를 얼마나 취약하게 하는가를, 이제라도 돌이켜야 기대와 신뢰가 다시 돋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