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캔슬 컬처

입력
2021.02.14 18:00
26면

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2010년대 중반 미국 젊은이들이 트위터에서 유행시킨 캔슬 컬처(철회 문화)는 명확한 개념이 서 있지 않다. 보통은 문화적 보이콧을 뜻한다. 내가 어떤 사람, 조직의 무언가에 동의하지 않기 때문에 나의 관심, 돈, 지지를 철회하겠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 흉을 보는 콜 아웃, 나만이 깨어 있다는 워크(woke) 컬처와 함께 온라인상의 징벌적 행위, 가끔은 사이버 린치로 확장된다. 스스로 민주주의 화신이 되어 자기 진영에 무한 지지를 보내기도 한다.

□ 오바마 전 미 대통령이 ‘꼰대’가 된 적이 있다. 민주당 경선 초기 나만이 고결하고, 정치적으로 깨어 있다는 생각을 극복하라며 캔슬 컬처를 겨냥한 게 역효과를 불렀다. 당이 좌편향으로 가는 걸 틀고자 한 의도는 꼰대질로 전락했다. 한편으로 오바마 시절의 포용적 정치문화가 탈색된 증상이기도 했는데, 실제 현실 정치에서 우파에는 캔슬 컬처가, 좌파엔 음모론이 상대를 비난하는 무기가 돼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 변호인단이 탄핵소추를 캔슬 컬처라고 공격한 것도 그런 사례다.

□ 캔슬 컬처가 프랑스에서 논란에 휩싸였다. 350년 전통의 국립 파리오페라가 흑인 분장 등 인종차별 요소를 없애고 다양성을 추진하는 것이 불을 댕겼다. 사실 진보적 성향에도 불구, 프랑스는 서구에서 대규모 동성애 반대 집회가 열리는 유일한 나라다. 하지만 자부심 강한 정치인, 지식인, 언론인들은 미국의 캔슬 컬처에 전염돼 국가 정체성과 문화 유산이 위협받고 있다고 우려한다. 사회 문제의 인종화가 공화국을 둘로 쪼개고 있다, 진보를 가장해 극단주의를 용인한다는 정치인들 발언도 재인용되고 있다.

□ 서유럽은 냉전 이후 동유럽과 긴장의 시간을 거쳐 이중의 위기를 맞고 있다고 한다. 다른 피부색과 문화에 대해 불관용 정도는 커져 있다. 혁명의 나라 프랑스에서 차별적 언어가 난무하는 것에 놀랐다는 외지인 반응도 적지 않다. 인종과 성에 대한 과도한 집착은 문제이나 이번 논란은 사회적 소수, 불공정에 대한 프랑스의 풍경을 바꿀 계기란 기대도 있다. 길게 보면 인종과 성을 앞세운 새 진보와, 부와 권력의 분배에 치중해온 기성 진보의 충돌이기도 하다.

이태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