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씁쓸한 초콜릿’… 허쉬ㆍ네슬레 아동 노동착취 묵인 혐의 피소

입력
2021.02.13 17:54
인권단체, 코트디부아르 착취 주장 원고 대리
강제 노동사실 인지하고도 묵인 비판


네슬레, 허쉬 등 글로벌 초콜릿 제조업체들이 아프리카의 코코아 농장에서 아동 노동착취를 묵인했다는 혐의로 미국에서 피소됐다. 전 세계적으로 초콜릿이 가장 많이 소비되는 밸런타인데이(14일)를 앞두고 ‘공정(fair) 초콜릿’ 논란이 또 다시 도마에 오르는 분위기다.

12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과 영국 일간 가디언에 따르면 인권단체 ‘국제권리변호사들(IRA)’은 이날 미 워싱턴 연방법원에 아동 노동착취 혐의로 네슬레, 허쉬, 카길, 몬델레스 등 글로벌 초콜릿 제조기업들을 상대로 집단소송을 제기했다.

IRA는 서아프리카 말리 출신으로 코트디부아르의 코코아 농장으로 끌려가 노동착취를 당했다고 주장하는 8명의 원고를 대리해 소장을 제출했다. 현재 모두 성인인 이들은 자신들이 16세도 되지 않았을 때 사기에 넘어가 코트디부아르의 코코아 농장에서 수년간 임금도 받지 못한 채 비인간적인 환경에서 노역에 동원됐다고 주장한다.

원고 측은 네슬레와 허쉬처럼 초콜릿을 제조해 판매하는 글로벌 기업들이 직접 코코아 농장을 소유한 것은 아니지만, 영향력이 지배적인 이곳 농장지대에서 수천 명의 어린이가 강제노동을 하는 사실을 인지하고도 이를 묵인, 이익을 얻었다고 주장했다.


코트디부아르는 초콜릿의 주요 원료인 코코아의 전 세계 공급량의 45%를 차지한다. 세계 최빈국 중 하나인 이곳에서 코코아 재배 산업은 저임금, 아동노동착취, 구조적 빈곤 등의 문제로 몸살을 앓아왔다. 앞서 지난해 영국 일간 가디언은 코트디부아르와 가나에서 5~17세 어린이 43%가 카카오농장에서 일하고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해마다 초콜릿 소비가 늘어나는 크리스마스나 밸런타인데이가 가까워지면 이곳에서 일하는 아동들이 제대로 먹고 쉬지 못하거나 임금조차 받지 못한 채 가혹한 노동을 강요당한다는 비판이 이어지고 있지만, 개선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 셈이다.

앞서 2001년 네슬레 등 글로벌 초콜릿 제조업체들은 서아프리카의 코코아 농장에서 아동 노동 근절을 약속하는 ‘하킨-엥겔 협약’을 맺었고, 이후에도 이곳에서의 노동력 착취를 없애겠다는 약속을 반복적으로 해왔지만 실상 이를 눈감았다는 비판도 나온다. 유명 인권 변호사이자 IRA 전무이사인 테리 콜링스워스는 “이들 기업은 실패한 하킨-엥겔협약의 20년 기록을 바탕으로, 중단을 강요 받을 때까지 아동 착취 수익을 이어갈 것”이라고 지적했다.

소송을 당한 기업들은 즉각적인 반응은 내놓지 않은 채 아동노동착취에 반대한다는 원론적인 입장만 밝혔다. 네슬레 측은 아동노동에 명백히 반대하며 이를 종식하기 위해 노력 중이라고 답했다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허경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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