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를 사지 않을 권리]<4>배달음식 용기
다 먹은 짜장면 그릇은 철가방에 담겨 주인에게 돌아가는 게 당연하던 시절이 있었다. 지역에 따라 다르겠지만, 불과 5년 전만 해도 그랬다.
한국일보 기후대응팀은 짜장면 그릇이 순환하던 시절을 떠올리며, 음식 10개를 주문하면서 "다회용기로 담아 주세요"라고 요청해봤다. 배달 애플리케이션(앱) '배달의민족'과 '요기요'를 이용해서 음식을 골랐으며 앱으로 5개, 전화로 5개를 주문했다. 앱으로 요청사항을 남기고, 전화로 부탁했지만 결과는 모두 거절.
이렇게 해서 10개의 음식이 모두 일회용품에 담겨 도착했다. 순식간에 기자의 눈앞에 작은 쓰레기 산이 만들어졌다. 주문 1회(2인세트 기준)당 평균 9.7개의 일회용 쓰레기가 나왔다. 이 중 재활용이 확실히 가능한 것은 평균 1.0개로 약 90%가 소각ㆍ매립될 것으로 추정됐다.
재활용이 안 되는 것도 문제지만, 한번 생산되면 썩는데 500년이 걸리는 플라스틱이 너무 쉽게 쓰이고, 심지어 권장되고 있는 곳이 배달생태계이다. 대형 배달플랫폼들은 거래처인 음식점 업주들에게 플라스틱 용기 가격을 깎아주면서 사용을 독려하지만, 정부의 제재는 전혀 없다.
.
한국일보는 '배달 음식 용기' 분석을 위해, 배달앱 실시간 검색 순위를 참고해서 음식을 골랐다. 소비자들이 선호하는 음식의 2인용 세트메뉴를 주문 기준으로 했다.
메뉴는 중식(탕수육+짜장면+짬뽕)ㆍ치킨ㆍ돈까스ㆍ분식(떡볶이+튀김)ㆍ한식(김치찌개+불고기)ㆍ족발ㆍ초밥ㆍ곱창ㆍ피자ㆍ후식(팬케이크+커피)을 선정했다.
우선 족발은 일회용품이 무려 15개로 이 중 10개가 플라스틱이다. 족발 자체는 용기 1개에 담겼지만 쌈채소, 막국수, 김치 등이 각각 배달돼 개수가 늘었다. 쌈장이나 마늘을 담은 작은 용기, 밀봉을 뜯는 데 쓰는 플라스틱 칼도 더해졌다.
중국음식에도 일회용품 15개(플라스틱 8개)가 쓰였다. 탕수육과 소스, 짜장과 면, 짬뽕국물과 면이 각각 따로 배달되며 양이 늘었다. 한식도 14개의 일회용품이 나왔으며 이 중 10개가 플라스틱이었다.
팬케이크와 커피 배달에도 13개의 일회용품이 쓰였다. 팬케이크는 종이상자에 배달됐지만 곁들여 먹는 크림 통과 커피 컵 등 플라스틱만 9개가 나왔다.
배달된 음식 용기들을 분석한 결과, 2인분 1개 메뉴당 평균 6.2개의 플라스틱이 사용됐다. 종이컵, 나무젓가락, 비닐봉지 등 기타 일회용품을 모두 계산할 경우 평균 9.7개의 일회용 쓰레기가 나왔다.
지난해 8월 한 달 주요 배달 앱 서비스 결제자 수는 1,604만명. 이처럼 약 1,600만명이 주문한다면 한 달에 약 1억5,520만개의 일회용품이 버려지는 셈이다. 플라스틱 쓰레기만 따져도 한 달에 약 9,920만개다.
각 메뉴당 물질재활용이 가능한 경우는 평균 1.0개에 그칠 것으로 분석됐다. 재질뿐 아니라 세척상태, 크기 등을 보수적으로 고려한 결과다.
실제 배달된 플라스틱 용기는 모두 폴리프로필렌(PP)이나 폴리스티렌(PS) 단일재질로 재활용이 가능했다. 하지만 배달 과정에서 변형되면서 재활용 가능성은 낮아졌다.
족발 용기가 대표적이다. 용기를 밀봉하면서 플라스틱에 비닐이 단단히 붙었는데, 이로 인해 플라스틱이 이중재질이 돼서 재활용이 어렵게 된 것이다. 곱창, 떡볶이 등을 담은 15개의 플라스틱 용기가 이처럼 변형됐다. 일부 시민들은 비닐이 붙은 부분을 가위로 잘라 분리배출을 한다. 하지만 재활용을 위해 소비자들이 너무 많은 손 품을 들여야 하는 셈이다.
곱창과 함께 배달된 부추나 족발과 함께 배달된 쌈채소처럼 작은 비닐이나 종이봉투에 담아도 되는 것들도 역시 플라스틱 용기에 밀봉된 채 배달됐다.
세척해도 빨간 국물이나 기름기가 남아 재활용이 불가능할 것으로 판단되는 용기도 6개다. 세제를 사용해 수차례 닦은 결과다. 크기가 작아 재활용 가능성이 낮은 용기도 24개. 소스통 크기는 너비 7㎝, 높이 3㎝이며, 국 그릇도 너비 10.5㎝, 높이 6.5㎝에 그친다. 재활용 선별장 여건상 길이 15㎝ 이하의 작은 플라스틱들은 버려지기 쉽다. 이는 피자 고정용 플라스틱, 플라스틱 칼 등도 마찬가지다. (▶관련기사: 튜브 용기, 열심히 자르고 씻어도 "재활용 안 됩니다")
스티로폼 재질의 초밥용기는 색이 입혀져 재활용이 불가능했다. 흰색 스티로폼과 섞이면 품질이 떨어져 선별장에서 걸러내 버려진다. 투명 커피컵은 페트 재질이어서 재활용 가능으로 분류했다. 그러나 장담할 수는 없다. 한 선별업체 관계자는 “커피컵은 페트 외에도 PP 등 여러 재질로 만드는데 눈으로 봐서는 구분이 안 되기 때문에 애써 선별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소비자들은 결코 이 많은 일회용품을 주문하지 않았다. 이들에겐 사실상 배달용기 선택권이 없다. 플라스틱 대란 앞에 더욱 무력해지는 이유다.
기자가 주문하면서 "다회용기에 담아달라"고 요청했지만, 모두 ‘회수가 어렵다’는 이유로 거절했다. 중국음식점 점주는 “직고용한 배달원이 아닌 배달 플랫폼 소속 라이더가 배달하기 때문에 다시 가져오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배달플랫폼의 시장지배력이 커지면서 다회용기도 사라진 셈이다.
다회용기 대여 서비스 스타트업 ‘트래쉬버즈터즈’의 곽재원 대표는 “배달앱 의존도가 높아지고 경쟁이 붙으면서 매장에서도 비용을 들여 수거인력을 두는 대신 저렴한 일회용품을 사용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됐다”고 분석했다.
배달플랫폼 측은 비용 문제상 현행 구조를 바꾸긴 어렵다는 입장이다. 배달의민족 관계자는 “배달용기를 수거할 때 발생하는 비용은 음식점주와 소비자가 나눠서 부담해야 한다”며 “결국 지금 내고 있는 배달비보다 훨씬 더 많은 금액을 지불해야 하기 때문에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요기요 관계자는 "친환경 다회용기 서비스를 내부적으로 검토한 바 있지만, 모든 비용을 자사는 물론 사업주가 부담해야 하는 상황이라 당장 서비스를 운영하기에는 어려운 점이 많다"고 말했다.
양심의 가책만 소비자의 몫이 됐다. 녹색연합이 지난해 9월 시민 750명에게 설문한 결과 76%(570명)가 배달쓰레기를 버릴 때 ‘불편과 걱정’ 또는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다.
정부도 문제 해결에 소극적이다. 음식 배달 시 일회용품을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한 현행 ‘자원의 절약과 재활용촉진에 관한 법률(자원재활용법)’에 대해 환경부 관계자는 “어쩔 수 없는 예외”라고 말했다. “일회용품 사용을 규제하려면 다회용기 수거 시스템 등 대체제가 있어야 하는데 배달과 테이크아웃은 그렇지 않아 불가피하다”는 설명이다.
원칙적으로 배달 음식에 일회용품 사용을 허용할 수밖에 없다고 해도, 사용을 가능한 억제할 세부정책조차 없는 것은 더 큰 문제다.
대형 배달플랫폼들은 '배민상회' '요기요알뜰쇼핑' 등 온라인 소모품 도매상을 운영하며 가맹 음식점주들에게 플라스틱 용기를 저렴한 가격에 판매한다. 배달 물량이 몰리는 금요일 오후마다 쿠폰을 주거나(배민), 등록업체에 반값할인을 하는(요기요) 식이다. 배달 마진 한 푼이 아까운 사업주들에게 일회용품 사용을 권장하고 있는 셈이다. 요기요 측은 "알뜰쇼핑은 요기요가 할인 비용을 부담해 서비스에 필요한 물건을 저렴하게 제공하기 위한 취지"라며 "현재 재활용이 가능한 부분에 집중해 판매 전략을 수립 중"이라는 설명이다.
그런데도 배달플랫폼은 정부의 방관 속에 어떤 책임도 지지 않는다. 배달용기는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EPR)에서 빠져있다. EPR은 제품이나 포장재로 인한 폐기물의 재활용 의무를 생산자 및 판매자에게 부여하고 지키지 않을 경우 비용을 부담하도록 하는 제도인데, 한 해 매출액이 10억원을 넘지 않으면 EPR 적용 대상이 아니다. 대부분의 음식점과 소규모 배달용기 생산자가 면책되는 이유이다.
더구나 2019년 기준 매출액이 5,654억원인 배민과 1,944억원인 요기요는 유통업체라는 이유로 제도에서 빠졌다. 배달생태계를 좌지우지하는 플랫폼이 비현실적 기준 탓에 규제를 빗껴간 것이다. 이는 2019년 '신포장재법'을 통해 유통업체에 포장재 수거·재활용 비용을 부담하게 한 독일, 2024년까지 모든 회원국에 유통업체의 폐기물 회수 및 재활용 의무를 확대하도록 한 유럽연합(EU)과 비교하면 큰 맹점이다.
환경부가 지난해 12월 내놓은 배달용기 두께 제한 계획도 실효성이 높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현재 감자탕 용기의 두께가 0.8~1.2㎜인데 이를 1.0㎜로 제한해 플라스틱 생산량을 20% 줄인다는 내용인데, 실험 대상 플라스틱 용기 중 두께가 1.0㎜를 넘는 것은 초밥용기(5.0㎜) 뿐이었다. 환경부는 여러 종류의 용기를 연구해 적정 기준을 마련하겠다는 설명이나 실행은 빨라야 올해 말로 예상되며, 이 마저도 업계 당사자들의 자율 협약 수준에 그친다.
기후위기와 환경오염 상황 속에서 한가하기만 한 정부의 소극적인 정책에 쓴소리가 나오고 있다. 전문가들은 당장 실천할 수 있는 것부터 빠르게 추진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김미화 자원순환사회연대 이사장은 “주문 시 소비자가 원하는 반찬을 선택해 그 개수에 맞춰 비용을 지불하도록 시스템만 개선해도 지금보다 일회용품이 30%는 감축될 것”이라고 말했다. 가격 부담은 물론 일회용품과 음식물쓰레기까지 줄일 수 있는 방법이다. 김 이사장은 “장기적으로는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적극적으로 다회용기 사용 인프라를 구축해 쓰레기로 인한 사회적 비용을 줄여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