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보건기구(WHO)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기원 규명 실패 고백에 미국이 자체 조사 가능성을 시사했다. WHO 현지 조사단이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고 중국에 면죄부를 줬다는 뒷말도 무성하다.
젠 사키 미 백악관 대변인은 9일(현지시간) 브리핑에서 이날 WHO 코로나19 기원 조사팀의 중국 우한 현지 조사 결과 발표에 대해 “미국 정부는 이번 조사의 계획과 실행에 관여하지 않았다”며 “조사 결과와 근거 데이터를 독립적으로 검토하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네드 프라이스 국무부 대변인도 브리핑을 통해 “그 문제는 아직 결론이 나지 않았다”며 WHO 전문가들이 중국으로부터 완전한 협조를 받은 것으로 단정할 수 없다고 했다.
미 정부의 이런 언급에는 코로나19가 중국으로부터 비롯됐을 것이라는 미국의 여전한 신념이 드러나 있다. 면책을 위해서라면 수단ㆍ방법을 가리지 않는 중국과 결국 그 벽을 넘지 못한 WHO 둘 다 믿을 수 없다는 게 미국 입장인 셈이다. 사키 대변인은 지난달 27일 코로나19의 중국 기원설에 대한 진상 규명을 강조한 바 있다. 전임 도널드 트럼프 정부와 마찬가지로 바이든 정부도 대유행이 중국에서 비롯됐다고 보고 있음을 분명히 한 것이다.
서방 언론과 학계 역시 WHO에 비판적이다. 이날 미 일간 뉴욕타임스는 WHO 조사팀 발표에 대해 “미국 등으로부터 코로나19 사태 초기에 창궐을 은폐하려 했다는 지적을 받는 중국에 홍보전(戰) 승리를 안겨줬다”고 평가했다.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도 WHO 조사팀이 중국에 입국한 뒤 관용 차량을 타고 이동하며 귀빈처럼 유관기관들의 안내를 받고 다녔다는 사실을 거론하며 공정한 조사와 어울리지 않는 부적절한 모습이라고 지적했다.
미 일간 워싱턴포스트(WP)는 전문가들의 회의적인 반응을 전했다. 미 스탠퍼드대 미생물학자인 데이비드 렐먼은 WP에 “증거가 공개되면 모든 것을 잃는 사람들이 제공한 정보만 검토했다면 판단에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WHO 조사단이 이들 연구소의 실험 및 원본 유전자 서열 데이터에 대한 온전하고 구체적인 기록을 확보했어야 한다고 질책했다.
앞서 WHO 조사팀을 이끈 식품안전ㆍ동물질병 전문가 피터 벤 엠바렉 박사는 이날 코로나19 최초 발병지 우한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현지 조사로 새 정보를 얻었지만, 코로나19에 대한 이해를 획기적으로 바꾸지 못했다고 밝혔다. 기원 규명 실패를 사실상 인정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