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랜스젠더 10명 중 6명 이상은 최근 1년간 차별을 경험한 적이 있다는 국가인권위원회의 실태조사 결과가 나왔다. 상당수 트랜스젠더들은 의료영역이나 직장, 학교에서뿐 아니라 가족들에게도 차별 당한 것으로 파악됐다.
인권위는 숙명여대 산학협력단에 의뢰해 트랜스젠더의 혐오차별 실태조사를 실시한 결과 이 같은 결과가 도출됐다고 9일 밝혔다. 조사는 지난해 5월부터 11월까지 만 19세 이상 트렌스젠더 591명을 대상으로 성별 정정 및 신분증, 가족생활 및 일상 등 9개 분야에 대한 혐오차별 경험을 온라인으로 묻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조사 결과 응답자(588명)의 65.3%는 지난 1년간 트랜스젠더라는 이유로 차별을 경험한 적 있다고 답했다. 특히 성별 정체성으로 인해 부당한 대우를 받을까봐 일상 자체를 포기했다고 응답한 비율도 적지 않았다. 응답자 554명 중 91명(16.4%)은 성인 인증이 필요한 술·담배 구입이나 술집 방문을 포기했고, 119명(21.5%)은 병원 등 의료기관 이용을 포기했다고 답했다. 구직 활동 경험이 있는 469명 중 268명(57.1%)은 성별 정체성으로 인해 구직 활동을 멈췄다.
중·고등학교에 다닌 경험이 있는 584명 중 539명(92.3%)은 성소수자 관련 성교육 부재, 성별 정체성에 맞지 않는 교복 착용 등 힘들었던 경험이 한 가지 이상 있었다고 응답했다. 392명(67%)은 수업 중 교사로부터 성소수자를 비하하는 발언을 들은 경험이 있었고, 124명(21.3%)은 교사로부터 폭력이나 부당한 대우을 받은 적이 있었다. 78명(13.4%)은 '언어적 폭력'을, 27명(4.6%)은 '성희롱 또는 성폭력'을, 8명(1.4%)은 '신체적 폭력'을 당했다고 응답했다.
가족 관계에서도 성별 정체성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는 이들이 많았다. 응답자 373명 중 '가족이 언어적 폭력을 가했다'고 답한 이들은 39.4%(147명)에 달했고, '가족이 오랜 시간 대화하지 않으려고 했다'는 응답도 27.9%(104명)였다. '가족이 경제적 지원을 끊었다'(48명·12.9%), '가족과 관계를 끊었다'(39명·10.5%)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인권위는 "트랜스젠더들은 다양한 영역에서 혐오와 차별을 경험하고 있지만, 해외 법제와 정책에 비해 트랜스젠더 인권 보장을 위한 국내의 법·제도·정책은 미흡한 상황"이라며 "이번 실태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전문가 의견을 수렴해 개별적·구체적 사안을 검토하고 정책 대안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