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재팬(No Japan) 때 풍파 맞고, 코로나 연달아 맞았는데... 9시 영업제한은 도대체 언제 풀어줍니까."
8일 오후 9시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일본식 주점 부점장 양모(37)씨는 손님들이 떠난 자리를 정리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평일에도 50팀씩 수용하던 가게가 고작 10팀에 만족해야 하는 상황이 수 개월째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양씨는 2019년 일본의 대(對) 한국 수출규제 사태로 '노재팬 운동'이 일며 매출이 급감했을 때보다 상황은 더 좋지 않다고 푸념했다. 그러면서 "9시 영업제한 이후로 매출액이 8분의 1로 쪼그라들어 월 2,000만원 임대료조차 내기가 어렵다"며 "비수도권은 1시간씩 더 영업한다는데 부러울 뿐"이라고 말했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가 비수도권 지역에 한해 다중이용시설 영업시간 제한을 오후 10시로 완화한 첫날인 이날 수도권 소상공인들은 "형평성에 어긋난다"고 불만을 쏟아냈다. 숭실대 앞에서 17년째 닭갈비 집을 운영 중인 채모(74)씨도 "월세·전기세·부가세 등을 내고 나면 적자가 심해서 가게를 접을 생각까지 하고 있다"며 "10시까지 영업할 수 있다면 편하게 식사하는 손님들이 많아져 매출 증가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상인들은 수도권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가 집중돼 철저한 방역이 필요하다는데 공감했다. 하지만 지역별로 영업시간 제한에 차이를 둔 결정에는 불만이 컸다. 일부 소상공인들은 오후 9시부터 자정까지 가게 불을 끄지 않는 점등 시위에 나서기도 했다.
방역당국이 "설 연휴 이후 수도권에도 같은 기준을 적용할지 고려하겠다"며 영업시간 제한 완화 가능성을 시사했지만 주점이나 PC방 업주들은 심드렁하다. 업종 특성상 퇴근 후 늦은 오후 시간대인 오후 9~10시 가게를 찾는 손님들이 많아서다. 서울 관악구에서 10년째 PC방을 운영하는 최모(50)씨는 "밤 시간대 손님이 가장 많아서, 9시 이후 영업금지는 사실상 영업을 정지당하는 것과 같다"면서 "오후 10시로 영업제한 시간을 늘린다고 해도 큰 차이는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비수도권 지역은 영업제한 시간이 1시간 연장되면서 다소 활기를 되찾는 분위기다. 경북 칠곡에 사는 정기현(43)씨는 "퇴근 후 집에 오면 7시가 넘는데 외식이라도 하려면 시간이 빠듯했다"며 "확산세가 좀 더 가라앉으면 영업시간 제한을 과감하게 풀면 좋겠다"고 긍정적 반응을 보였다.
대구 수성구의 한 구이집 업주도 "영업시간이 오후 10시까지 늘어나면서 8시 넘어서 찾아오는 손님들도 부담 없이 받을 수 있게 됐다"며 "요즘처럼 어려운 시기엔 힘이 난다"고 말했다. 인근 헬스장에도 퇴근 후 찾아오는 이용객들이 오후 9시에도 입장하면서 '1시간'의 변화를 실감하고 있다.
그러나 업종별로 느끼는 체감경기 차이는 비수도권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노래연습장 등은 영업시간 제한 완화에도 “큰 변화가 없다”고 볼멘소리를 쏟아냈다. 임형우 대구노래연습장업협회 회장은 "노래방은 밤 10시 이후 찾는 손님이 많기 때문에 이번 조치의 효과를 크게 보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대리운전 업계도 귀가 콜이 몰리는 시간이 오후 9시에서 10시로 바뀐 것 이외에는 큰 변화가 없다는 반응이다. 대구의 한 대리운전기사는 "다중이용시설이 최소한 밤 12시까지는 영업해야 대리운전도 활기를 되찾을 수 있다"며 "한 시간 연장은 크게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이들은 업종별로 영업시간 제한을 달리하는 등 업계 현실을 반영한 방역 조치가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영업금지 조치로 영업피해가 집중되고 있는 업종을 중심으로 보상과 생계 대책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한국유흥음식업중앙회 대구지부는 집회를 열고 "코로나19 확산 이후 정부와 방역당국은 노래방과 카페 영업을 허용한 반면 유흥업소를 차별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은 “대구에서 코로나19가 확산할 때 자진 휴업하며 방역에 앞장섰지만 정부는 10개월간 유흥업 자영업자들을 부관참시했다"며 “최소한 다른 업종과 형평성에 맞게 방역 지침을 조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부 소상공인들은 차라리 거리두기 단계를 격상해 확산세를 잠재운 뒤 영업시간 제한을 일괄적으로 풀어줘야 한다고 주장한다. 서울 종로구에서 20년째 곱창집을 운영하는 윤창용(46)씨는 "현 정책은 우는 아기에 젖 주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며 "잠시라도 영업을 중단해 코로나를 틀어막는 게 덜 고통스러울 것"이라고 말했다. 종로구에서 대형 치킨집을 운영하는 구모(50)씨도 "2억원 보증금을 다 까먹을 정도로 어려운 상황"이라며 "뜨뜻미지근한 정책으로 상인들이 아사 직전에 몰린 만큼, 지금이라도 셧다운해 코로나부터 잡고 자유롭게 영업하도록 해주면 좋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