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원섭섭하다

입력
2021.02.10 04:30
25면


졸업의 때가 돌아왔다. ‘빛나는 졸업장을 타신 언니께’는 학창시절을 거친 누군가에게 아련한 노랫말이다. ‘잘 있거라 아우들아, 정든 교실아’ 부분에서 목메던 기억도 생생하다. 3년 혹은 6년이라는 긴 시간을 잘 끝내는데, 후련하기는커녕 서운하다. 아쉽고 애틋한 그 심정이 ‘석별의 정’으로 충분할까? 한편으로는 흐뭇하고 가뿐하나 다른 한편으로는 섭섭한 마음, 이것이 ‘시원섭섭하다’이다. 누구에게나 희로애락이 있지만, 감정은 한 가지로 고정되지도 표상되지도 않는다. 사고와 마음이 유연하게 확장되기 때문이다. 때로는 ‘시원하다’는 말로 뜨거운 물속의 개운함을 나타내고, 맛 표현인 ‘고소하다’로 미워하는 사람의 잘못됨을 재미있게 말하기도 한다.

복합적인 감정언어는 다른 말에도 있다. 영어에도 시원섭섭하다는 ‘bittersweet’, 비애와 분노가 뒤섞인 ‘upset’이 있다. 덴마크어 ‘Hygge’는 일상에서 느끼는 사소한 행복감을, 네덜란드어 ‘Gezellig’는 따뜻한 포옹 같은 아늑함을 표현한다. 독일어 ‘Waldeinsamkeit’는 숲속에서 느끼는 편안한 고독감을, 포르투갈어 ‘Saudade’는 사랑하는 이를 잃고서 느끼는 짙은 그리움을 뜻한다. 문화에 따라 다른 이러한 감정은 번역되지 않는다.

시원섭섭함, 미운 정(情), 한(恨), 신명 같은 말도 그러하다. 사전에서 ‘한’을 원망과 슬픔의 응어리로, ‘신명’을 흥겨운 멋으로 밋밋하게 풀이하는 것도 그 한계 때문이다. 이런 한국인의 감정이 영화와 가요에 담겨 한류가 된 것을 보면, 감정언어란 원래 풀어내는 것이 아니라 그저 느끼는 것인가 보다.

이미향 영남대 국제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