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 강의, 염불, 공장, 은행 스톱!"... 미얀마 '일상 불복종'

입력
2021.02.08 17:00
13면
각계각층 업무 거부, 연가투쟁... 승려도 가세
주말 이어 월요일에도 대규모 시위 "30만 운집"
군부, 물대포 이어 전국에 집회 및 심야 통행금지 선포

의사와 간호사는 진료를 멈췄고 교사는 강의를 접었다. 직장인들은 출근하자마자 휴가를 내고 거리로 나섰다. 승려는 절을 뛰쳐나왔다. 미얀마는 현재 '일상 불복종' 운동이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6, 7일 주말 대규모 거리 시위는 평일인 8일에도 이어졌다. 거리는 인파로 뒤덮였다. 결국 군부는 이날 늦게 계엄령에 준하는 심야 통행 및 집회 금지를 전국에 선포하며 강경 진압을 예고했다.

미얀마 양곤에서 22년째 살고 있는 이병수(55) 미얀마한인회장은 8일 오전 한국일보와 전화인터뷰에서 "충돌은 아직 없고 교민 피해도 없다"며 "군부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의 우려처럼 이날 밤 군이 움직였다. 다음은 일문일답.


-주말 시위는 어땠나.

"최대 도시 양곤에서만 약 10만명이 가두 시위를 했다. 네피도(수도), 만달레이(제2도시) 등 10개 이상 도시에서 집회가 열렸다. 충돌은 전혀 없었고, 시민들이 저지선을 지키는 경찰에게 음료수와 빵을 나눠주기도 했다. 무장 경찰들은 저지선을 지키면서 평화 시위를 지켜만 보고 있다. 군인들은 보이지 않았다."

-총성이 울렸다는 외신 보도도 있다.

"고무탄을 쏜 것으로 보인다. 발포 명령이 하달됐다는 정보는 확인되지 않았다. 미얀마는 최루탄 같은 시위 진압용 장비 보급이 거의 안돼 있다."

-오늘(8일) 상황은 어떤가. 총파업 얘기도 들린다.

"총파업까지는 아니다. 한인 봉제업체 출근율이 85% 수준이지만 공장 가동엔 아직 문제가 없다고 한다. 다만 출근한 현지인들이 하루 연차를 내거나 조퇴하고 거리 시위에 합류하고 있다. 지금(오전 10시쯤)도 흘레단 오거리에서 수백 명씩 모여서 1시간 거리인 양곤 시청 앞 광장으로 향하고 있다. 피켓과 깃발을 흔들며 '수치 정권을 지지한다' '군부 독재를 원하지 않는다' 등 구호를 외치고 있다."

-시위 주도 세력이 있나.

"젊은이들이 휴대폰 문자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을 통해 서로 연락하고 있다. 의료진, 교사, 공무원 등 지식인들은 업무 거부 운동을 벌이고 있다. 아웅산 수치 국가고문이 속한 민주주의민족동맹(NLD)도 지침을 내리는 것으로 알고 있다."

-2007년 '샤프론 혁명' 이후 최대 규모라고 하던데.

"2007년 이후엔 거리 시위가 거의 없었다. 시위 성격과 양상은 다르다. 2007년엔 유가 인상으로 인한 생필품 가격 폭등에 시민들이 분노했다. 1988년 '88항쟁' 이후 탄압을 피해 승려가 된 민주화 인사들이 대거 합류해 시위를 조직화했다. 당시엔 당황한 군부가 곤봉 구타, 실탄 사격 등 초기부터 강경 진압했다. 이번엔 아직까지 군부가 평화 시위를 용인하는 분위기다."

-군부 움직임은 어떤가.

"현재 군부는 여러 경로를 통해 경제를 살리겠다는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NLD와 대화도 계속하고 있는데 NLD 쪽에서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 같다. 시위 규모와 범위가 확산되면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교민들 분위기는.

"교민 3,800명은 불안해 하면서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 주말에 약 28시간 인터넷이 차단돼 수출입 통관과 카드 결제에 어려움을 겪었다. 현재도 인터넷 속도가 느리고 간간이 끊긴다. 봉제업체들은 베트남과 인도네시아로 주문을 옮기는 걸 고려하는 제조사들이 많아 걱정하고 있다. 시위로 인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3차 파동도 우려하고 있다. 다만 시위로 인한 교민 피해는 없다. 항공편도 정상 운항되고 있다. 6일에도 한국인 15명이 입국해 현재 호텔에서 격리 중이다."

그러면서 이 회장은 "고국에서 현지 상황을 굉장히 걱정하고 있는데, 다른 나라에 비해 미얀마 시위대는 폭력적이지 않다"라며 "교민 안전을 최우선하고 있으니 걱정을 덜 하셔도 된다"고 강조했다.

현지인들은 이날 최대 30만명이 양곤 시위에 참여했다고 주장했다. 빨간 리본과 '세 손가락' 인증을 이어가며 거리로 나선 의료진과 교사들, 출근과 업무를 거부하는 공무원과 은행원 등 일상 불복종도 각계각층으로 확산되고 있다. 이날 시위에 가세한 '샤프론 혁명'의 주역 승려들은 가두 행진 선두에 섰다.

군부 대응 수위는 이날 시시각각 강경해졌다. 오후 네피도에선 경찰이 시위대를 향해 처음으로 물대포를 발사해 2명이 다쳤다고 로이터통신이 전했다. 이병수 회장은 이날 오후 "탱크와 장갑차가 이동하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고 알려왔다. 장갑차 등은 양곤에서 북쪽으로 3시간 거리인 따웅우에서 목격됐다. 군부는 국영TV를 통해 "무법 행위는 처벌해야 한다"는 성명을 발표해 처음으로 강경 대응을 시사했다.

이어 몇 시간 뒤 AFP통신은 군부 관계자를 인용해 "군부가 만달레이시 7개 구에 계엄령을 선포했다"고 보도했다. 5명 이상 모이거나 집회를 할 수 없고, 오후 8시부터 다음날 오전 4시까지 통행이 금지된다고 통신은 덧붙였다. 이 조치는 곧 전국으로 확대됐다. 그러나 이병수 회장은 "아직 언론 통제를 하지 않는 상황이라 계엄령이라고 보긴 어렵다"고 말했다. 미얀마 주재 한국 대사관은 "통행 금지 조치가 양곤 등 전국에서 시행되는 만큼 교민들도 안전에 유의해달라"고 당부했다. 미얀마는 지금 임계점에 다다랐다.

자카르타= 고찬유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