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이라면 영화였다. 하지만 지난해 추석부터 풍경이 달라졌다. 명절 대목을 노린 대작이 사라졌다. 코로나19 확산 여파는 명절 극장가라고 피할 수는 없다. 하지만 명절은 명절. 극장에서 연휴 한때를 즐기고 싶은 관객들을 위해 새 영화들이 선보인다. 설날 관객을 노려 재개봉하는 영화 역시 적지 않다.
한국 영화는 두 편이 출격한다. ‘새해전야’와 ‘아이’다. 결은 다르지만 온기를 품고 있는 영화들이다. ‘새해전야’는 새해를 앞둔 네 커플의 사연을 다룬다. 재활 전문 트레이너와 형사, 원예사와 패럴림픽 국가대표 선수, 스키장 비정규직 직원과 해외에서 새 삶을 찾는 젊은이, 한국인 남자와 중국인 여자의 사랑이 엇갈려 펼쳐진다. 지난 연말 개봉하려다 코로나19 확진자가 급증하며 공개 시기를 미뤘다. 설 전야에 관객과 만나게 된 셈. 새해 맞이 영화에 걸맞게 웃음이 곁들여진 희망을 전한다. 코로나19로 해외여행이 판타지가 돼 버린 시기, 스크린을 가득 채운 아르헨티나 풍광만으로도 가슴이 탁 트인다.
‘아이’는 살면서 상처 받은 사람들이 갈등하다 서로를 이해하게 되는 과정을 그렸다. 어른스러운 보호종료아동 아영(김향기)이 미성숙한 싱글 맘 영채(류현경)의 아이를 보살피게 됐다가 벌어지는 사연이 주 내용이다. 삶의 상처와 결핍을 지닌 인물들이 연대하며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과정이 세밀하게 그려져 있다.
지난 4일 나란히 개봉한 ‘페어웰’과 ‘세상의 모든 디저트: 러브 사라’ 역시 가족애를 그린다. ‘페어웰’은 할머니의 죽음을 앞두고, 모이게 된 중국 가족의 이야기다. 가족들은 할머니가 마음 편히 마지막을 맞이할 수 있도록 병이 대수롭지 않다고 거짓말을 한다. 애인이 막 생긴 자손을 억지로 결혼시켜 가족들이 다 모일 수 있는 구실을 만들기도 한다. 할머니와의 마지막 '잔치'를 치르기 위해서다. 미국에서 살고 있는 빌리(아콰피나)는 선의의 거짓말과 억지 행사를 이해하지 못한다. 할머니가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차분히 돌아볼 수 있도록 가족이 도와야 한다는 것이다. 영화는 세대차와 문화격차에 따른 갈등으로 중국 현대사를 돌아보고 가족의 의미까지 살핀다. 아콰피나는 이 영화로 지난해 골든글로브상 뮤지컬 코미디 부문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러브 사라’는 영국 런던 노팅힐을 배경으로 가족의 화해를 다뤘다. 중년여성 사라가 친구 이사벨라(셀리 콘)와 빵집을 열려다 갑작스레 숨지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사라의 어머니 미미(셀리아 아임리), 사라의 딸 클라리사(섀넌 타벳)가 이사벨라와 의기투합해 빵집을 개업해 다종다양한 사람들의 마음을 사는 과정이 이어진다. 구수한 빵 냄새와 달콤한 케이크의 맛이 느껴지는 듯한 화면만으로도 마음이 치유된다.
재개봉 영화 열풍은 설날 연휴에도 이어진다. ‘해리포터와 불의 잔’(2005)과 폴란드 영화 ‘이다’(2013), ‘원더’(2016)가 설날 극장가를 찾는다. ‘해리포터와 불의 잔’은 ‘해리포터’ 시리즈의 4편이다. 영화 역사상 가장 성공한 시리즈로 꼽히는 영화의 가치를 새삼 확인할 수 있다. ‘이다’는 파벨 포리코프스키 감독의 출세작이다. 유대인 수녀가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을 흑백화면에 담았다. ‘원더’는 태어나면서부터 남들과 다른 얼굴을 가진 어린 주인공을 통해 삶의 가치를 전하는 영화다. 외모로 평가하는 세상에 대한 비판과 더불어 자식에 대한 부모의 헌신을 새삼 돌아보게 한다.
멀티플렉스 체인 CGV는 아예 홍콩 유명 감독 왕가위(왕자웨이)의 옛 영화들을 모아 특별전을 연다. 데뷔작 ‘열혈남아’(1988)를 비롯해 ‘아비정전’(1990)과 ‘중경삼림’(1994), ‘해피투게더’(1997), ‘화양연화’(2000), ‘일대종사’(2013) 등 왕가위 감독의 영화 11편을 볼 수 있는 자리다. 11일부터 30일까지 전국 CGV 40곳에서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