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그룹 '애플카' 공동개발 일단 '정지'... "협상 주도권 싸움인 듯"

입력
2021.02.09 04:30
14면

연초부터 메가톤급으로 전해졌던 현대자동차그룹과 애플의 ‘애플카’ 공동 개발 논의가 중단됐다. 자율주행 전기차종으로 알려진 애플카는 글로벌 기업인 양사의 첫 합작품이란 점에서 세간의 관심을 끌었다. 일각에선 물밑 접촉을 통해 양 사가 재차 협력에 나설 가능성도 제기하고 있지만 양측의 입장 차이가 공식적으로 확인된 만큼, 장담하긴 어려운 형편이다.

현대차와 기아, 현대모비스는 8일 전자공시를 통해 “다수의 기업으로부터 자율주행 전기차 관련 공동개발 협력 요청을 받고 있으나, 초기단계로 결정된 바 없다”며 “애플과 자율주행차량 개발에 대한 협의를 진행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달 8일 현대차그룹과 애플의 ‘애플카’ 협력 관련 논의가 세상에 알려진지 한 달 만에 잠정 중단된 셈이다.

협상 테이블 '주도권 싸움', 논의 중단 주요 원인일 듯


지난달만 해도 양 사의 협력 가능성에 대해선 긍정적인 전망이 잇따랐다. 지난달 19일 기아가 미국 조지아주 공장에서 애플카를 생산할 것이라는 소식이 국내에서 나오자, 이달 초엔 미국 경제매체 CNBC는 양사가 협상 마무리 단계에 근접했다고 전했다. ‘애플 전문가’로 알려진 궈밍치 대만 TF인터내셔널증권 연구원은 최근 투자자에게 보낸 보고서를 통해 “애플카는 현대차의 전기차 플랫폼 ‘E-GMP’를 기반으로 하고, 현대모비스가 부품 설계를 담당하고, 기아 조지아 공장에서 완성차를 생산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달 5일에는 월스트리트저널(WSJ)이 기아 조지아 공장 생산시설 확충에 애플이 30억달러(약 3조4,000억원) 투자할 것이라고 전하면서 현대차그룹과 애플의 협력은 기정사실처럼 굳어졌다. 하지만 같은 날 오후 블룸버그통신, 로이터통신 등에서 애플이 전기차 개발을 위한 현대차·기아와의 논의를 최근 중단했다는 소식에 기류가 바뀌었다.

일단 현대차그룹은 협상 중단 이유에 대해선 함구하고 있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애플과 관련된 내용은 공시에서 밝힌 것 이외에는 어떠한 내용도 확인해 줄 수 없다”고 입을 다물었다. 양 사의 애플카와 관련된 논의 중단은 협상 테이블에서의 주도권 다툼에서 비롯됐을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과거 애플의 해외 스마트폰 시장 진출 과정을 살펴보면 현지 이동통신업체나 부품 협력사 선정 과정에서 수 차례의 협상 결렬과 재논의 등을 반복해왔다. 애플은 이 과정에서 언제나 유리한 고지를 점령했다.

정구민 국민대 전자공학부 교수는 “애플의 ‘아이폰’ 디스플레이 업체 선정 과정에서 단가를 낮추기 위해 삼성과 LG를 모두 압박했던 과거처럼, 이번 협상중단도 마진이나 고장·사고에 대한 책임 등에 대한 ‘갑’의 위치를 선점하기 위한 전략일 것”이라며 “다만 전기차 산업은 스마트폰, 반도체 등과 달라서 애플 뜻대로 안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자동차 산업에 경험이 전무한 애플이 스마트폰 시장에서 주로 해왔던 과거 전략을 또 다시 들고 나올 경우, 쉽지 않을 것이란 설명이다.

현대차그룹, 자율주행 전기차 기술력 경쟁사 '압도'…협상재개 가능성 ↑

다만 업계에선 양 사의 협상 재개 가능성도 충분하단 관측을 내놓고 있다. 애플이 접촉 중인 파트너 후보군들 중 현대차그룹의 경쟁력이 상대적으로 우수하다는 평이 많기 때문이다. 애플은 현대차그룹 외에도 미국의 GM, FCA-PSA, 일본의 도요타, 닛산, 혼다, 마쓰다, 스바루, 중국의 폭스콘-지리차 등 10여개 완성차 업체와 애플과 관련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 중 애플이 원하는 △대량생산 △수준 높은 조립 △전기차 전용 플랫폼 △납품단가 등의 조건을 모두 맞출 수 있는 곳은 제한적이다.

고태봉 하이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유럽은 낮은 단가를 맞추기 힘들고, 일본차 업체들은 전기차 분야 기술력이 부족하고, 중국은 무역갈등이 걸림돌이 되는 등 우리나라 기업의 경쟁력이 앞선다고 볼 수 있다”며 “애플카가 단순한 전기차가 아니라, 자율주행 기능을 갖춘 차세대 ‘모빌리티(이동수단)’으로 등장이 예상되는 가운데 현대차그룹을 주요 협상 대상으로 삼고 있다는 것은, 관련 기술력을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것으로도 볼 수 있다”고 전했다.

류종은 기자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 Copyright © Hankookilb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