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소신’을 향한 청와대와 더불어민주당의 반응이 사뭇 다르다. 홍 부총리는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사람으로 알려져 있지만, 최근 이 대표가 꺼낸 '전국민 재난지원금 지급'에 반대해 파장을 일으켰다.
홍 부총리는 지난해 1차 재난지원금 전국민 지급에 제동을 건 이후 10번 가까이 민주당과 충돌했다. 홍 부총리에게 재정 곳간 열기를 번번이 거부당하는 민주당에선 그의 사퇴론까지 나오지만, 인사권을 가진 청와대는 '문제 될 것 없다'며 감싼다. '언터처블 홍남기'의 비결, 무엇일까.
청와대는 홍 부총리 교체를 검토한 적 없다는 입장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7일 “홍 부총리에 대해 민주당은 아쉬울 수 있겠지만, 당정청이 여러 현안을 협의해 나가는 과정으로 봐야 한다"고 했다. 최재성 청와대 정무수석도 최근 KBS 라디오 인터뷰에서 “우리 정부에서 다른 의견들이 제시되는 것은 무수히 많다”며 홍 부총리를 두둔했다.
청와대는 홍 부총리가 2018년 12월 정부 경제 사령탑으로 취임한 이후 경제 지표가 좋았다고 평가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국제통화기금(IMF) 등도 최근 한국 경제 상황을 주요국 가운데 최상위 수준으로 진단했다. 홍 부총리를 교체할 명분도, 실익도 없다는 얘기다.
문 대통령의 신임도 각별한 것으로 알려진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개각을 앞두고 '경제 라인' 교체설이 돌자 홍 부총리를 콕 집어 “내년에도 잘해 주기 바란다”며 공개적으로 재신임했다. 인사와 관련해 극도로 말을 아끼는 문 대통령으로선 이례적인 일이었다. 지난달 홍 부총리가 페이스북에 "한국 경제성장률이 선방했다"는 취지의 글을 올리자, 문 대통령이 페이스북에 공유하기도 했다.
청와대가 ‘재난지원금 보편 지급’에 신중한 입장인 것도 홍 부총리에 힘이 실리는 이유다.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은 이달 2일 고위 당정청 협의에서 '전국민 재난지원금 지급 논의는 시기상조’라며 홍 부총리 편에 섰다. 홍 부총리의 최근 행보가 청와대와 보폭을 맞추는 것이란 얘기다. 문재인 정부 초대 경제부총리인 김동연 전 부총리가 청와대가 추진한 최저임금 인상에 제동을 걸며 ‘조기 강판’ 됐을 때와 사정이 다르다는 뜻이기도 하다.
문 대통령도 지난달 신년 기자회견에서 4차 재난지원금과 관련해 ‘방역이 어렵다면 선별 지급을 하되, 코로나19가 거의 진정돼 본격적 소비 진작이 필요하면 보편 지급도 가능하다'며 선별 지급에 무게를 뒀다. 여권 관계자는 "정부는 방역 상황을 더 지켜보자는 입장인데, 민주당이 4월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전국민 재난지원금 지급을 서두른 측면이 있다"고 했다.
홍 부총리는 청와대 입장에서 ‘코드가 잘 맞는’ 인사다. 그는 노무현 정부 때인 2006년 변양균 청와대 정책실장 보좌관을 지낸 ‘변양균 라인’ 출신이다. 여권 관계자는 "박근혜ㆍ이명박 정부 10년을 거치며 기재부에 여권 정책에 호응할 인사의 '씨'가 말랐다"며 "홍 부총리는 당정청이 신뢰할 수 있는 얼마 안 되는 기재부 고위 관료”라고 했다.
청와대의 굳은 신임을 읽어서인지, 민주당도 최근 홍 부총리 비판을 자제하고 있다. 허영 민주당 대변인은 7일 “재정 당국은 유연하고 따뜻한 마음으로, 최대한 두텁고 빠른 보상이 가능하도록 4차 재난지원금 지급 논의에 임해 주기를 바란다”고 했다. 홍 부총리를 향한 날 선 반응은 없었다.
이에 홍 부총리가 앞으로 청와대 의중을 읽어 가며 결국 자기 뜻을 굽히거나, 자영업자 등에 선별 지원을 한 뒤 시간을 두고 전국민 지원을 추진하는 절충안을 택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홍 부총리는 차기 강원지사 민주당 후보로도 거론되며, 올해 4월이면 윤증현 전 기재부 장관의 재임 기간을 넘어 '최장수 기재부 장관' 타이틀을 쥐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