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번째 대책도 논란...이번엔 “재산권 침해” vs “투기 방지"

입력
2021.02.08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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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어디서'가 빠진 대책이 논란 불씨
서울만 222곳...잘못 들어가면 낭패
정부 "투기 차단 원칙대로"

정부가 내놓은 특단의 '2·4 주택 공급대책'에 대해 재산권 침해 논란이 불거졌다. 사업 지구 위치조차 불명확한 상태에서 대책 발표일 이후 부동산 매입자에겐 우선공급권을 주지 않고 현금청산하는 강력한 투기 차단책이 논란에 불을 댕겼다. 신축 아파트를 제외하곤 거래 자체를 위축시킬 것이란 우려도 제기된다.

문재인 정부가 앞서 발표한 24번의 부동산 대책은 매번 논란을 피하지 못했고 시장에서 통하지 않아 결과적으로 집값도 잡지 못했다. 83만 가구에 이르는 획기적인 물량 공세를 앞세운 25번째 대책까지 시작 전부터 논란에 휩싸이자 주택난에 허덕이는 실수요자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서울 후보지만 222곳, 어떻게 피해서 집을 사나

7일 2·4 주택 공급대책에 따르면 서울에선 역세권·준공업지역·저층 주거지를 활용한 ‘도심 공공주택 복합사업’과 재개발·재건축 절차를 단축하고 인센티브를 내건 ‘공공 직접시행 정비사업’이 핵심 사업이다.

정부는 이 같은 공공 주도 사업 지구에 대한 투기 수요를 차단하기 위해 대책 발표일 이후 해당 구역 내 부동산을 취득해도 아파트·상가 우선 공급권을 주지 않고 현금청산하기로 했다. 문제는 '언제, 어디서, 어떻게' 사업을 진행하겠다는 내용이 불명확한 것이다. 현금청산은 감정가 기준이라 이달 4일 이후 구매한 주택이 사업 지구에 포함되면 실수요자가 피해를 볼 수도 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공공 주도 개발 사업 추진 후보지는 222곳에 달한다. 공공주택 복합사업 대상인 역세권은 117곳, 준공업지역은 17곳, 저층 주거지역은 21곳으로 총 155곳이다. 나머지 67곳은 공공 직접시행 정비사업 후보지다.

정비사업은 기존 사업구역에 근거해 대략적으로 가늠한다고 해도 공공주택 복합사업은 수요자 입장에서 예측이 어렵다. 서울 곳곳이 개발 후보지라 이사가 필요한 실수요자는 신축 아파트가 아니라면 섣불리 움직일 수 없게 됐다. 반대로 역세권 등의 주택 소유자는 팔고 싶어도 집을 팔기 어려운 처지가 됐다.

법률과 부동산 전문가들은 실수요자의 사정을 고려하지 않은 일방적인 현금청산 결정에 위헌 소지가 다분하다고 본다. 엄정숙 법도 종합법률사무소 변호사는 “실거주 목적으로 집을 샀는데 우연찮게 그 지역이 개발 구역으로 바뀌어 돈만 받고 쫓겨나야 한다면 재산권 침해 소지가 생긴다”며 “어느 지역이 될지도 모르는데 개인 사정을 구체적으로 살피지 않고 일률적인 현금청산을 한다면 자유롭게 땅을 사고 팔 수 있는 시장 경제 원칙에도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도 “거래의 자유를 막는 대책”이라며 “명백한 재산권 침해”라고 강조했다.

정부, 투기 차단 원칙 밀고 나간다

정부는 투기 수요 차단을 위한 우선공급권 부여 원칙을 고수한다는 입장이다. 이번만큼은 배수의 진을 치고 투기 세력이 몰려드는 것을 막겠다는 의지가 확고하다. 일률적인 현금청산이 과도한 규제나 위헌 소지가 있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대책 준비를 할 때 이미 법률 검토를 거쳐 위헌성이 없고 법원 판례에도 배치되지 않는다”며 반박한다.

다만 서울 내 막연한 32만3,000가구 공급이란 목표치만 내세워서는 시장의 불안감을 잠재울 수 없다는 점은 인식하고 있다. 2·4 대책 성공을 위해선 도심 개발 예정지구 지정을 위한 속도전이 요구되는 상황이다.

우선 정부는 222곳 후보지를 대상으로 설 연휴 이후 온라인 사업설명회를 열 계획이다. 지구 지정 시점은 이르면 올해 하반기로 예상하고 있다. 김흥진 국토부 주택토지실장은 “대책 발표 전까지 특정 지역, 지구를 대상으로 협의를 진행한 것은 아니다”면서도 “충분히 개발 가능성이 있고 노후화 돼 시급히 정비가 필요하다고 눈 여겨 본 지역의 경우는 올 하반기에 구체적으로 사업을 진행할 수 있도록 준비하겠다”고 강조했다.

김지섭 기자